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슬람은 너무나 멀고 이질적인 세계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이슬람권과 다방면으로 교류가 증가하고 있고, 국내의 외국인 및 한국인 무슬림 숫자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북미와 유럽 등지에서 오랫동안 정착하며 형성된 이슬람 공동체가 독특한 문화와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동아시아, 더 나아가 한국의 이슬람 공동체는 어떠한 모습을 하고 어떻게 우리와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이슬람 세계의 신비철학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이슬람 공동체가 중국 고유의 사상과 소통하며 중국화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바 있다.이 점에서 이슬람의 신비철학 사상이 형성된 과정을 개관함으로써 앞으로 동아시아적 맥락에서 이슬람 공동체의 토착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실마리를 얻고자 한다.
 이슬람은 유대교, 그리스도교로 이어지는 아브라함의 유일신 종교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는 종교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명령을 받들어 자신의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창세기 속 인물로, 하느님에 대한 철저한 믿음과 복종을 상징하는 유일신 신앙의 시조와 같은 인물이다. 이슬람은 아브라함처럼 하느님에게 철저히 복종하는 것을 신앙의 핵심으로 삼는데, 사실 이슬람이라는 말 자체가 하느님에게 절대적으로 귀의, 복종한다는 뜻의 동명사이며, 이슬람 신자를 뜻하는 '무슬림'은 하느님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사람이라는 능동분사 형태의 단어이다. 이슬람이라는 이름이 더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은 이 이름이 외부인들이 붙여준 것이 아니라 무슬림들이 하느님의 말씀 그 자체라고 여기는 경전인 '꾸란코란에 등장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슬람은 유대교, 그리스도교와 같은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종교인 것이다. 다만, 이슬람이 여타 유일신교와 다른 점은 하느님이 인류에게 보낸 수많은 예언자 중에서도 무함마드야 말로 최종적으로 하느님의 계시를 완벽하게 전달한 예언자의 봉인이라고 본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는 22년간 다양한 상황과 조건 하에서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하느님의 말씀이 계시되었고, 그 말씀 자체가 꾸란에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슬람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인 꾸란과 예언자 무함마드가 보인 말과 행동을 모범으로 삼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행위를 중시한다. 다시 말해, 단순히 '유일신 하느님을 믿는다'는 신조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슬람에서는 신앙의 핵심을 '다섯 가지 기둥(五柱)' 혹은 '다섯 가지 행위(五行)'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본다. 다섯 가지 실천은 바로 신앙고백 예배 순례단식 희사로, 각기 '하느님 외에 다른 신은 없고, 예언자 무함마드는 하느님의 사도'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증언하는 것, 하루에 다섯 차례 드리는 예배, 일생에 한 번 정해진 기간 중에 메카를 순례하는 것, 라마단월에 한 달간 낮에 금식하는 것, 빈자를 위한 자선행위를 말한다. 이 다섯 가지는 이슬람을 믿는 자, 즉 무슬림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의무 사항으로 이슬람 신앙의 외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슬람에서는 하느님에게 복종하는 외적 방법 외에도 내면적으로도 하느님에게 더 가까이 가기 위한 신앙적 노력을 지속해 왔다. 기도와 수행을 통해 하느님에게 다가가, 마침내 일치를 이루려는 내면적인 움직임이 꾸준히 이어져왔다. 하느님과 하나되는 신비체험을 추구하는 이슬람의 수도승을 수피 라고 하는데, 이는 허름한 양모를 걸친 탁발승을 지칭한다는 점에서 양모를 뜻하는 수프 에서 유래했다고 일컬어진다. 이슬람 신비주의라고 불리는 신앙의 내면적 길은 특정한 분파나 학문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초기의 금욕적 수행부터 신비 문학, 민중의 성인 숭배, 복잡한 신비철학 이론 및 조직화된 교단 활동까지 폭넓게 전개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신비주의가 이슬람 신앙의 외면적인 길과 동떨어지지 않은 것은 신비주의 역시 하느님의 말씀인 꾸란과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에 그 근본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꾸란에는 이미 내재적이고 친근한 하느님에 대한 관념이 엿보인다. '우리는 인간의 경정맥보다도 더 인간 가까이에 있다.'(꾸란50장 16절)라든지, '동쪽도 서쪽도 하느님의 소유이며, 너희들이 어디를 바라보더라도 하느님의 앞이다.'(꾸란2장 115절)라는 구절이 대표적인 표현으로, 여기서는 세상과 격절되어 있는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서 우리와 함께 현존하는 내밀하고 친근한 하느님의 모습을 읽어낼 수 있다. 무슬림 신비가들은 꾸란 구절의 신비적 해석을 통해 하느님 말씀의 표면 속에 숨어 있는 뜻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라고 믿는다. 더 나아가 이들 신비가들은 수피의 전형이자 모범은 다름 아닌 바로 예언자 무함마드라고 말한다. 