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현범 기자

  사람과 나무, 나무와 사람은 서로를 서로에 빗대는 속담이 많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은 떡잎과 어린아이에게서 같은 가능성을 보고 있고, '곧은 나무 먼저 베인다'는 속담은 '겉으로는 강직한 듯한 사람이 의외로 약해 잘 굴복함'을 비유적으로 뜻하는데, 실제로 벌목에 있어 곧은 나무는 목재적 가치가 높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베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또, '가지 많은 나무가 잠잠할 적 없다'는 속담도 있다. 이 속담은 '가지가 많고, 잎이 무성한 나무는 약한 바람에도 흔들려서 잠잠할 때가 없다'는 말인데, '자식을 많이 둔 부모는 근심과 걱정이 끊일 날이 없다'는 뜻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제 사람을 곧 나무로, 나무를 곧 사람으로 보는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보자. 나무의 시작은 떡잎이 아니라 '열매'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러한 관점에서 '열매를 맺다'라는 관용구를 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노력한 일의 성과가 나타났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열매'라는 명사는 '맺다', '익다', '달콤하다'와 같이 긍정적인 단어와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예를 하나 들어, 복숭아나무의 열매인 복숭아를 상상해보자,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비치고, 새벽녘에 맺힌 이슬이 식욕을 자극하는 연분홍 색상의 윤곽을 따라 흐르고, 한 입 베어 물면 달콤한 과육이 입안 가득 고인다.
  복숭아 열매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태양빛을 받아 광합성을 하고, 비바람을 견뎌내며 수분을 머금고, 병충해의 위협으로부터 저항한 끝에 얻어내는 값진 산물이 바로 그 달콤함이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뜻의 사자성어 '고진감래(苦盡甘來)'가 달콤한 열매의 속성을 잘 나타낸다.
  열매에도 종류가 여럿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씨방만으로 구성된 '참열매'는 대표적으로 복숭아나 귤 등이 있고, 씨방만으로 구성되지 않은 '헛열매'는 배, 사과 등이 있다. 흥미로운 건 '폐과'와 '열개과'다. 폐과는 열매가 다 자라도 터지지 않고 껍질이 씨를 싼 채로 떨어지는데, 밤이 대표적으로 여기 속한다. 열개과는 성숙하면 과피(껍질)가 갈라지는 데, 대표적으로 완두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열매의 종류를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 내가, 우리가 하고 있는 것들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일, 같은 교육을 받아도 같은 땅에 묻혀있을 뿐, '나'라는 열매는 제각각이다.
  열매는 땅에 묻히기만 한다고 싹을 틔우지 않는다. 북아메리카 원산지인 뱅크스소나무는 산불을 통해서 싹을 틔우기도 한다. 뱅크스소나무의 솔방울은 단단하게 닫혀 있어 종자가 쉽게 나오지 못하는데, 산불은 고온이라는 자극을 줘 꽉 닫혀있던 솔방울이 열릴 수 있게 도와준다. 서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기계발서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잘 풀리고 있지 않다면, 환경을 바꿔보라"는 말을 던지곤 한다. 필자는 역시 이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이다. 다만, 필자는 환경보다는 '자극'을 바꿔보라고 덧붙이고 싶다.
  열매가 지닌 사명(使命)은 맺히는 것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달콤한 열매든, 씁쓸한 열매든, 맛은 중요하지 않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고 나무가 돼, 꽃을 피우는 것이 그가 지닌 사명이다.
  지금 자신의 열매는 어떠한지 생각해 보자. 받고 있는 자극이 너무 강해 닫혀있는 상태라면 자극을 줄여 숨을 트여 주고, 받고 있는 자극이 너무 약하다면, 더 강한 자극에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가 싹을 틔운다면 거기서 안주하지 말고 더 노력해보자. 언젠가 거목이 되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때까지.

조현범 기자 dial159@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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