여기저기에서 "나는 할 수 있어(I can do!)"를 외친다. 문화적으로 한정된 희소재를 놓고 너도 저것을 쟁취할 수 있어라고 속삭이는 자기 최면이다. 좋게 보면 '자신감을 가져, 너도 할 수 있어'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격려이다. 이렇게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는 않다.
그런데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사회를 승자와 패자의 이분 구도로 보는 성공자의 패권논리가 자리잡고 있다. 승자를 합리화하고 패자에게 승복을 강요하는 논리이다. 또한 성공 여부를 개인의 동기, 의욕, 열정, 재능 등 개인 책임으로 귀속시키는 논리이다. '제도/기회는 열려 있는데, 하고 못하고는 너에게 달려 있다'는 말이 숨겨져 있다. 할 수 있는데 못한 것은 네 책임이므로 불만 갖지 말라는 뜻이다. '나를 보라, 나는 꿈을 가졌었고 그것을 실현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이 구호는 대개 이른바 성공한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속삭임이다. '(너도) 나처럼 성공할 수 있어'라고.
그런데 그 성공이란 것이 신화이다. 기회란 것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 적어서 잘 믿어지지 않는 것이기에 신화라 부른다. 차라리 없으면 폭발하여 대변혁이라도 일어날 텐데, 그나마 있기는 하니, 현 체제를 유지하며 그 신화의 꿈을 이루기로 마음먹도록 만드는 그러한 신화 말이다. 나에게도, 흙수저에게도 희망은 있어.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기회 문제가 아니라 내가 의욕이 부족해서, 내가 못나고 모자라서 못 이루고 있는 것뿐이야. 결국 이른바 패배자들에게 '너도 할 수 있어, 할 수는 있는데, 네가 의욕이 없어서, 동기가 부족해서, 열정이 부족해서, 또는 능력이 부족해서 못 이루는 것뿐이야. 너에게도 기회는 얼마든지 열려 있으니까 그렇게 믿고 네 인생을 걸어봐. 신념을 가지라구...'라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성공의 신화를 정당화하기 위한 "나는 할 수 있다"라는 주문은 성공자의 입장에서 경쟁을 정당화하는 논리이다. 성취문화를 조장하며 행복이나 인생의 가치를 물질적 성취에 초점을 두고 있는 가치이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있어'라는 구호는 현재에 대한 불만, 부정에 기반한, 패권적 패러다임에 대한 선망을 담고 있다. 즉, 자기 부정이며 성공자 선망의 함정이다. "나는 할 수 있어"를 외치는 사람들 가운데 신화 같은 꿈을 이루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 1% 뒤에 99%의 좌절과 절망이 숨겨져 있다. 99%는 결코 소모품이 아닌, 한번 뿐인 인생들을 살고 있는 우리들이다. 우리는 차라리 '나는 이미 나로서 위대해,' '이미 족해,' '나는 곧 부처야'라고 외쳐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현실부정보다 확실한 현재에 대한 긍정이 행복의 지름길이다. 그러면 발전이 없다고 항변하지 말고.

저작권자 © 원광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