하느님이 선택한 최고의 최종적인 예언자라는 점에서 무함마드는 완벽한 인간이며, 하느님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간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내면적인 신앙의 길은 먼저 금욕주의적 수행법을 통해 이루어졌다. 철저한 금욕적 수행을 지키는 가운데 권력자에게 날 선 비판을 멈추지 않았던 하산 알 바스리(d.728), 부족의 지배자였으나 모든 부귀영화를 뒤로한 채 방랑의 금욕 수행을 보냈다는 점에서 고타마 싯다르타의 출가와 자주 비교되는 이브라힘 아드함(d.777), 기도와 단식 수행의 최고봉이자, 꾸란에 대한 최초의 신비적 주석가로 일컬어지는 사흘 투스타리(d.896)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느님에 대한 경외가 점차로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감정으로 바뀌면서, 라비아 아다위야(d.801)와 같은 여성신비가가 등장하기도 한다. 라비아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하나의 이념으로 정립시킨 인물로, 천국에 대한 갈망이나 지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하느님을 추구하는 것은 순수한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아니며, 오히려 하느님에게 다가가는 길을 방해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비판하였다. 하느님에 대한 이러한 절절한 사랑의 감정은 하느님과의 일치 상태에 도취된 나머지 '내가 바로 진리라고 선언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이 대담한 선언을 했던 만수르 할라쥬 (d.922)는 신성모독으로 처형되고 말았는데, 이는 신비가의 내면적인 신앙과 체험이 전통적이고 외면적인 신앙의 길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수용하기 힘든 것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소수의 수행자에게만 전승되던 신비적이고 엘리트적인 신앙의 길도 전통적인 교의의 틀 안에서 재해석되는 계기가 있었다. 이는 바그다드의 최고 교육기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당대 정통 신학과 법학의 최고 권위자로 우뚝 섰던 아부 하미드 알 가잘리(d.1111)를 통해서였다. 가잘리는 이슬람 사상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손꼽히며 현대 이슬람세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인물인데. 최고의 신학자이자 법학자였던 그는 이성적 지식에 회의를 품고 37세에 모든 지위와 명예를 뒤로한 채 탁발승이 되어 순례길에 올랐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신비적 수행의 경험을 외면적이고 전통적인 신앙의 언어와 실천으로 녹여내어 『종교학의 부흥이란 대저작에 담았다. 이성적 학문과 신비적 수행의 철저한 재해석을 통해 내면적 신비와 외면적 신앙의 길을 조화시킨 것이다.
 이후로 하느님과 일치를 추구하는 신비적인 수행 방법과 그 과정에서 체험하게 되는 갖가지 신비 상태는 이슬람 세계에서 고도로 발달된 철학적 방법을 통해 세련되고 사변화된 방식으로 표현되기에 이르렀다. 신비주의 고전기에 발달한 수행론, 영혼론과 더불어, 복잡하고 정치한 존재론과 우주론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이슬람 세계를 통틀어 지금까지도 유의미한 영향력을 가진 이슬람 신비철학파로는 수흐라와르디의 조명학(照明學)과 이븐 아라비의 존재일성론, 그리고 사파비조의 예지철학을 들 수 있다. 먼저 조명학의 창시자인 수흐라와르디(d.1191)는 이단 혐의로 시리아 알레포에서 처형된 순교한 수흐라와르디로도 불리는데, 그는 유출론적 세계관에 바탕하여 '빛의 형이상학'이라고 불리는 독자적 사상을 구축하였다. 그는 모든 것은 빛이며, 근원적인 빛으로부터 발현된 것이므로 인간은 육체적 속박을 벗어나 빛의 세계로 귀의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븐 아라비(d.1240)도 유출론적 사상을 바탕으로 신비사상을 전개했는데, 그는 하느님이야 말로 모든 존재의 근원이며 유일하게 참된 존재라고 보았다. 이베리아 반도를 출발하여, 북아프리카와 메카를 거쳐 다마스쿠스에서 생을 마감한 이븐 아라비는 하느님에게 가장 근접한 완벽한 인간상으로 완전인간론 을 제시하면서 이슬람 세계 전체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이 두 가지 위대한 이슬람 신비철학사상을 통합적으로 재해석해낸 이는 사파비조의 대표적인 시아파 철학자, 물라 사드라(사드르 알 딘 시라지, d.1635?)였다. 그는 이성과 직관, 철학과 신비주의를 탁월하게 통합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현대 이란의 종교 사상, 학문의 기초를 제공한 위대한 사상가로 연구된다.
 이렇게 이슬람 역사와 함께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 발전한 이슬람의 신비철학사상은 이슬람의 수도교단의 확장과 더불어 중국에도 널리 퍼져나갔다. 특히 명대에 들어서 한족 중심주의가 관철되고, 이슬람 현지 세계와 교류가 줄어들면서 오래 전부터 중국에서 공동체를 형성해 왔던 무슬림들은 중국의 언어와 문화, 사상을 통해 자신들의 신앙과 삶을 중국화해가기 시작했다. 많은 존재일성론적 신비철학서들이 주자학적 사고방식을 통해 재해석되고, 유교적 언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중국에서 한족들과 공존하기 위한 노력이 끊임없이 이어진 것이다. 이슬람 세계는 더 이상 지구 저편에만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문화적,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무슬림들은 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이웃으로 존재한다. 이슬람 신비철학이 전개되어 온 과정과 그 추구하는 바를 이해한다면, 우리 사회 안에서도 신앙적인 대화, 더 나아가 공존을 위한 창조적인 노력들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송영은 교수(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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