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길환 길 건축사 사무소 대표
 약 30년 전인 1990년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셨다고 들었습니다. 1990년대의 우리대학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나, 분위기 등이 어땠습니까?
 30년 전의 원광대학의 모습을 떠올리면 첫 번째는 '아름다운 캠퍼스'입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멋진 캠퍼스는 원광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닐 정도였습니다. 아마 지금의 모습보다는 좀 더 자연적인 캠퍼스의 조경, 경관, 건축물들이 원광대학을 우리나라 최고의 캠퍼스로 불리게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또한 한반 평균 학생 수가 120명대였던 꽉 찬 강의실이 지금과는 다른 풍경이지 않나 싶습니다. 이어 신축 도서관과 법학전문대학원이 들어선 수덕호 부근의 모습이 가장 많이 바뀐 것 같고, 그 외에 축제나 동아리 환경들이 바뀐 것 같지만 예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입니다. 
 
 대표님의 학창시절은 어떠셨나요? 학년 별로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요즘 학생들과는 너무도 다른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이번 인터뷰가 저의 지난 과거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드네요!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 초가집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살았습니다. 초가집 단칸방에 7명의 가족이 비가 오면 물이 새는 곳에 대야를 놓고 잠을 잤던 시절이었죠. 특별히 고교시절 320명의 동기생 중 저희 집만 전기가 안 들어오는 상황에 도시락은 당연히 보리밥이었고, 학교에서 실시하던 가정환경 조사(전자제품 소유 묻는 조사)는 어린 저의 마음에 아직까지 가슴에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그 당시 저의 꿈은 전기가 들어오는 집에서 1억 정도만 벌어보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지금은 년 간 매출이 수백억이 넘어도 더 열심히 뛰고 있으니, 사람 욕심은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고생이다 보니 대학교 입학 당시 제 성적은 거의 꼴찌 수준이었습니다. 더구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비를 낼 형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전액 장학금을 받기 위해 대학 4년 내내 4시간씩 잠을 자며 공부했습니다. 실제로 도서관엔 저의 지정석이 생길 정도였으며, 120명의 학생 중 1등을 놓쳐본 적이 없습니다. 당연히 축제나 엠티, 미팅 등은 가까이할 수 없었죠. 대신 졸업 때 공대 전체 수석 졸업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그 학창시절이 계기가 되어 졸업 후 처음으로 도전한 건축사시험에 바로 합격하여 사업체를 꾸릴 수 있었죠. 그 덕분에 현재는 제가 꿈꿔 온 것을 어느 정도 이뤘지만, 한편으로 메니에르병(난청, 현기증, 이명)을 얻어 평생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학창시절 매 끼니를 도시락으로 때우고, 도서관에서 창밖으로 보이던 가정관 잔디밭에 놀던 학생들을 부러워했던 기억이 머리에 그려집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저는 새로운 꿈과 희망, 그리고 목표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나눔과 배려를 한 곳에 담을 수 있는 장학 재단을 설립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조금씩 그 목표에 다가가고 있습니다.
 
 전공을 건축학과로 선택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으셨나요? 또, 입학 후에는 진로설계를 어떻게 하셨나요?
 학과 선택은 제 인생에 아주 큰 전환점이었습니다. 기계공고를 다녔던 고교시절 저의 전공은 기계설계제도였습니다. 고교를 졸업한 후 가정형편 상 취업을 해야 했지만 대학교를 진학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2년 동안 조금씩 돈을 모았고 부모님 몰래 학원을 다니며 공부해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께 대학 진학을 알리지 못한 탓에 부모님께 월급을 드려야 했는데, 처음에는 아르바이트를 해 마련한 돈을 드리다가 나중에는 너무 힘이 들어 집에 대학교 입학 사실을 알려, 많이 혼났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에는 부모님이 너무 원망스러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집에 쌀도 없는 형편에 공부만 한다는 아들이 미우면서도 한편으로 미안했을 것 같아 이해가 됩니다.
 건축과를 선택한 것은 고교시절 전공이 기계설계이니 건축설계도 맥락이 같을 거라 생각하고 선택하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시절 어려운 가정환경을 고려해 공무원 공부를 병행했는데, 우연히 참가한 전북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설계에 대한 꿈이 생겼습니다. 이후 어렵게 부모님을 설득해 건축설계 분야에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하여 오늘에 이르게 됐습니다. 
 현재 '(주)길종합건축사사무소이엔지'의 CEO로 계십니다. CEO가 되기 전까지 어떤 준비와 활동을 해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주)길종합건축사사무소이엔지(이하 길 건축)를 1996년에 설립했습니다. 제가 1990년에 졸업을 했으니 돌이켜보면 졸업 후 만 5년 만에 건축사시험에 합격한 것이었고, 이후 사무소를 개소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저는 졸업 후 직장을 다니면서 휴일이면 서울 소재 주말반 학원을 다니며 건축사시험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시험 응시가 가능해진 5년 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고시원에서 숙식을 하면서 1년간 열심히 공부한 끝에 합격을 한 것입니다. 
 기업의 CEO로서 사회초년생들을 보면서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회사에 입사한 신입직원들이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회사를 그만 둘 생각부터 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모교 교수님 추천으로 입사한 후배가 쉽게 그만둔 적이 있었는데 참 안타까운 마음이었습니다.
 
