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안드로이드
김지민(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
놀이공원에 간 날이었는데, 날씨가 흐렸어. 전날 비가 많이 왔었거든.
나는 텅 빈 유골함을 안고 있었어. 안고, 그냥 벤치에 앉아있었지. 사라가 떠났거든 그 전날에……. 사라가 죽은 것은 아니야. 도쿄로 떠나겠다고 했거든. 그녀의 할아버지인가 할머니인가, 누군가 거기에 산다고 했어.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그냥 자기가 죽어버렸다 생각하라고 했지. 그리고 비어있는 유골함을 주고 갔어. 어쩌면 사라다운 행동이었지. 가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행동을 하던 사람이었거든. 하지만 너무 폭력적이다. 그걸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때 그런 것만 생각하고 있었지. 세상의 모든 이별은 어쩌면 폭력이 아닐까?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아마 세 시간, 그 자리에 앉아 있었을 거야. 맞은편에 한 아이가 보였어. 자동차가 그려진 빨간 운동화를 신고 있었지. 발이 아주 작았어. 아이의 부모가 올 때까지만 지켜보고 있자. 위험할 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마음먹었어.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대개 그렇듯이…… 그래, 아무도 안 왔지. 세 시 네 시 여섯 시, 그리고 놀이공원이 폐장하는 열 시까지. 나는 그래서는 안됐지만,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별 수 없었어. 미아방지 팔찌도 차고 있지 않은 어린애잖아. 덜컥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지. 그러고 나서야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어. 관리인이나 경찰에 신고했어야 했다고 후회했지.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아이를 찾는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고……. 사라가 건넨 유골함을 그곳에 두고 왔다는 건 나중에야 깨달았지.
*
나는 모모를 아버지로 알고 자랐다. 새가 가장 먼저 본 상대를 엄마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모모는 악성 곱슬머리, 키는 백칠십이 센티미터, 몸무게는 아마도 육십구 킬로그램. 흰 머리가 많아 회색으로 보이는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길렀다는 것 말고는 특이점이 없는 남자.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모모를 물어보면 하얀 방 같은 머리 이야기부터 튀어나오는 사람이었다.
하얀 방은 내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그곳에는 오로지 모모와 나만 있었기 때문이다. 모모가 잡고 있는 컴퓨터에서는 매번 80년대 유행한 재즈 음악이 흘러나왔고, 나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모모를 바라보았다. 그게 내가 하는 전부였다. 가만히 앉아서, 때로는 누워서,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모를 바라보는 것. 모모는 내게 아무 것도 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무료했고, 침묵이 깜깜하다고 생각했다.
그 방을 나오게 된 것은 아마도 열 살 때다. 아마도, 라고 말해야만 하는 것은 내 정확한 나이는 아무도 모르니까. 모모가 알려주지 않았다. 그때 우리는 더 작고 누런 방으로 이사했다. 모모는 그 방에 책을 들고 왔다. 하얀 방에서는 본 적도 없는 것 같은데, 어디서 그렇게 많은 책들이 나왔는지는 모를 일이다. 먼 타국의 철학자 혹은 소설가들이 쓴 사랑에 대한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간혹 전기니 신호니 하는 공학 서적도 몇 개 있었다. 모모는 끝도 없이 책을 날랐다. 나르고 날라서, 가로로 눕힌 책 여러 줄이 천장에 닿을 정도로 쌓아두었다. 그가 그렇게 열성적으로 움직인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삼 일을 그렇게 움직였다가, 책을 다 옮긴 이후에는 다시 컴퓨터를 봤다. 부풀어 오른 것처럼 뒤편이 튀어나온 모니터를.
나는 또 무료해졌다.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모음과 자음, 단어, 그리고 그 단어들이 만들어내는 어떠한 의미 같은 것은 조금도 모르는 채로, 나는 그냥 읽었다. 그렇게 육 개월쯤 지나자 글자를 알 수 있었다. 의미를 해석할 수 있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렸다. 하지만 소리 내어 읽지는 못했다. 모모가 글자와 맞는 발음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그는 그냥 컴퓨터만 보고 있었으니까. 그가 나에게 말 붙인 시간은 오로지 하루 세 번, 때로는 하루 두 번의 식사시간 뿐이었다. 개새끼.
