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영미문학을 이끈 인물들인 F. 스콧 피츠제럴드와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리고 그들의 글을 '발굴'해낸 명망 높은 편집자 맥스 퍼킨스. 그는 어느 날 우연히 건네받은 두꺼운 원고를 읽어내린다. 멈추지 않는 기차. 빠르게 지나가는 차창 너머의 풍경. 그리고, 'When? Where? O, lost' 맥스 퍼킨스는 그 글에 점점 빠져든다. 영화 <지니어스>의 시작이다.
 맥스 퍼킨스는 자신이 원석을 발견했다는 확신과 함께 기차에서 읽었던 글의 저자 토마스 울프를 자신의 사무실로 들여보낸다. 지금껏 수많은 출판사에서 찬밥 신세를 받아왔던 토마스 울프는 이번에도 역시 거절당할 줄 알고 자포자기했지만, 그의 압도적인 재능을 알아 본 맥스 퍼킨스는 그에게 출판을 제안하게 된다. 미국의 전설적인 작가 토마스 울프와 뉴욕 '스크리브너'사의 천재 편집자 맥스 퍼킨스의 첫 만남은 그렇게 이뤄졌다.

 

 강렬한 첫 만남 이후, 맥스 퍼킨스와 토마스 울프는 출판을 하기까지 지난한 시간들을 보내며 서로에게 몰입하기 시작한다. 가족, 친구, 연인… 그 모든 것들로부터 눈 돌린 채 오로지 글만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이후 미국 문학사에 길이 남게 되는 작품인 『천사여 고향을 보라, Look Homeward, Angel』가 탄생한다. 그 작품으로 막대한 부와 명성을 얻게 된 토마스 울프는 점차 글에 대한 집착이 커져간다. 대개 집착은 광기로 변하고, 광기는 파멸을 낳는다. 하지만 토마스 울프의 광기는 파멸이 아닌 예술을 낳았다. 그는 이후에도 여러 박스에 나눠 담을 만큼 방대한 양의 원고를 집필하고, 미국 문학사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하지만 떠나가는 연인, 맥스 퍼킨스와의 마찰, 다가오는 죽음… 토마스 울프는 그렇게 미쳐만 가는데….
 마이클 그랜디지 감독의 영화 <지니어스>는 2016년 개봉작으로, 20세기 초 위대한 편집자 맥스 퍼킨스와 전설적 작가 토마스 울프의 실화를 담은 영화다. 개봉 당시 콜린 퍼스, 주드 로, 니콜 키드먼, 로라 리니 등 한 작품에 모아놓은 것 자체가 놀라운 명품 라인업으로 많은 영화팬이 주목했다. 미니멀리즘에 가까운 모노톤의 스크린, 20세기 초 재즈에 물든 미국을 선명하게 그려내는 미장센, 예술적인 풍미가 흘러넘치는 대사들, 거기에 더해 콜린 퍼스의 이지적인 눈빛과 주드 로의 야수 같은 열연까지. <지니어스>는 특정 문화나 예술이 탄생되는 데 있어 발생하는 근본적 갈등을 그 어떤 영화보다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는 극 중 토마스 울프와 그의 연인 엘린 번스타인이 마침내 이별을 하는 장면에서 여과 없이 드러난다.
 토마스 울프는 그간 집필 활동과 출판 준비를 하면서 자신의 연인 엘린 번스타인을 뒷전으로 했다. 엘린 번스타인은 그에게 "사람이라는 존재는 당신이 생각하는 소설 같은 것이 아니야"라며 슬픔과 분노를 담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렇게 토마스 울프가 쓴 글의 첫 독자이자 연인이었던 엘린 번스타인은 그를 떠나고 만다.
 예술가는 외롭다는 말이 있다. 생각해보면, 동서고금의 유명한 예술가 중에서는 지독하게 외롭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 간 이들이 많다. 예를 들어, 반 고흐처럼.
 반 고흐는 "고통은 영원하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 짧지만 강렬한 한마디로도 그의 인생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쉬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반 고흐가 남긴 작품들은 현재 널리 사랑받고 있다.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살아생전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간 예술가의 작품이, 시간이 지나 많은 이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니.
 <지니어스>는 바로 그런 예술가의 아이러니를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닐까. 연인을 잃고 유일한 친구마저 잃은 토마스 울프의 작품이 미국 문학사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을 보면, 예술가는 외롭다는 말이 단순히 어딘가에서 굴러온 말이 아니라는 걸 느낀다.

김정환 기자 woohyeon17@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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