 ㈜吉종합건축사사무소이엔지에 대해서 소개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회사를 소개하려고 하니 좀 쑥스럽네요. 길 건축은 한두 명의 직원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직원 300여 명에 매출 300억 원을 올리고 있습니다. 건축설계와 감리, 엔지니어링 등의 분야에 걸쳐 국내 동일 분야 상위 1% 안에 드는 기업으로 성장했지요.
 현재 길 건축사사무소는 서울에 지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공모분야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에는 한국건축문화상 전체 대상을 차지하는 영예를 차지했습니다. 이것은 지방 소재 기업으로는 최초의 수상으로 우리 길 건축의 위상이 드높아지는 순간이었다고 자랑합니다.
 
 CEO로서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경영에 임하시나요?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경제적으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따라서 저의 경영마인드는 분배와 배려, 나눔을 함께 하려고 합니다. 
 저의 경영방식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첫째는 연 매출은 투명하게 회계하여 저의 이익금의 25%를 연말에 성과금으로 직원들에게 지급하고 있습니다. 2010년부터 20%로 시작하여 현재는 25%를 지급하고 있는데 앞으로 조금씩 더 늘릴 예정입니다.
 둘째는 부모님을 모시는 직원들에게 정기적으로 상품권을 보내고 격려합니다.
 셋째는 매년 송년회나 해외여행 등을 진행하고 있는데, 올해에는 '부모사랑 효 송년회'를 열 계획이며 직원 부모님에게 선물을 지급할 예정입니다. 
 넷째는 대학원에 진학한 직원에게 학비를 보조해주고 있습니다.
 다섯째는 장학 재단을 설립해 어려운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입니다.
 여섯째는 지난해부터 1천만 4만 원을 기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기부를 '천사 기부'라 생각하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기부활동을 펼칠 생각입니다. 
 
 우리대학은 산학일체형 대학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입장에서 이러한 전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대학이 예전처럼 지식의 상아탑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원광대학처럼 산학협력 중심의 대학을 넘어서 산학일체형 대학으로 변화를 선택한 이상, 산학협력 중심 체계를 구축하고 산업체 네트워크 확대를 통해 사회 맞춤형 사업기반을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더불어 현장 중심 지능형 교육시스템을 구축하고 수요자 맞춤형 교육과정도 개발 운영해 융합, 창의, 인성 교육을 확대해 나갔으면 합니다.
 또한, 국내를 비롯해 해외 기업까지 현장실습이 가능한 글로벌 인턴십 프로그램도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합니다.
 지난 2월 우리대학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생들에게 "새로운 길에서 우리 후배님들이 힘내고, 그 길에서 열정으로 가득 찰 것을 기대한다"며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시간 관리에 특별한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학위수여식에서 "열정으로 가득 찰 것을 기대한다"고 말한 것은 후배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성공의 열쇠가 지방과 수도권 등 지역에 상관없이 '열정적인 삶과 노력, 그리고 시간의 투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후배들이 사회에서 당당하게 활동하고 있는 선배들의 뒤를 이어 열정적인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하지만 노력 없이 대가가 그냥 따라오지는 않습니다. 후배님들이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길 기대합니다.

  정리: 조현범 기자 dial159@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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