 
그 즈음 모모가 밖에 나가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성큼성큼 나갔다오더니, 텔레비전을 가져와 내 옆에 앉았다. 골동품 판매점에서도 보기 힘들 것 같은 80년대 로터리식 텔레비전이었다. 텔레비전은 각진 쇼핑백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반듯한 모양이었고, 채널을 돌릴 수 있는 다이얼이 달려 있었다. 나는 수염을 덕지덕지 기른 모모와 스프링이 꺼진 침대에 앉아서, 티브이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의 무리를 바라보았다. 첫 번째 프로그램은 육아 프로그램이었다. 티브이 속 엄마가 아이를 안고 웃었다. 볼에 입을 맞추었다. 아이가 웃었다. 엄마가 쓰다듬었다. 아이가 잠들었다. 엄마는 검지로 잠든 아이의 이목구비를 따라 그렸다. 나는 그 연출된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불렀다. 모모.
모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뭐야?
글쎄.
나는 엄마가 없어?
응.
원래부터 없었어?
아마도…….
나는 울었다. 내가 우는 모습을 본 모모는 당황한 얼굴로 허둥지둥했다. 오른손을 들었다가 내리고, 왼손을 내 어깨에 올려놓으려 했다가 다시 치우는 식이었다. 몇 번인가 두 손을 모으고 사라, 알 수 없는 이름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왜 없어? 왜? 나는 울면서 물었다. 슬픈 것은 아니었다고,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나는 그냥 억울했다. 티브이 속에 나오는 그런 장면을 내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다는 것이. 그래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오후 세 시부터 일곱 시까지 쉬지 않고. 결국 낡은 앉은뱅이 상을 펼쳐두고, 나를 그 앞에 앉힌 모모가 선언했다. 엄마는 도쿄에 있다.
도대체 왜 도쿄였을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그 누런 방에서 읽은 오백 사십칠 권의 책들 중 도쿄라는 글자가 들어간 것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눈물을 매달고 중얼거렸다. 도쿄. 모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도쿄. 그게 끝이었다. 나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쓰다듬고 검지로 내 이목구비를 따라 그려주었다는 말이었으니까.
텔레비전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이를테면 글자를 읽는 법. 나는 오전 열두시마다 방송하는 <문학으로의 산책>에서 글자와 맞는 발음을 배웠다. 화질이 구리다 못해 후진 수준이었으나 아무튼 그랬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모와 내가 아닌 많은 사람들을 봤다. 티브이 속 사람들은 웃고 울고 화내고 싸우고……. 이따금 섹스했다. 그건 주로 새벽이었다. 모모가 코를 골며 잠들 때까지 나는 티브이만 보고 있었으므로 알 수 있었다. 내가 텔레비전을 보느라 꼬박 삼 일을 샜을 무렵, 모모가 중얼거렸다. 괜히 가져온 것 같아. 하지만 그 말은 틀렸다. 만약 티브이가 없었다면 나는 죽어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내가 텔레비전만 봐서? 더 이상 모모의 뒷모습을 보지 않아서 그런 걸까? 그러니까…… 모모가 텔레비전이 되어버린 것은.
*
캐리어 위에 모모를 싣는다. 떨어지지 않도록 두꺼운 줄을 여러 번 감아 손잡이에 고정한다. 내부 장치가 흔들리는지, 모모가 이따금 덜컹거린다. 나는 캐리어를 잠시 옆에 세워두고 휴대폰으로 예매한 표를 바라본다. 곧 출발하는 버스표였다. 행선지와 좌석 번호 같은 것을 한 번 훑으며 배낭을 고쳐 멘다. 분명 옷가지를 몇 개 넣지 않은 것 같은데도 무겁다. 필요 없는 것들은 지금이라도 버리고 갈까 고민하다가, 그냥 캐리어를 끈다. 그다지 길지 않은 여행이 될 거니까. 게다가 기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시간을 셈하며 승강장으로 향한다.
