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먼 과거도 아닌데 조선 시대는 언제나 아득하고 흐릿했다. 그 시대를 다룬 역사책, 논문집, 수필, 전기, 행장(行狀), 편지를 읽어도, 아니, 읽으면 읽을수록, 머릿속에 단편적인 사실과 숫자는 늘어나고 구체적인 인간의 체취와 숨결은 사라졌다. 그래서 때로는 허구로 이루어진 소설을 읽을 때 좀 더 당시의 삶에 가까이 간 듯한 느낌에 빠지기도 했다.  열여덟의 어린 나이에 한 살 아래인 남편 단종을 떠나보내고 65년간 길고도 적막한 삶을 이어간 정순왕후 송씨(1440-1521)의 기막힌 사연을 그린 소설 『영영 이별, 영이별』(김별아, 창해, 2005)이나, 조선 최고의 지성이자 공학자, 모범적인 가장으로 알려진 다산 정약용의 인간적인 면모를 그린 『정약용의 여인들』(최문희, 다산책방, 2017)을 읽으며 오히려 어느 정도 '실체적 진실'에 다가간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이니, 조선 사람들의 생각이나 일상을 세세히 알고 싶다는 바람을 온전히 채워주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만난 책이 유만주(1755-1788)의 『일기를 쓰다 - 흠영선집』(돌베개, 2015)이었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책을 읽고, 좋은 책이 있으면 어떻게든 구해 보고, 책에 관한 얘기라면 언제 어디서, 누구하고든 열심이었지만, 유만주는 과거를 통과하지 못한 만년 수험생, 자칭 거자(擧子)였다. 그런데 부친과 모든 사촌이 과거를 통과해 벼슬살이를 하고 있었으니, 이는 그야말로 견딜 수도 없고, 안 견딜 수도 없는 구차하고, 한심하고, 물색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씁쓸하고 궁색한 일상 속에서도 질서와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유만주의 노력은 부단히 이어진다. 부친의 임지를 방문하고 오는 길에 시골 주막 마당에서 만난 찬연하게 만개한 해당화 덤불, 어느 봄날 동대문에서의 꿈같은 꽃놀이, 사채까지 꾸어다 산 큰 명동 집의 정원을 거닐며 느낀 호사로움… 이런 순간들 속에 유만주는 현실 속의 그 어떤 친구보다 더 생생하고 열정적으로 살아 있고, 생각하고 있고,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가 살았던 18세기 후반의 조선이 그 모든 디테일을 담은 채 내 앞에 펼쳐진다.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르 클레지오는 혁명이 아니라 소설만이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서, 그 이유로 소설은 집단이 아니라 개인의 삶과 감정을 그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기는 대개 소설보다도 더 개별적이고, 감성적이고, 사실적이다. 그래서 최근 번역되어 나오고 있는 조선 시대 일기들을 읽다 보면 시간의 짙은 안개를 뚫고 유만주 같은 이들의 기쁨과 슬픔, 희망과 회한, 까다롭고 세련된 취향과 깊은 자괴감이 마치 내 일처럼 벅차게 밀려왔다 사라진다.
 병자호란 당시 강화로 피신하는 빈궁과 원손이 양식이 없어 밥을 굶게 되자 자신이 갖고 있던 몇 줌의 쌀과 율무를 주어 허기를 달래게 한 김포 통진 나루의 수운판관 어한명 (『강도일기』, 역락, 2012); 대사헌의 부인이지만 넉넉지 못한 살림에 "손님이야 그칠 사이가 있으며 약주 아니 자실 리가 있으랴"(1639년 9월 29일)고 탄식한 남평 조씨 (『병자일기』, 나의 시간, 2015);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 받고 백척간두에 선 조국을 지키면서도 매일 술을 너무 마셔서 나흘을 내리 "몸이 몹시 불편하여 음식도 먹지 못하고 끙끙 앓았다"(1597년 8월 20일), "소주를 마셔 치료하려 하다가 그만 인사불성이 되어 거의 죽게 되었다" (21일), "곽란으로 인사불성이 되었다"(22일), "병세가 몹시 위험해져서… 배에서 내려 포구 밖에서 잤다"(23일)고 쓴 이순신 장군의 일기를 보라 (『난중일기』, 서해문집, 2004).

 그들이 그처럼 개별적인 순간에, 그처럼 개별적인 어조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때, 하나의 개념이나 숫자였던 조선 시대 사람들이 또 다시 살아 있는 목소리가 되고, 우리 삶의 어느 순간 문득 떠올라 몇 번이고 다시 연민하고 공감할 수 있는 내 의식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손영미 교수(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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