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대학 배드민턴부는 1975년에 창단된 이후 수많은 배드민턴 스타를 배출해냈다. 김재권 트리오(김동문, 정재성, 하태권 동문)가 대표적인 예이다. 최 감독에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냐고 묻자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그는 "김동문 선수가 애틀란타 올림픽에 출전했을 당시, 그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 당시 김동문 선수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선수였고, 관중들에게 '김동문'이라는 이름 석 자는 낯선 이름이었다. 그러나 그 경기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1회전이나 통과하면 잘한 것이라고 모두가 생각했는데 결승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결승에서 박주봉 선수를 만났다. 박주봉 선수는 당시 최상위 선수였기에 경기가 많이 힘들어질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이변이 일어났다. 김동문 선수가 박주봉 선수를 이겨버린 것이다"고 말했다.
 당시 박주봉 선수의 파트너는 나경민 선수였다. 박주봉 선수는 나경민 선수의 스승이기도 했다. 나경민 선수 입장에서는 스승과 경기를 함께 뛴다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반면, 김동문 선수는 그의 파트너 길영아 선수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부담 없이 뛴 것이 승부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었던 원인이었다. 또한, 그 값진 승리 뒤에 배짱과 강인한 집중력,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김동문 선수는 몸소 보여줬다. 비록 무명의 선수일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투혼을 발휘하면 최고를 꺾을 수 있다고.
 최 감독은 정재성 선수의 이야기 또한 빼놓지 않았다. 최 감독이 말하는 정재성 선수는 '작은 고추가 더 맵다', '작은 거인의 반란'를 떠올리게 했다. 최 감독은 "167cm 작은 키라는 불리한 신체조건을 가지고 이용대 선수와 호흡을 맞춰 동메달을 땄다는 것은 인간 승리이다"며 "작은 체구의 선수는 똑같은 높이의 점프를 하더라도,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또한, 강한 스매싱을 위해 더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체육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노력하면 잘할 수 있는 것이다'라는 말에 공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신체조건이 뛰어난 아이들에게 체육을 권하는 경향이 있다. 신체조건이 불리해 체육을 그만두는 사례도 있다. 물론 신체조건이 뛰어나다는 건 강점이다. 하지만 신체조건만을 이유로 자기가 품은 꿈을 접는다는 건 무책임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조건에 절망하지 않고, 그것을 메우기 위해 노력한다면 정재성 선수처럼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배드민턴부가 창단된 이후, '가장 기억에 남는 최고의 경기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최 감독은 하태권 선수의 경기를 꼽았다. 최고의 경기이자 황당했던 경기로. 
 최 감독은 "하태권 선수는 5판 3선승제 게임에서 이동수 선수(삼성전기)와 2:2 최종전을 가졌는데 하태권 선수가 갑자기 쥐가 났다며 기권을 해야 할지 고민했었다. 하지만 이동수 선수도 쥐가 나면서 쓰러졌고 서로 다리를 절면서 경기를 이어나갔다. 결국 이동수 선수가 먼저 기권했다"고 밝혔다. 최 감독은 "하태권 선수가 다리의 쥐 때문에 빨리 게임을 끝내려고 경기를 서둘렀다"며, "이렇게 경기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이동수 선수가 먼저 지쳤고 기권을 한 것"이라 설명했다. 하태권 선수는 찾아온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고 이 기회를 적극 활용해 상대방을 제압했다.
 김동문, 정재성, 하태권 선수는 우리대학 배드민턴부의 위상을 높여준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우리대학 배드민턴 선수들이 본받고 싶어 하는 김재권 트리오. 선배들이 과거에 화려한 업적을 남겼듯, 이제는 후배들이 충분히 좋은 업적을 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홍건호 기자 hong7366@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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