미나는?
모모의 화면이 켜지고, 그가 묻는다. 미나는 오지 않을 것이다. 당장 어제 다퉜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은 하지 않기로 한다. 한참 침묵하고 있는 데서 내 답을 읽었는지, 모모는 다시 잠잠해진다. 모모는 미나를 유독 마음에 들어 한다. 언젠가 미나가 집에 왔을 때, 그가 닮았다, 중얼거리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무엇이 닮았냐고 물었는데 그는 태연하게 미나의 목소리가 사라의 목소리와 닮았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미나가 집에 올 때면 유독 조용해졌다. 꼭 미나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미나도 그걸 아는지, 우리 집에 오면 꼭 모모의 옆에 앉아 내가 타준 커피를 마셨다. 가끔 소리 내어 책을 읽기도 했다. 어릴 적 내가 읽었던 수많은 책들 중 한 권이었다.
경쾌한 음악과 함께 기차가 출발한다. 안내방송을 들은 건지, 모모가 나지막하게 묻는다. 가는 거야? 나는 작게 응, 대답한다.
……드디어.
그의 목소리에는 고저가 없다. 어색하고 딱딱한 목소리. 사람의 목소리를 완전하게 구현한 안드로이드들이 나오는 마당에, 왜 굳이 오래된 컴퓨터 프로그램의 목소리를 선택한 걸까? 모모였다면 분명 온전한 모습의 안드로이드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그것 말고도 그는 아주 낡은 것들에 애정을 쏟고는 했다. 이가 빠진 컵을 버리지 않는다거나 꼭 옛날 팝송을 듣는다거나하는 사소한 것부터 로터리식 텔레비전까지 종류는 다양했다. 나는 궁금했으나, 묻지는 않았다. 궁금한 것을 물어보지 않게 된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더 정확히는 열아홉, 모모가 텔레비전이 되었을 때부터.
그 풍경을 기억하고 있다. 달칵, 소리가 들리고 집 안의 모든 불이 꺼지던 순간. 일순간에 사위가 캄캄해졌다. 모모. 그를 불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모모, 정전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 다시 불이 들어왔다. 나는 눈을 찡그렸다. 방금 전까지 모니터 앞에 앉아 마우스를 달칵 거리던 그가 컴퓨터와 연결된 이상한 모자를 쓴 채 키보드에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모자에 달린 전선은 컴퓨터로, 컴퓨터의 전선은 텔레비전으로 이어져있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무언가 엄청난 일이 생겼고, 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지도 모른다는 걸. 머리끝부터 천천히 차가워졌다. 나는 모모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누군가 세상을 느리게 감아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모모. 작게 내뱉었다. 대답이 없어서, 그의 어깨를 살짝 흔들고 다시 한 번 모모.
모모, 모모, 모모…….
나는 애원하듯 그의 이름을 부르며, 키보드에 박혀 있는 얼굴을 들었다. 모자에 달려있는 전선이 딸려 올라왔다. 그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입을 벌리고 있었다. 주변이 아주 고요해졌다. 동시에 어둡게 잦아들었다. 나는 말을 잊은 채, 그의 벌어진 입만 들여다보았다. 고여 있는 눈물 때문에 그의 윤곽이 흐릿하게 번져 보였다. 그때 그 소리를 들었다. 텔레비전이 켜지는 소리. 오래 된 로터리식 텔레비전은 다이얼을 돌려야만 채널을 옮길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튀어 오르는 듯한 소음과 함께 채널이 마구잡이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검은 배경에서 멈췄다.
나 여기 있어.
그때 숨결처럼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여기야.
