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문 부문 장원>

눈부처

최유진(동화고)

 

  교통조사계라고 쓰여있는 푯말이 곧바로 눈에 띄었다. 아버지는 푯말 앞에 앉아있었다. 아버지의 옆에 앉은 남자와 뭐라고 말을 하며 다투는 것 같았지만 경찰서 안의 격앙된 목소리들에 파묻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아버지가 앉은 의자 옆으로 다가갔다. "당신들 몰라서 그러는데 내가 왕년에 복싱 선수였어, 왜 이래. 이 팔이 그냥 팔이 아니란 소리야." 

 아버지는 남자와 경찰을 번갈아 보며 나무뿌리처럼 울퉁불퉁하고 까무잡잡한 팔뚝을 휘적거리고 있었다. "이미 자해공갈 전과가 있으니까 잡혀 오신거 아니에요." 경찰은 따분하다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사람을 차로 쳐 놓고 200을 못 주겠다는 거야 뭐야." 아버지는 고함을 치고는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 눈을 감았다 떴다. 아버지의 잿빛 셔츠에서는 땀냄새와 담배냄새가 섞여 났다. 어둠에 찌든 아버지의 얼굴은 상처 투성이였다. 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매섭게 노려봤다. 별안간 세상이 둥근 거울 조각 속에 가득 들어찼다. 아버지의 얼굴도 둥글게 부풀어 올랐다. 곧 흘러내릴 것처럼 아버지의 얼굴이 눈가에 바들거리며 매달렸다. 나는 고개를 휙돌리고 빠르게 눈가를 닦았다. 자꾸만 솟아오르는 아버지의 얼굴을 닦았다.
 아버지는 복싱 선수였다. 프로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애매해 그저 복싱 선수라는 이름만 가슴팍에 붙이고 다녔다. 내가 태어나고, 아버지는 여러 체육관을 전전하며 보조 코치로 일했다. 아버지의 이름을 내걸고 체육관을 차리는 게 꿈이었지만, 아버지가 벌어오는 돈으로는 어림없는 소리였다. 게다가 아버지는 체육관에서 번번이 잘렸다. 아버지가 다섯 번째 다니던 체육관에서 쫓겨나던 날, 엄마는 집을 나갔다. 돈을 벌기 위해 한 달만 다녀오겠다던 엄마는 끝내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울지 않았다. 나도 울지 않았다. 아버지와 내가 엄마를 버린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 말을 하며 그저 가만히 서로의 눈부처를 응시했다. 그건 어떤 커다란 위로가 됐다. 아버지와 나는 그렇게 꾸역꾸역 살았다.
 언젠가 아버지의 체육관을 찾아갔던 날이 있었다. 링 위에 선 아버지는 백글러브를 찬 채 코너에 몰려있었다. 통나무 같은 몸을 가진 젊은 남자는 아버지에게 무참히 주먹을 날렸다. 아버지가 컥, 소리를 내며 바닥에 비스듬히 주저앉았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아버지의 돈과 마주했다. 얼굴에 피딱지가 내려앉은 아버지가 손에 꾹 쥐고 들어오던 십 만원 남짓의 꾸깃한 돈과.
 나는 아버지의 손목을 끌고, 경찰서를 빠져 나왔다.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큰 소리로 고함을 쳤다. "이젠 이렇게 돈 안 벌기로 약속했잖아. 그깟 대학이 뭐라고. 나 대학 안가고 말래.  더러운 돈으로 가느니…" 앞서 걷던 아버지는 나를 향해 걸어왔다. 나는 아버지를 가만히 노려봤다. 아버지의 눈동자 속에 잔뜩 얼굴을 찡그린 내가 있었다. 내 눈동자 속에도 아버지가 있겠지. 언젠가 거울 속에는 그 사람의 겨울이 담겨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아버지와 나의 눈동자는 서로의 겨울을 비추고 있었던 것일까. 다시 세상이 둥근 거울 조각 속에 갇혔다. 아버지의 뒷모습이 내 눈앞에 둥글게 몽우리졌다. 멀리 걸어간 아버지는 주머니 속에서 담배를 꺼내고 있었다. 틱틱, 라이터를 켜는 소리가 처량했다. 가스가 다 되었는지 라이터에서는 작은 불씨만이 튀어올랐다. 나는 눈가를 훔치고, 아버지의 모습을 멀찍이서 바라보았다.
 둥글게 어깨를 오므린 아버지는 꼭 가드를 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체육관에서 백글러브 하나로 아버지의 얼굴을 막아내고 있었던 것처럼. 아버지는 거울 앞에 서있었다. 늘 반복되는 겨울의 굴레 속에. 
 
