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대신문>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고통을 학생들이 기억하고  문제해결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본 기획을 준비했다. /편집자  

 

 

지난 10일, 숭산기념관 앞에 주름살 가득한 할머니들이 그려진 포스터가 불어오는 바람에 조용히 흔들렸다. 숭산기념관 1층에 마련된 전시실에는, 25점의 그림들이 방문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준비된 '소녀들의 기억' 그림 전시 및 영화 상영회는 10일부터 13일까지, 그 자리를 방문한 이들에게 비탄과 분노를 느끼게 했다.

 
 
 위안부를 아시나요?
 
 위안부란, 일본 제국주의 점령기에 일본에 의해 군 위안소로 끌려가 성 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여성을 말한다. 이들은 1930년대부터 1945년 일본이 패망하기까지 강제로 전선으로 끌려가 일본 군인들의 성 노예로 인권을 유린당한 데 이어, 전쟁 말기에는 일본군이 위안부에 대한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내린 '소각 명령'으로 수없이 많은 목숨이 원통한 죽음을 맞이했다. 살아남은 피해 여성 중에는 끝내 귀국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 이들도 있었다. 혹자는 귀국을 포기하고 이국에 잔류하는 것을 선택하기도 했다. 그리고 일부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 고향의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그러나 고향 땅에서 피해 여성들의 삶은 결코 평탄치 못했다. 가족과 이웃에게 피해 사실을 숨기고 살 수밖에 없는 사회 분위기와 극심한 가난은 뒤로 미루더라도, 일본 정부에서 일본군 '성 노예' 활동이 군에 의한 강제 동원이 아니었다는 거짓 주장으로 책임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 숭산기념관에서 그림전시회가 열렸다 사진 : 이애슬 기자

 

 

 나눔의 집, 그리고 '소녀들의 기억'
 
 제대로 된 보상도, 사죄도 받지 못한 채 세월이 흘렀다. 현재 '나눔의 집'에서는 29명의 피해 할머니 중, 8명의 피해 할머니들과 함께 매주 한글 수업과 그림 수업을 진행했다. 더불어, 할머니들이 미술심리치료를 받던 당시에 그린 그림으로 수차례에 걸쳐 그림 전시회를 개최함으로써 피해 할머니들의 고통을 기억하고, 소통하고자 노력했다.
 숭산기념관에서 나흘에 걸쳐 진행된 '소녀들의 기억' 또한 나눔의 집이 우리대학 글로벌동아시아센터와 함께 주최한 행사로, <고향>에 대한 기억, '위안소'에서 생활한 당시의 <고통>, 그녀들의 <바람>을 담은 25점의 그림을 전시해 학생들이 피해 할머니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을 구성했다. 또한, 8월 14일을 알리는 배지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알리기도 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은 위안부 피해자인 故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한 날이다. 1991년 8월 14일에 진행된 기자회견을 통해 위안부 생존자 중 처음으로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했으며,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이후로 잇따라 피해 사실을 증언하며 국제사회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이후 2017년 12월, 국회에서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키며, 공식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 제정됐다.
 그림 전시회에 방문한 오진향 씨(국어국문학과 3년)는 "한국 근대 문학사 수업의 일환으로 방문하게 됐다"며, "하루빨리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우리나라 국민들이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소녀들의 기억' 마지막 날에는 인문대학 2층 제1시청각실에서 영화 상영회를 진행했다. 이 날 상영된 영화는 〈에움길〉로, 나눔의 집에서 같은 고통을 가진 할머니들이 모여 가족이 돼 가는 과정과, 일본군 '성 노예' 문제해결과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일상을 담고 있다.
 
 
 소망하는 사람들
 
 강일출 할머니의 그림, <태워지는 처녀들>은 현실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참혹했다. 전쟁이 끝나갈 무렵, 패배를 직감한 일본군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감추려 한다. 그렇게 내려진 '소각 명령' 속에서 불구덩이에 태워지기 직전, 조선 독립군에게 구출된 강일출 할머니의 이야기는 조정래 감독의 영화 <귀향(鬼鄕)>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돌아갈 귀(歸)'가 아닌 '귀신 귀(鬼)' 자를 쓴 이유에 대해, 조정래 감독은 KBS '강연 100℃'에서 "타향에서 돌아가신 20만 명이 넘는 어린 소녀들이, 그렇게 죽었을 때 얼마나 원통하고 괴로우셨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조 감독은 그분들의 억울한 영혼을 표현하기 위해 '귀신 귀' 자와 '고향 향' 자로 영혼으로나마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다.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은 "얼마 전 나눔의 집 역사관을 방문하신 김재용 교수(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님께서 원광대학교에서 전시회를 열어달라고 말씀해 주셨고, 요청에 응해 원광대학교에서 전시회를 열게 됐다"고 말했다. 안 소장은 "이제 할머님들이 연세가 높으셔서 집회에 참석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래서 그림이나 영화를 통해 알리려 노력하고 있다"고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으며, "아직도 이러한 현실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널리 알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전했다.
 
 
 하루 빨리 해결되기를…
 
 전시회가 끝나며 그림은 전시회장에서 사라지게 됐다. 하지만, 가슴 한편에는 뭉클한 감정이 남게 됐다. <귀향>의 조정래 감독도,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도 공통적으로 했던 말, 그 말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이었다.
 요 근래 '역사인식'에 대한 문제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유명 연예인 누군가가 '어떤 역사를 잘못 알고 있었다'는 뉴스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정말로 중요한 건 '우리'가, 그리고 '내가' 역사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냐는 것이 아닐까 싶다. 몇 년도에 어떤 유물이 만들어졌고, 누가 어떤 정책을 펼쳤는가에 대한 이론적인 내용보다는, 어떤 사건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 사건이 어떤 아픔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아야 한다.
 현재 일본 정부는 응당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또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시간을 끌어가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역사를 기억하고, 역사의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난 7월, 김복득 할머니께서 별세하시며, 이제 생존자는 27명에 불과해졌다. 더 늦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적극적인 관심과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조현범 기자 dial159@wku.ac.kr
  정명선 기자 sjfkd1919@wku.ac.kr
  이애슬 기자 dldotmf3295@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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