이번에는 확인 시키는 것처럼 꽤 뚜렷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모모? 벌벌 떨리는 내 목소리에 뒤이어 텔레비전이 응, 대답했다. 믿기지 않아서, 아니 믿을 수 없어서 나는 다시 물었다.
정말 모모야?
정말 모모야.
모모가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그러나 확실하게 대답했다. 생각이 마구잡이로 뒤섞였다. 이런 것을 모모라고 할 수 있을까? 텔레비전을 모모라고 부르는 게 가능한 일일까? 모모는 떠나고 모모의 몸만 남았다. 더 정확히는 몸만 이곳에 덩그러니 남은 채로, 모모의 정신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모모. 내가 그를 부르고 모모가 응, 대답하는 것이 몇 번이고 이어졌다. 그의 대답을 기다리다가 나는 번뜩 깨닫고 말았다. 모모는 내 아버지가 아니다.
일반적인 아버지들은, 그러니까 텔레비전이나 책이나 라디오에서 접한 아버지들은 이런 식으로 굴지 않는다. 그 당연한 사실을 그제야 자각한 것이다. 고여 있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놀이공원에서 목마를 태워주던 한 드라마 속 아버지가 생각나서는 아니다. 모모가 미워서, 차라리 완전히 죽어버렸으면, 정말로 사라져버렸으면 싶어서 울었다. 먼지가 가득 쌓인 텔레비전을 끌어안고 흐느끼며, 나는 물었다.
모모는 내 아버지가 아니지?
미안해.
그 짧은 대답을 끝으로 텔레비전 화면이 꺼졌다. 내가 엄마에 대해 물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모모가 택한 건 침묵이었고, 또 그래서 확고한 긍정이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텔레비전 윗부분을 세게 내리쳤다. 덜컥, 안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다른 손으로 텔레비전을 내리친 손을 쥐어 잡았다.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혹시 고장 나버렸을까 봐. 웃기는 일이었다.
 
그가 고장 난 것은 아니었다. 그날 새벽 자신을 어떻게 시스템화 했는지, 또 그것을 어떻게 텔레비전 안에 이식하는 데 성공했는지 떠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야구와 아주 비슷한 거라고 말했다. 모모와 컴퓨터와 텔레비전을 연결하고, 공 대신 모모의 정신을 시스템으로 만들어 텔레비전을 향해 던지는 일이라고. 그 이상은 전파가 어떻고 코드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라 이해는 못했다. 단지 기억나는 건, 그가 가장 중요한 ‘왜?’라는 질문에 외로워서라고 답했다는 것. 시스템이 되면 외롭지 않을테니까, 그렇게 말하고 그는 떠날 것을 부탁했다. 아무래도 몸만 남았으니까. 육체는 에너지가 사라진 이상 서서히 부식될 거라고. 그 말과 함께 모모는 높낮이가 없는 말투로 주소 하나를 읊었다. 오래 준비한 일이 틀림없었다.
내가 너를 여기에 두고 가면?
글쎄, 그건 생각 안 해봤는데.
하나만 대답해줘. 그럼 함께 갈게.
모모는 침묵했다. 내가 이런 식으로 나올 거란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겠지. 인간의 몸을 가진 모모였다면 당황한 표정이었을 것이다. 오래도록 대답이 없던 그가 끝내 긍정의 답을 꺼냈다. 그래. 대신 딱 하나야. 하지만 나는 그의 허락을 받고 나서도 한참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몇 번이고 떨리는 숨을 내쉬고 나서야 질문 하나를 던질 수 있었다.
나는 어디에서 왔어?
대답은 느리게, 그러나 아주 분명한 발음으로 흘러나왔다.
놀이공원에 간 날이었는데, 날씨가 흐렸어. 전날 비가 많이 왔었거든….