당선 소감 - 산문 장원 최유진(동화고)
 
 오래전 아버지의 눈부처를 본 일이 있었습니다. 선명하면서도 낯설게 아버지의 눈 속에 제가 비춰 보였습니다. 그 짧은 경험이 저에겐 참 오랜 시간 기억에 남았습니다. 백일장 시제인 '거울'을 보고, 그때 그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아버지의 눈부처. 그 속에 비친 제 모습. 그래서 제 기억 속, 아버지의 눈부처를 글에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시상식을 하기 전 이상복 교수님의 심사평 중 그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보여주는 이야기보다 들려주는 이야기를 쓰라고. 저에게 그 말씀이 정말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항상 글을 쓰면서 어떤 글은 묘사에만 과하게 치중하게 됐고, 또 어떤 글은 이야기 짓기에만 충실했습니다. 사실 그 절충점이 필요했던 것인데, 저는 그 지점을 찾는 게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는 꼭 저의 고민을 간파하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시듯 넌지시 그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들려주는 이야기, 보여주는 게 아닌 이야기. 장원이라는 상보다도 저는 교수님의 그 말씀을 얻어갈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글을 본격적으로 쓴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래서 문장조차도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걸 잘 압니다. 짧은 시간 안에 글을 풀어낸다는 강박에 휩싸여 백일장에서 잘 쓴 글보다 못 쓴 글이 더 많았던 것도 사실이고요. 그런데도 이렇게 큰 상을, 그것도 역사 깊은 원광대 백일장에서 덜컥 받아 버려서 기쁨보다 걱정이 앞섭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자만하지 않고, 남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글을 쓰겠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이렇게 큰 상 안겨주신 원광대학교의 많은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산문 부문 차상>
 
지붕의 무덤
김수연(순심여고)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은 에베레스트가 아닌 나의 집이었다. 녹슨 창문을 열어 내려다보면 나의 집을 중심으로 지붕들이 파동처럼 퍼져있었다. 처음에는 다른 색이었을 지붕들은 근육처럼 뭉쳐져 함께 바래갔다. 덩어리 진 동네를 구별해주는 것은 골목길이었다. 곳곳에 굽이 진 골목들은 지붕과 지붕 사이에서 사람들이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줬다. 사람들을 숨 쉬게 해주는 혈관처럼 골목은 동네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 뿌리가 하나로 모이는 집이 자랑스러웠다. 나의 집은 심장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턱을 괴어 골목길 끝에서 다가오는 구부정한 인영을 바라보았다. 
 자연의 섭리처럼 돌아가던 동네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 나타난 거대한 포크레인이 동네 외곽을 기점으로 침범해왔다. 동네사람들은 아침이면 골목길로 쏟아져 나와 포크레인을 공격했다. 하지만 포크레인의 기세는 줄어들지 않았다. 사람들이 지쳐 골목에 흘러들면 지붕은 용수철처럼 사람들을 끌어들여 자신의 속을 일발장전 했다. 나는 그 모든 순간을 무서워하면서도 아버지의 굽은 등이 골목 어귀를 내려가는 모습을 끝까지 바라봤다. 아버지는 굽이 진 골목길을 따라 천천히 흘러갔다. 심장이 멈추지 않고 살아있는 것에는 아버지같은 세포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날이 갈수록 지붕으로 만들어진 더미들이 늘어났다. 봉긋하게 올라간 지붕의 파편들은 무덤처럼 동네에 자리잡았다. 동네를 이어주던 골목길도 점차 짧아져갔다. 무덤들이 늘어나자 더 이상 이어줄 지붕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아침이면 가득 차있는 골목길을 보는 것도 점점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지붕 속에 장전되어 잡아먹혔는지 나오지 않았다. 그런 지붕들은 대개 곧 무너졌다. 자신이 있었다는 표시라도 남기고 싶었다는 듯 무덤같은 파편만 남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오직 아버지만이 아침마다 꾸준히 골목길을 나섰다. 굽은 등이 굽이 진 골목길을 걸어가는 모습은 꽤나 잘 어울려 보였다.
 순찰을 돌기로 시작한 것은 이미 동네가 반쯤 허물었을 때의 일이었다. 나는 헐렁이는 바지 안에 돌멩이를 넣으며 밤 속을 걸었다. 바지가 무거워지자 걷는 것이 힘들어졌다. 힘겹게 밤공기 속을 밀어내듯 걸었다. 이제는 지붕 아래에 사라져 버린 사람들이 생각났다. 몇 없는 가로등의 불빛이 벽마다 칠해진 빨간 스프레이를 비췄다. 안네 프랑크가 달고 다녔던 다윗의 별처럼 스프레이가 빛났다. 서둘러 돌아가려던 순간 가까이서 부서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바지를 추스르며 다가갔다.
 가로등이 비치는 곳에 남자가 서있었다. 남자는 지붕 위로 올라가 망치를 내려쳤다. 남자의 얼굴은 지붕으로만 고집스럽게 향했다. 남자는 굽은 골목길을 바로 세우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어지럽게 튀어나온 지붕을 내려쳤다. 남자의 구부정한 등 너머로 희미하게 동이 트고 있었다. 나는 남자가 돌아보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주머니에서 흔들리는 돌 때문에 바지가 자꾸만 흘러내렸다.
 전구가 깜빡거리며 꺼지자 집 안은 옅은 어둠에 잠겼다. 정사각형의 높은 건물이 태양을 가렸다. 골목길과 지붕이 있던 자리에는 다른 건물이 들어찼다. 혈관이 끊겨버린 심장만이 덩그러니 동네 한복판에 뒹굴었다. 너절하게 끊긴 어두운 심장 속에서 나는 눈을 감았다.
 
