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굴곡진 한국 현대사에 대해 어느 정도 생각이 있게 된 데에는 순전히 ‘K’ 덕이다. 그는 철딱서니 없이 나와 얽혀 구르던 시절의 친구 녀석이다. 머리가 굵어가고 옹졸한 가슴팍이 세상 풍파에 휩쓸려도 그는 뚜렷하게 잡힌다.

 현대사에 등장하는 인물과 시대 배경의 관계 등이 내 골수에 굳은 채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은 전적으로 그 자식 때문이다. 저나 나나 어렸을 때에 비하면 그나마 먹고 사는 형편이 나아졌다.

 허나 여전히 만나기만 하면 세상사에 연애사에 주야장천 떠들어댔다. 녀석의 5.16에서 5.18까지의 생생한 현대사 메들리는 변함없이 여전할까?

 거들떠도 안 보는 뉴스를 어쩌다가 보면 국회에 계시는 분들의 크게 나아지지 않은 행태가 보인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는 별 것 아닌 연예 기사가 떠돈다. 나날이 충격적이고 섬뜩한 사건들이 벌어져도 ‘자기’와 연관되지 않는 현상들은 서로를 무감하게 겉돈다. 세상사에 투철하지 않아도 될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역사와 사회의 거대 이데올로기에 개인의 자유나 권리가 외치는 고함은 너무 동 떨어지게만 여겨진다. 일상의 시대는 자기 몫을 감당할 시간들로 무척 분주하고 또 부족할 따름이다. 역사 보다 인간이 먼저 소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지만 속이 뒤틀린다. 쉽게 잊는 너나 잘 잊는 나나, 피안의 그들과 세속의 아비규환, 언젠가는 한 데 만날지도.

 내가 늘 빚을 지는 선배로부터 얻은 박세길의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 1·2·3』을 비좁은 책장 어디쯤에서 뽑아든다. 낡고 여윈 반세기 가량의 뭉텅이가 아릿하기만 한데 헐겁게 넘겨진다. 이건 책도 역사도 아닌 듯 싶다.

 이미 내가 아닌 ‘무엇’, ‘아무것’도 아닌 ‘어떤’ 딴 세상의 시간 같다. 누가 누구를 심판하고 구원할까. 1980년 5월의 화엄 광주는 피로 얼룩진 순수성의 서정이다. 

 시간과 공간은 몸을 얻었다가 분신을 하거나 익사체로 물의 밥이 된다. 먹먹한 목소리가 운다. ‘사람들이여 이 가운데 살아남는 사람 있다면 그녀의 무덤에 내 이름으로 된 말; 여보, 당신은 천사였오. 우리 천국에서 만납시다. 적어주시오’그대의 잠은 바닥 모르고 깊이 잠들어 가차 없다.

 그럼에도 통속은 감히 영원히 사랑한다고 떠든다.
수직과 순환의 시공간에서 빛과 어둠은 깨어졌다 뭉치고 엉겼다가 흩어진다. 우리는 살아있는가. 과연 살아 숨쉬는 것이 맞는가.

 그대들의 무덤 위에서, 그대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니다. 흉터는 아물라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곪으면 다시 터질 줄도 알아야 한다. 심장을 저는 그대에게서 박하향이 난다. ‘그대, 아직 이 실 끝에 있는갗
천 명 구 (인문학부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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