 
그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모모는 사라와는 오래 전 그냥 가볍고 지루한 연애를 했다고 얘기했다. 사라는 중소기업의 경리였고, 둘은 주말이면 만나 유명 데이트 코스를 돌고 포옹하고 키스하는 그런 일들을 했다고 했다. 이따금 사라가 대뜸 꽃다발을 건네거나 아니면 갑자기 기분이 상해 소리를 지르기도 했으나, 그녀는 원래 그랬다고 덧붙였다. 사라는 원래 그랬다, 원래 그렇게 기분파였고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여자였다. 그랬으니 일본어라고는 한 마디도 못하면서 도쿄로 떠났겠지. 그리고 기다리지도 못하게 했겠지. 그는 계속 중얼거렸다. 물론 나는 모모가 말한 내 이야기를 떠올리기도 벅찼기 때문에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
*
숨을 들이마신다. 쌀쌀한 바람이 몸 안으로 밀려들어온다. 나는 멀거니 역 이름이 적힌 간판을 올려다본다. 대형 테마파크의 곰 마스코트가 간판 옆에 조그맣게 그려져 있다. 나는 힘껏 웃고 있는 촌스러운 캐릭터를 바라보다가, 다시 캐리어를 끈다. 놀이공원 방향의 출구를 향해 천천히 걷는다. 모모는 캐리어가 흔들릴 때 받은 충격 때문인지, 방금 전까지 화면이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팟, 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이 들어옴과 동시에 다시 조용해지는 식이었다. 지금은 다시 얌전해진 모모를 내려다보면서 나는 출구를 나왔다.
놀이공원에는 사람이 없다. 하긴 나 또한 모모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오래된 놀이공원 따위는 오지도 않았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미나를 떠올린다. 그녀는 내가 함께 떠나겠냐고 물었을 때 입을 꾹 다물었다. 모모가 가자고 했다는 놀이공원 이야기에는 꼭 소리를 지를 것 같은 표정을 짓기도 했다. 물론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대신 한마디를 남겼을 뿐이었다. 행복하니? 분명 의문이었으나 내가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깔린 말투였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 버릴 때까지 마냥 서 있었다. 그때 나는 언젠가 미나가 전자상가의 화려한 네온을 등지고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모모를 버리지 마. 모모는 너 뿐이잖아. 그러나 미나는 몰랐던 것 같다. 나에게도 모모 뿐이었다.
미나와는 전자상가에서 만났다. 내가 일했던 휴대폰 판매점 맞은편에 미나가 일하는 컴퓨터 부품 판매점이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가깝게 지냈던 것은 아니었다. 그때의 나에게 사람들은 꼭 텔레비전 화면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말을 걸어도 가만히 서 있는 시간이 길었다. 이거 얼마예요, 물으면 한참 뒤에 예? 되묻는 식이었다. 미나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이따금 사장에게 혼나는 걸 보고 혼자 웃기도 했다. 내가 그 모든 걸 알고 있는 이유는 나도 그녀를 지켜봤기 때문이다. 나는 시청자처럼, 그녀가 웃고 상자 위 먼지를 털고 혼자 밥을 먹는 모습을 보았다. 먼저 말을 건 것은 그녀였다. 아마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안녕.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작게 대답했다.
……응.
너 친구 없구나.
나긋나긋한 목소리여서, 꼭 ‘밥 먹었니?’ 정도의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태연하게 웃고 있었다.
원래 친구 없는 애들이 그래.
화를 내야하는 걸까? 그보다 그런 건 어떤 건데, 생각하고 있을 때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내가 그랬거든. 내 이름은 미나야. 왼손을 내밀면서. 나는 그때도 그 손을 내려 보고만 있었다. 그런 나를 흘긋 쳐다본 그녀가 내밀고 있는 손을 한 번 흔들었다. 이럴 땐 잡아주는 거야. 깃털처럼 가벼운 목소리로 덧붙이면서. 나는 홀린 듯이 그 손을 잡았다. 따뜻하고 약간은 축축한 손이었다.
