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명선 기자

  우리나라는 유독 '권선징악'을 강조해서 교육하곤 한다.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신화나 전설, 동화에도 권선징악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흥부전』에서 놀부는 갖은 악행을 일삼다가 도깨비에게 크게 혼이 났고, 설화를 소재로 한 고전소설 중 하나인 『장화홍련전』에서도 장화와 홍련을 학대해 죽음으로 내몰았던 계모는 능지처참을 당했다.
  착한 일을 권하고, 악한 자를 벌한다. 이처럼 권선징악에 관련된 소설 문화가 오랜 시간 전승돼 왔기 때문일까. 현대에 와서도 우리는 소설 속에서, 드라마 속에서, 만화 속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법이나 신과 같이 존재가 불투명한 것에 처벌을 의존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 미디어에서는 주인공이 악의 무리에게 직접 벌을 내리는 등 징악에 있어 적극성을 띠고 있는 권선징악을 다루고 있다. 중국에서 성인으로 손꼽히는 백이와 숙제는 은나라 주왕을 멸한 주나라 무왕을 두고 "난폭한 자를 정벌하기 위해 같은 폭력을 쓰면서도 그것이 잘못인 줄을 깨닫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악한 사람을 벌하기 위해 폭력을 되돌려 주는 것은 옳은 것일까? 이처럼 폭력의 정당성을 고려하지 않고 적극적인 형태의 권선징악을 제작하고 방영하는 미디어 문제는 어린이를 타겟층으로 삼고 있는 몇몇 만화 채널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도라에몽>과 <안녕 자두야>, <레이디버그>나 <파워레인저> 등 아이들에게 쉽게 노출되는 만화 속에서 주인공은 악행을 일삼는 무리 혹은 개인에게 직접 나서서 비슷한 수준의 악행을 되돌려준다. 도구를 이용해 개인의 복수를 하고, 공포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악인을 진정시키거나, 타인의 안전을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공격적이고 선정적인 매체의 현장은 어린이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는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보보인형 실험을 진행해 인간이 다른 사람의 행동과 그 결과를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모방 학습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보보인형의 두 번째 실험에서 반두라는 영상을 이용해 아이들에게 폭력을 관찰하도록 했는데, 영상의 결말을 보상, 처벌, 무보상으로 각각 다르게 해 노출시켰다. 그 결과, 보보인형을 때린 어른이 칭찬을 받는 영상을 본 아이들은 가장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고, 체벌을 받는 영상을 본 아이들이 가장 덜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으며, 보상도 처벌도 받지 않는 것을 본 아이들의 공격성은 중간 정도의 모습을 보였다. 실험을 통해 반두라는 인지적 사회학습 이론을 밝혔지만, 동시에 우리는 아이들이 매체를 통해 모방된 공격성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실험을 EBS <다큐프라임> '아이의 사생활 2부 도덕성'에서도 다뤘다. 인형을 공격하는 어른의 영상을 본 아이 9명 중 7명이 어른과 똑같은 공격행동을 보였고, 인형을 소중히 다루거나 무관심한 행동을 보인 어른의 영상을 시청한 아이들 13명 전원은 공격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벌을 받지 않기 위해 규칙을 따르고, 상을 받기 위해 규칙을 따르는 어린 아이들에게 현대의 애니메이션은 폭력의 정당성을 가르친다. 악인을 물리치기 위해 주인공에게 영웅심을 불어넣고, 주인공의 행위가 곧 칭찬과 보상으로 이어지는 만화의 패턴은 아이들이 나쁜 행위의 정도와 기준이 불분명한 현실에서도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때려도 된다', 혹은 '나쁜 아이를 물리치면 착한 사람이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된다.
  임의로 악당의 역할을 타인에게 부여하고 공격하는 행위를 놀이로 삼는 아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지금, 우리가 소비하는 미디어가 폭력을 정당화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아이들에게 노출되어도 괜찮은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명선 기자 sjfkd1919@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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