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봉 여태명 교수님, 만나 뵈어 반갑습니다.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1995년 3월 1일 우리대학 교수로 부임해 현재까지 서예문화예술학과에 재직하고 있습니다. 서예문화예술학과는 현재 폐과가 된 상태입니다. 아쉬움이 남네요.
 제 호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효봉'은 새벽 효(曉), 봉우리 봉(峰) 즉, '새벽 산봉우리입니다. 새벽 산봉우리는 해가 뜨기 전 여명이 밝아오려고 할 때 해가 뜨는 곳이기 때문에 희망을 의미합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교수님께서 쓰신 표지석 앞에서 기념촬영을 해 화제입니다. '평화와 번영을 심다'라고 적힌 표지석은 어떤 경위로 쓰게 되셨나요?
 지난달 21일, KTX를 타고 서울로 가고 있는 길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수화기 속 주인공은 청와대 관계자였습니다. 그리고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죠. 저에게 기념식수 표지석에 글씨를 써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저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당연히 해드려야죠"라고 외치며 주문을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단, 조건이 있었습니다. 표지석이 언론에 공개되기 이전까지는 절대 외부에 발설하지 말아달라, 비밀을 지켜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청와대는 총 3가지의 서체를 써달라고 제안했습니다. 어떤 서체를 선정해 써야 하는지 많은 고민을 했고, 신중함을 기한 끝에 1안으로 훈민정음과 용비어천가를 혼용한 서체, 2안으로 나무에 새겨서 찍어낸 글씨를 뜻하는 완판본(목판본)체, 마지막 3안으로 민간서체 즉, 민체를 선정했습니다. 훈민정음과 용비어천가를 혼용한 서체는 훈민정음의 예쁘고 단조로운 특징과 용비어천가의 거친 특징이 혼용된 서체입니다. 완판본(목판본)체는 칼로 새겨서 찍어냈기 때문에 '칼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즉, 날카롭고 힘차고 딱딱하고 강한 특징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죠. 마지막으로 민체는 글씨 안에 남녀노소 개개인의 특징이 모두 나타나있고, 각각의 개성을 담아낼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여러 번 연습해서 글을 쓰지만, 그날은 어쩐지 한 번에 글이 딱 써졌습니다. 3가지 안을 청와대로 보냈는데, 며칠 뒤 3안인 민체가 최종 결정됐다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내심 저도 3안이 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었는데, 기분이 좋았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들은 이야기로는 대통령께서 직접 민체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영광이었습니다. 
 표지석에는 두 가지 서체를 섞어서 썼습니다. 직함은 훈민정음체로, 이름은 민체로 썼습니다. 직함은 정중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두 분의 성함은 곧 남북의 민간인을 대표하기 때문에 민체로 쓴 것이죠. 또한 훗날 남북한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고 자유롭게 왕래하기를 소망하는 마음도 담겨 있습니다.
 