우리는 그 이후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주로 듣는 편이었다. 말 한 마디 없는 내게, 미나는 꾸준히 말을 걸어주었다. 가끔은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놓기도 했다. 이를테면 그녀가 일본에서 자랐다는 것. 그리고 그녀의 이름이 접시에서 출발했다는 것. 배가 부른 채 초밥 가게에서 그릇을 닦던 그녀의 어머니가 어느 날 문득 오목한 접시를 뒤집었고, 그 아래 접시를 만든 장인이 적어놓은 한자를 오래도록 들여다봤다는 이야기. 그 한자는 南. 일본어로 미나미. 그래서 미나는 미나미(南)의 미나. 만난 지 한 달된 사이에 털어놓을 이야기는 아니었다.
미나는 그런 이야기를 덜컥 뱉어놓고 후련한 얼굴을 했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나도 후련해지고 싶어서. 나는 미나에게 처음으로 모모 이야기를 했다. 물론 그전에는 말할 사람도 없었다. 내가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를 두서없이, 그것도 아주 느리게 말했는데도 미나는 내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어주었다. 내 말이 끝날 무렵에는 박수를 짝 치기도 했다. 텔레비전이라니 멋지다. 나도 어릴 때 텔레비전만 봤었거든. 그때를 떠올리는 건지, 미나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러나 곧 다시 웃었다. 모모를 만나보고 싶어. 너희 집에 놀러가도 될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미나는 약속을 지키듯 그 다음날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때 나는 아주 기뻤다.
 
놀이공원은 시설 노후화를 이유로 얼마 뒤에 폐점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도는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조형물들은 곳곳의 색이 바랜 채 꼭 비석처럼 서 있다. 아까 보았던 곰 마스코트도 그 중 하나다. 입구 중앙에 우뚝 솟아있는 곰의 얼굴은 몇 번이나 비에 젖고 마르고 얼고 녹기를 반복해서인지 녹물이 흘러, 귀엽다기보다는 기괴해보였다. 그 옆에 솟은 낡은 스피커에서 부담스러울 정도로 밝은 음악이 쏟아진다. 나는 그것들을 지나쳐 매표소 앞으로 걸음을 옮긴다. 조악한 머리띠를 쓰고 있는 아르바이트생이 미소 지으며 묻는다.
한 분이신가요?
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행동을 멈춘다. 그리고 두 명이에요, 짧게 대답한다. 주머니를 뒤져 지갑에서 카드를 꺼낸다. 모모의 명의로 된 것이다. 아르바이트생은 카드를 건네받고, 이내 티켓 발권기에서 표 두 장을 뽑아낸다. 손바닥만한 표 두 장을 내민 직원이 내가 들고 있는 가방과 캐리어를 번갈아 바라본다. 아무도 오지 않는 놀이공원에 짐을 잔뜩 들고 온 남자라니 이상할 법도 할 것이다.
가방 보관함은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있어요. 즐거운 모험 되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내밀어진 표를 받아든다. 꾸며낸 듯 해맑은 목소리로 뒤로하고, 나는 놀이공원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녀가 말한 것처럼 입구 바로 앞에 보관함이 있다. 나는 그 중 가장 큰 칸에 가방을 집어넣고, 캐리어에 모모를 고정하고 있던 끈을 푼다. 어떤 충격도 가지 않도록 주의하며 모모를 바닥에 내려두고 캐리어를 집어넣으려는데, 갑작스럽게 텔레비전이 켜진다. 팟, 전기가 들어오는 소리와 함께. 나는 잠시 바닥을 향해 시선을 두었다가 남은 공간에 캐리어를 넣는다. 동전 몇 개를 집어넣고 보관함을 열쇠로 잠그는 동안 모모가 몇 번 지지직거린다.
각진 텔레비전을 안아든다. 그와 동시에 텔레비전에서 목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왜 두 명이라고 했어?
나는 태연하게 대답한다.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한 장은 네 거야.