당선 소감 - 산문 차상 김수연(순심여고)
 
 곽순자
 나를 만들었고 나를 길러냈으며 내가 되어가고자 하는 사람
 나의 할머니
 김철규 김승재 김은의 김철현
 나에게 피와 살을 나눠준 사람
 나의 부모님들
 김소희 김채연 김소미 김성언
 나와 다른 듯 닮은 손바닥 같은 사람
 나의 자매들과 형제들
 정현민 이혜정 박채연 김민지 이은규 고다현 서민지 장영은 
 나에게 나의 가치를 알려주고 나의 세계가 되어준 사람
 나의 친구들
 박진아 이상우 전봉준 신소연 류수원 김선경 이미영 
 나를 각자의 방법으로 돋아나게 해준 사람
 나의 선생님들  
 김유경
 나보다 먼저 나의 길을 알아봐준 사람
 나의 은사님
 이은경 
 나의 시간이 늘 결정적 순간이도록 만들어준 사람
 나의 친구 같은 선생님
 
산문 부문 심사평
제한적 글쓰기와 '서사의 응축'
 두 시간 동안 2,000자 내외의 글쓰기를 통해 어떠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우리 백일장의 제한적 글쓰기는 서사의 응축을 요구한다. 서사를 응축한다는 것은 형용모순이다. 서사는 확장하는 것이지 응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찍이 카프카나 보르헤스 같은 세기의 대가들이 이러한 글쓰기의 전범을 보여준 적이 있다. 이들은 서사의 확장성을 서정의 응축력으로 제어함으로써 많이 쓰지 않고도 많이 말할 수 있었다.
 물론 우리 백일장의 글쓰기를 대가들의 위대한 작업과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제시한 제한적 글쓰기의 의도를 알아채고 좋은 글을 쓴 참가자들이 많았다. 반세기가 넘는 이 대회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던 심사였다.    
 심사위원들이 눈여겨본 작품은 김수연의 「지붕의 무덤」, 김주은의 「거울 속 아이」, 박준영의 「프랏차야와 국수 한 그릇」, 최유진의 「눈부처」, 황지원의 「거울」 등이다. 심사위원들은 최유진의 「눈부처」와 김수연의 「지붕의 무덤」을 두고 잠시 고민했다. 
 김수연은 좋은 문장을 선보였다. "지붕들은 근육처럼 뭉쳐 함께 바래갔다"라든가, "혈관처럼 골목은 동네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와 같은 표현은 치열한 글쓰기 훈련의 결과일 것이다. 재개발 되는 도시를 혈관과 근육으로 비유하고 있는 작품의 도입부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훌륭한 이야기 공간을 구축해 놓았으나 그 안에 인물과 사건을 담는 것에는 소홀했다는 것이 아쉬웠다.
 최유진의 「눈부처」는 3류 인생을 살아가는 늙은 복서에 관한 이야기이다. 경찰서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늙은 복서와 그 광경을 바라보는 자식의 심경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세상이 둥근 거울 속에 갇혔다"와 같이 눈동자를 '둥근거울'로 비유한 문장을 작품의 시작과 끝에 배치하여 완결성을 높이고 있다는 점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부모와 자식의 감정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한 순간을 포착하고, 이를 절묘하게 응축해낸 「눈부처」를 장원으로 선정했다. 
 김주은, 박준영, 황지원의 작품 또한 독특한 상상력과 안정된 문장으로 제한된 글쓰기 상황을 잘 극복하고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작품의 장단점을 일일이 거론하지는 못 했지만 모두들 장원에 버금가는 필력을 선보였다는 점만은 언급해 두고자한다. 장원을 비롯한 입상자들에게 축하의 말을 전한다.
 심사위원: 이상복(평론가, 문예창작학과 교수), 정영길(소설가, 문예창작학과 교수), 김용상(글쓰기 교수), 김기용(글쓰기 교수), 한인철(글쓰기 교수), 박종훈(글쓰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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