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15일 아침, 숨어있던 학교 뒤 신규수 군(현재 국사교육과 교수)의 하숙집으로 전화가 왔다. 벌써 도서관 앞에 수천 명이 모여 나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그동안 계속된 집회와 시위로 체력이 다하고, 피로에 지친 심신을 하루쯤 쉬게 하고 싶었는데... 개교기념일은 쉬는 날 아닌가. 더구나 전날 밤 내 하숙집 앞에 경찰 지프차가 지키고 있다는 정보를 들어 속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다, 빨래나 하며 쉬려고 했는데 신군도 빨리 나가잔다.

 오전 10시, 도서관 앞에는 이른바 훌라송을 선창하며 집회 준비를 마친 ‘비상대책위원회’집행부와 위원들이 도열해 있었다. 무슨 내용인지는 정확히 기억할 수 없지만 몇 분간의 연설을 마치고 학우들의 앞에 서서 교문을 나섰다.

 그리고 시가지 시위와 역전에서의 시민학생 합동집회... 학교에서의 심야탈출, 이화여대에서의 전국 학생대표자회의, 5·18, 수배, 체포, 수감, 군법회의 재판...

 젊은 시절, 민주주의를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던 내가 5월 15 우리대학 개교기념일이면 떠올리는 흑백 필름이다.

 요즘 각 방송사는 월드컵을 앞두고 무척 바쁘게 돌아간다. 매년 이맘때면 하던 봄철 프로그램 개편작업이 이 때문에 부분조정으로 그치고 말았음에도 나 역시 덩달아 바쁘다.

 내가 책임진 부서와 관련된 편성, 보도, 보도제작, 시사교양, 예능, 스포츠, 라디오, 외주센터 등의 움직임에 일일이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출근 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퇴근 시간은 정할 수 없다.

 이렇게 바쁜 가운데, 지난 4월 어느 날엔 사무실 유리창 너머로 펼쳐지는 벚꽃의 화려함을 완상하다가 세월을 훌쩍 거슬러 학창시절 봄꽃으로 수 놓은 우리학교 캠퍼스로 간 적이 있었다.

 물론 상상 속에서의 캠퍼스 산책이었지만 깨어나서 정신이 맑아진 느낌이었다. 나는 아직 그렇게 아름다운 캠퍼스를 본 적이 없다.

 60년의 연륜이 쌓인다고 모든 것이 다 우리대학 캠퍼스처럼 되는 건 아니다. 60년의 연륜 속에서 우리대학은 많은 인재를 배출해 냈다. 문학에서, 의료에서, 군에서, 법조와 행정에서, 언론에서...

 그러나 아직은 부족하다. 인재 배출은 아직 캠퍼스의 아름다움을 따라가지 못한다. 대 원광대학교의 내실을 다지는 새로운 60년, 봉황의 웅비를 기원 하면서, 사랑하는 모교의 개교 60주년을 거듭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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