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우리 조상은 동굴에 간단한 그림을 그려서 의사를 표현했고, 이후 한자가 들어오게 되면서 지명, 인명 등을 한자로 표기하기 시작했다. 필자는 앞으로 몇 주에 걸쳐서 선조들이 우리말을 표기하려 한 방식에 대해 훑어보고, 나아가 세종대왕의 우리말에 대한 인식까지 알아보려 한다. /편집자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을 제외하면 'ㅐ'와 'ㅔ'의 발음이 구분되지 않는다. 전자는 입을 크게 벌려서 발음하고 후자는 입을 작게 벌려서 발음하면 흉내 정도는 낼 수 있다. 두 모음의 발음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 2주 전에 '예쁘대요'와 '예쁘데요'를 통해서 간단히 말한 바 있다. 두 모음의 발음이 구분되지 않기에 관련된 표기를 다 왜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영덕) 대게', '대개(大槪)' 또한 외우고 있어야 제대로 적을 수 있다. 
 갑자기 군대에 가 있는 큰애가 떠오른다. 큰애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맞춤법 중에 가장 헷갈리는 것이 뭐냐고 하니까 '매개체'라고 답을 하였다. 깜짝 놀랐다. '매개체' 정도는 약간의 한자 지식만 있다면 알 수 있는 단어이기 때문이었다. 아니, 한자 지식이 없더라도 '중매', '중개인', '유기체'와 같은 단어를 알고 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이기 때문이었다. 한자 지식이 없고 관련된 단어들을 적용할 수 없는 형편이라면 '매개체'를 어떻게 써야 할지 난감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바로 'ㅐ'와 'ㅔ'의 발음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매개체'는 다음 7가지의 경우와 발음이 같게 된다. 모두 나열해 보기로 하자. 
 
(1) 매개체 : 매개채, 매게체, 매게채,
  메개체, 메개채, 메게체, 메게채
 
 필자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위에 제시된 8가지를 모두 발음해 보라. 웬만한 사람이라면 모두 똑같이 발음할 수밖에 없다. 경상도의 많은 사람들이 '미더덕'과 '미더득', '미드덕', '미드득'을 똑같이 발음하는 것과 같다. 'ㅡ'와 'ㅓ'를 구분하지 못하니 생기는 현상이다. 두 모음이 구분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실로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2) 가. (왠 웬) 쪽지?
 
  나. (왠 웬) 떡이냐?
 
  다. 교통비 인상이
    (왠 웬) 말이냐?
  라. (왠일인지 웬일인지)
    형만 좋아하네.  
 
  마. (왠만큼 웬만큼)
    먹었으니 이젠 가자.
 
  바. 오늘은 (왠지 웬지)
   파전을 먹고 싶다.
 
 잡설이 꽤 길어졌다. '애'와 '에' 발음을 구별하지 못하면 '왜'와 '웨'의 발음도 구별하지 못한다. '왜'는 입을 크게 벌려 발음하고 '웨'는 입을 조금 작게 벌려 발음하는 것인데 우리들은 그런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위에 제시된 몇 가지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위 문제를 보고서 갈피를 못 잡겠다고 하는 학생이 있다. 그래서 국어는 어렵다고 푸념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해 보면 의외의 묘수가 떠오를 수 있다. 6문항 중 '왜(why)'와 관련된 하나만을 찾아보자.('왜 오니?'를 '웨 오니?'로 적는 사람은 없겠지요?). 바로 (2바)만이 '왜'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를 넣어 짧은 문장을 만든다고 생각해 보라. (2가)∼(2마)에서처럼 '왜' 뒤에 'ㄴ'이 붙는 경우는 거의 없다. '왜' 뒤에 'ㄴ'이 붙는 하나의 예가 바로 '왠지'이다. 사실 그조차도 '왜'에 '인지'가 붙어서 '왜인지'가 된 후 그것이 줄어 '왠지'로 나타나는 것이다. 어떻든 '왜'와 관련된 '왠지'를 제외하고는 무조건 '웬'으로 적으면 된다('웬일인지', '웬만큼' 등).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위 문제에 제시된 '웬일인지', '웬만큼'은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또한 (2가)∼(2다)에서의 '웬'이라는 말도 자주 쓴다.(웬 리포트, 웬 메시지, 웬 반지, 웬 톡, 웬 선물, 웬 족발 ……). 자주 사용하는 만큼 이번 기회에 바르게 익혀두는 것이 좋겠다. 
 다음 문제를 풀어보면서 마무리하도록 하자. 
 
 (3) 가. 걔는 (왠만하면 웬만하면)
  포기 안 한다.
   나. 걔는 (왠만한 웬만한)
  일로 화를 안 낸다.
   다. (왠걸 웬걸)
  30분이나 늦더라.
  (왠걸요 웬걸요)
  30분이나 늦던데요.
.
  라. (왠 웬) 놈이냐?
 
 모두 후자가 정답이다. '왠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웬'으로 적도록 하자(그렇다고 '왼손'을 '웬손'으로 적는 일은 없겠지요?). 방언에 따라 '우에∼어에', '우엔일∼어엔일', '언만큼/언만하면'으로 발음하는 경우도 있다. '웬'으로 적을 수 있는 일종의 힌트이다. '웬을 분해하면 '우엔'이 되니까 말이다. '언만큼/언만하면'에도 'ㅓ' 계열이 보이니 '왠' 말고 '웬'으로 적는 것이 좋겠다.
 끝으로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한 부분을 인용해 보기로 한다.
 
  웬01  [웬ː]  
 「관형사」「1」어찌 된.
 
 
 ¶ 웬 영문인지 모르다
 웬 까닭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다
 웬 걱정이 그리 많아?
 이게 웬 날벼락이람.
 이제 곧 봄인데,
 웬 눈이 이렇게 내리니?
 「2」어떠한. 
 ¶ 골목에서 웬 사내와 마주치다
 웬 놈이야, 떠드는 놈이?
 개가 짖는 바람에 그는
 웬 낯선 사람이 오는가 해서 나왔  다.
  ≪이기영, 고향≫
 
 ※ '웬 사람이 널 찾아왔어.'나 '웬일로 그러지?'의 '웬'을 '왠'으로 적는 것은 잘못이다. '왜'와 관련이 없는 말이므로 '웬'으로 적는다.

  임석규 교수(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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