모모가 안드로이드가 된 이후로 인원을 셀 때는 언제나 한 명이었다. 모모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체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모모를 위한 여행이니까, 나는 두 명을 셌다. 사실 따지자면 나도 온전한 한 명이라고 보기엔 어렵다. 나는 신원이 불분명한 채로, 그러니까 내 나이가 정확히 몇 살인지도 모르고 자랐다. 모모가 알려줬어야 했겠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않았다기보다는 못했다. 모모도 몰랐으니까. 내 정확한 이름이나 나이 같은 것은. 그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나를 길렀다. 전산상의 기록을 뒤져볼까 고민했으나 그만두었다. 만약 출생신고도 되어 있지 않다면, 나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게 되니까.
그런 것들을 떠올리며, 이정표를 따라 걷는다. 오래된 할리우드 영화 속 한 장면을 흉내 낸 난간이 나온다. 뒤편으로는 하늘색 페인트가 칠해진 거대한 성이 있다. 동화 속에서 튀어 나왔다고하기에는 색이 바랬다. 꼭대기에는 칠이 벗겨진 별이 솟아있다. 나는 발바닥 모양의 타일이 붙어있는 곳으로 간다. 놀이공원의 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다. 모모가 사라와 함께 온 적이 있다고 했던 곳. 나는 모모를 안고, 멀거니 성을 바라본다. 모모는 보지 못할 것이다. 이 풍경을.
여기였어?
나는 모모에게 묻는다.
응.
안드로이드가 된 모모는 오로지 듣고 말하는 것 밖에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그래. 타박하자 난간이잖아, 대답한다. 그의 목소리는 예전에 비해 아주 작다. 그리고 나는 안다. 점점 더 작아지고 있다. 사실 모모는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게 기적인 걸지도 모른다. 모모의 몸이 되기 전에도 오래 된 텔레비전이었으니까. 하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완전 낡았는데.
……그때는 좋았어.
그때는 새 거였으니까?
사라가 있었거든.
사라. 때로 모모가 주문처럼 중얼거리는 이름. 또, 모모가 나를 데려오게 한 사람. 한 마디로 사라는 모모의 전부였던 셈이다.
나는 사라를 본 적이 있다. 물론 실물로 본 것은 아니다. 모모가 잠든 사이, 컴퓨터가 있는 책상 서랍 아래에서 사진을 보았다. 오래된 필름카메라 특유의 색감이 두드러지는 사진이었다. 성을 배경으로, 웨이브가 들어간 긴 생머리에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여자가 모모의 허리에 팔을 감싸고 있었다. 여자는 환하게 웃고 있었는데 모모보다 키가 컸다. 모모는 지금보다 주름이 없고 머리가 검은 모습으로, 여자의 어깨에 팔을 올려두고 있었다. 모모는 이 사진이 서랍에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그때는 내가 그 자신도 모르는 비밀을 발견해낸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모모는 사진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사진의 모서리가 헤지고 귀퉁이가 구겨져 있었으니까.
나는 그때의 사진을 떠올리며 고개를 돌린다. 왼편에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가게가 있다. 그 앞에 전시된 폴라로이드 사진과 카메라를 바라보다가, 모모에게 묻는다.
우리도 찍을까?
모모는 대답이 없다. 혹시 이해하지 못한 걸까 싶어서 괜스레 말을 덧붙인다.
사진 말이야.
아니.
쌀쌀한 바람이 분다. 모모의 목소리 끝에 지저분한 기계음이 섞여든다. 목이 다 쉬어버린 환자처럼, 조그마한 목소리다.
사진 같은 건 남기지 말자. 계속 그때를 돌아보게 되잖아.
*
한참 그 자리를 서성이다가, 관람차를 향해 걷는다. 대관람차는 놀이공원 구석에 우뚝 서있다. 어쩌면 이곳으로 온 것은 순전히 대관람차 때문이다. 모모가 수많은 곳들 중에 이 놀이공원의 관람차를 타겠다고 했으니까. 모모는 이 놀이공원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이 관람차를 타면 일본까지 보인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맑게 갠 날 아주 높은 전망대에 올라가야 대마도 끄트머리를 볼까 말까인데, 고작 관람차로 일본이라니. 모모도 그걸 모를 리 없었지만, 그는 끝내 이곳을 골랐다.
