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좋은 길'을 가는 법을 알고 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한 뒤, 멋진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 '좋은 길'이란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길을 걷기 위해 우리는 수많은 행복들을 못 본 체하고 지나치지 않았을까?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현재를 즐겨라'라는 뜻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는 1859년에 창립된 미국의 웰튼 아카데미를 배경으로 한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본 학교 출신인 '존 키팅'이 새 영문학 선생님으로 부임한다. 엄격한 규율 안에서 '미래'를 향하여 나아갔던 기존의 선생님들과는 다르게, 키팅은 '현재'가 중심이 되어 수업을 진행한다. 키팅은 첫 수업부터 기존의 수업방식과는 다르게 "오늘을 살라"라고 외친다. 키팅은 기존의 틀에 박힌 사고에서 벗어나 조금 더 세상을 크게 보는 법을 가르친다. 진부한 내용의 책은 찢어 버리고,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법, 틀린 것과 다른 것의 차이, 그리고 진정한 자유에 대해 배우게 된다.

▲ 출처 : 다음 영화

 학생들은 키팅의 과거를 찾아보던 중 졸업사진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모임을 알게 된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월트 휘트먼, 셀리와 같은 시인의 시와 자신들의 자작 시를 낭송하는 낭만주의자들의 모임이었다. 닐 페리를 중심으로 학생들은 '죽은 시인의 사회'를 다시 한 번 부활시킨다. 늦은 밤 몰래 동굴에 모여 노래를 부르고 시를 낭송하며 스스로의 삶에 솔직해지는 시간을 가진다. 눅스는 옆 학교 학우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깨닫고, 페리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처음으로 깨닫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모두 생각한 것만큼 쉽지는 않다. 눅스가 사랑하는 크리스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었고, 배우가 되고 싶었던 페리에게는 엄격한 아버지가 있었다. 페리의 아버지는 페리가 의사가 되길 희망했다. 페리가 꾸준히 좋은 성적을 유지하여 안전하게 하버드에 진학한 후, 의사가 되는 미래를 그렸다. 페리 역시 불만 없이 잘 따라왔었다. 하지만 키팅 선생님을 만나고 '자신이 지금 하고 싶은 일'에 더 집중하기로 한다. 결국 아버지에게 비밀로 몰래 혼자 오디션을 보기로 한다. 오디션에서 배역을 따내면 그때 허락을 맡기로 결심한다. 페리가 끝내 주인공으로 발탁된 후 기쁜 마음으로 돌아온 기숙사에는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셨다. 굳은 얼굴의 아버지는 당장 그만두라고 하셨고, 포기할 수 없었던 페리는 우여곡절 끝에 이번 연극의 역할만은 꼭 하고 싶다고 청한다.
 페리의 무대는 성공적이었다. 연극을 보러 온 아버지를 보고 자신이 배우를 꿈꿔도 될지도 모른다는 기쁜 마음에 아버지를 따라나섰지만, 아버지는 전학을 선택하셨다. 페리의 꿈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않은 채, 의사의 길만을 요구하셨다. 페리가 처음 갖게 된 자신의 꿈은 무참히 짓밟혔다. 결국 페리는 아버지의 총으로, 아버지의 서재에서 죽음을 선택한다. 페리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죽음의 원인을 찾던 교내에도 '죽은 시인의 사회'의 존재를 알게 된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학교가 추구하는 길과는 정반대되는 모임이었다. 결국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학생들에게 개인 면담 과정을 가진다. 개인 면담 과정에서 모임의 시초가 키팅 선생이란 것도 알게 된다. 학생들에게 키팅이 페리의 자살 원인이라는 서류에 퇴학을 면해준다는 조건으로 반강제적으로 서명하게 한다. 결국 모든 죄를 키팅이 안게 된다. 그렇게 페리에게 '현재의 소중함'을 알게 해준 키팅은 페리의 죽음의 원인이 된다.
 학교는 페리의 죽음을 아버지에게서 찾지 않는다. '좋은 길'을 걸어갈 길잡이의 역할로서의 아버지는 완벽했다. 학교는 페리의 꿈에 관심주지 않았다. 학교 안에서 자유는 없었다. 엄격한 규율 속에서 벗어나 학생들에게 자유와 현재를, 그리고 더욱 행복한 미래를 알려주고자 한 키팅은 학교에게 있어서 반역자였을 뿐이다. 결국 '현재의 행복'을 찾던 '죽은 시인의 사회'는 사라지고 모두 다시 '좋은 대학'을 위해 교실을 찾는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는 1990년대 개봉작이다. 그러나 2018년인 지금 봐도 하나도 진부하지 않다. 지금의 우리가 겪어왔던, 혹은 겪고 있는 일들의 영화다. 우리는 모두 미래를 보고 산다.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밤낮없이 공부를 했고, 대학에 와서는 더 좋은 직장을 위해 바쁘게 살며, 먼 미래에는 좋은 집을 갖기 위해 적금을 든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너무 많이 포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래는 있을지 없을지 불분명하다. 너무 굳이 앞서나가지 않아도 좋다. 지금의 현재를 즐기면서 행복을 찾으며 살다 보면 미래가 너무 두렵지는 않을 것이다.

김경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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