 민체를 일평생 연구했다고 말씀하셨는데, 민체에 대한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민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서체의 종류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서체에는 원필과 방필, 궁필, 그리고 민체 등이 있는데요. 혹시 훈민정음에 쓰인 서체, '원필'을 아시나요? 훈민정음은 모든 국민들이 다 알죠. 하지만 훈민정음을 한 장 한 장 넘겨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실제로 어떤 서체로 되어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죠. 훈민정음에서 원필은 'ㄱ'은 'ㄱ' 'ㄴ'은 'ㄴ' 모양 그대로 한 글자 한 글자가 바르게 쓰인 것이 특징입니다. 정형화돼 있으며, 곱고 예쁘지요. 반면 거친 느낌의 방필은 용비어천가에 쓰였습니다.
 예쁘며 고운 느낌이 나는 궁중서체. 즉, 궁체라는 것은 여성들로부터 발전됐습니다. 마지막으로 민간서체. 즉, 민체는 남녀노소가 잘 표현돼 있습니다. 요컨대 나이와 성별, 개성이 잘 표현된 서체라는 것이죠. 민체는 개성적이며 독특하고 변화가 많은 부정형적 서체입니다. 그래서 더 자연스럽고 쓴 사람의 개성이 드러납니다. 또한, 특별한 교육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서민적인 성격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민체는 민간에서 이뤄졌던 소설이나 가사, 서민들끼리 주고받았던 편지들이 자료로 남아있어서, 그 자료를 찾아 연구한 끝에 민간서체라고 이름 붙이게 됐습니다.
 오늘날의 캘리그라피는 민체에서 유래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캘리그라피의 원조는 저입니다. 제가 처음 캘리그라피를 시작했고, 우리대학 제자들이 현재 전국으로 퍼져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에 대해 소개해주십시오.
 몇 가지 꼽아 보자면 예능프로그램 '1박2일'의 글씨가 가장 익숙할 겁니다. 또 YTN의 '돌발영상'과, 드라마 '꽃 찾으러 왔단다' 등이 있습니다. 현판으로는 '전주 IC의 톨게이트' 현판,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의 현판도 한 번쯤은 보셨을 겁니다. 캘리그라피에서는 국순당의 술인 '명작'의 라벨에 그려진 글씨가 있습니다. '명'에는 사람이 지구 위에 올라서서 컵을 들고 있는 모습이 들어있고요. '작'에는 사람이 팔을 뻗어 엄지를 치켜세운 형상이 들어가 있습니다.
 
 교수님께 서예란 무엇이며, 제자들에게 추구하는 교육 이념이 있으신지요?
 제게 있어 서예란, '생활이자 예술이며 표현이고, 나의 평생을 함께하는 동반자'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예술을 가르칠 때 창의성과 공부에 중점을 둡니다. 특히 창의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죠. 독창성, 개성, 다른 사람이 아닌 나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 이런 것들이 필요합니다. 한편, 예술에 있어 공부 또한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공부는 기초가 중요하기 때문에 깨어있는 마음과 어떠한 단계에서 멈추지 않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요컨대, '이론은 튼튼하게 하되, 개성은 살린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궁금합니다.
 서예가로서 제 이름, 효봉 여태명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본디 저의 전공은 동양화입니다. 저는 동양화와 한문서예와의 접목. 즉, 서예와 동양화가 조화를 이룬 융합예술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향으로 저의 예술을 계속 추구하며, 천지인(天地人) 시리즈를 계속 만들고 있습니다.
 천지인은 한글의 창제 원리입니다. 천지인은 하늘(天)과 땅(地), 그리고 사람(人)을 뜻합니다. 전 세계의 모든 문자 중에서, 사람이 중심인 문자는 한글이 유일합니다. 천지인에 쓰인 한자조차 나무나 하늘 등을 형상화시킨 표어문자입니다. 저는 한글의 모태(母胎)인 천지인을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이런 것들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쓰는 것과 표현하는 것은 다릅니다. 쓰는 것은 그저 써 내려가는 것이지만, 표현하는 것은 가슴에 새겨진 정신을 표출하는 것입니다. 이걸 어떻게 풀어 나가느냐는 각자에게 달린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우리대학 구성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남북정상회담 전에도 개인전이나 수상 등으로 방송에 나가거나, 기자들이 취재를 온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집중 조명을 받은 적은 처음입니다. 개인에게 있어서도 영광이지만, 학교에 있어서도 큰 홍보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전국, 나아가 세계적으로 제 이름과 원광대학교의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이런 부분은 중국과 일본, 말레이시아 등에 있는 지인들이 저를 봤다고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니 더 실감이 납니다.
 이런 기쁨도 있지만, 평생을 원광대학교에 몸담고 있었기에, 이곳이 나를 성장시켜 준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항상 우리대학을 고맙게 생각하고, 사랑하고 있습니다. 
 
▲ 여태명 교수가 <원대신문>을 위해 새로 쓴 '봉황각에서 만난 사람'
     
 
  조현범 기자 dial159@wku.ac.kr
  강동현 기자 kdhwguni16@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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