관람차 앞에 선 직원에게 티켓을 보여준다. 그는 조금 귀찮은 얼굴로 천천히 돌아가고 있는 관람차의 문을 연다. 짐도 들고 타시겠냐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별 말 없이 우리가 타는 것을 기다린다. 잠금 장치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힌다. 느리게 올라가기 시작한다. 딱딱한 의자에 앉아 사분의 일 정도까지 올라왔을 무렵, 모모가 말한다.
너를 데려와선 안됐어. 가끔 그렇게 생각했어.
뜬금없는 소리다.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의 말대로, 모모는 나를 데리고 와서는 안 됐다. 나는 이따금 물을 주면 되는 식물 같은 게 아니니까. 나는 그런 적은 관심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어린 애였다. 그래서 항상 모모를 미워하면서 자랐다. 모모가 나를 어둡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면서.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모가 아니었다면 누가 나를 길렀을까? 나는 모모를 안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본다. 노을이 지고 있다.
모모.
응.
지금은 외롭지 않아?
아니.
모모는 분명 외롭고 싶지 않아서 안드로이드가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결국 그는 똑같다. 그는 전원이 꺼지기 직전이 되어서야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 비가 잦아들 때처럼 작은 소리로.
왜 어떤 일들은 오래 남는 걸까.
이제 그의 소리는 중간 중간 끊기기 시작한다.
왜 내가 어떤 형태로 변하든 나와 붙어있지?
그건 그 일들이 모모 그 자체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대꾸하려다 그만둔다.
그는 그 이후 한참 말이 없다가 대뜸 미나의 이름을 꺼낸다. 그는 지지직거리며 몇 번이고, 그 말을 반복한다. 미나에게 잘 해줘라. 미나는 좋은 사람이다. 그의 말이 맞다. 미나는 분명 좋은 사람이다. 내게 그를 버리지 말라고 했었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분명 알고 있었다. 이번 여행이 모모와의 작별이라는 걸.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중에 관람차가 덜컹 거린다. 관람차로 올라올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한 것이다. 모모가 묻는다.
보여?
나는 눈을 감는다. 이따금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모모가 내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던 것처럼. 그리고 나는 직감한다. 정말 마지막이다. 나는 끝이라는 게 정말 이상하고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평소에 미워하던 사람에게도 슬픔을 느끼게 만든다. 목적어도 없는 모모의 물음에 나는 눈을 뜨지 않고 대답한다. 보여. 단 두 글자로, 도쿄가 보인다고.
*
관람차 맞은 편 벤치에 모모를 올려둔다. 칠이 벗겨진 철제 의자에 오래된 텔레비전이 놓여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등을 돌린다. 그는 내가 자신을 여기에 두고 가주기를 바랐다. 오래 전 본인이 두고 온 유골함처럼. 그래서 나는 앞으로 나아간다. 돌아보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저 멀리 미나가 걸어오고 있다. 결국 그녀는 나를, 그리고 모모를 버리지 않은 것이다. 미나는 당신이 말했던 것처럼 좋은 사람이니까. 그녀와 점점 가까워지면서, 나는 중얼거린다.
안녕, 모모.
안녕.
 
소설 부문 당선 소감

 

빛나는 순간들
대학 들어가면 절대로 글 안 쓸 거예요.
고등학교 이학년, 충동으로 던진 말에 선생님은 '글이 너를 쉽게 놔줄 것 같냐'며 웃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해가 지날수록 그 의미를 깨닫습니다. 수많은 단어와 문장, 그리고 문장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저는 아직도 많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라고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아직까지도 열심히 소설을 쓰고 있는 걸 보면 꽤 오랫동안 그렇겠지요.
나의 조각을 나누어가진 친구들, 지진한 습작의 순간을 함께 견디는 소창단, 손을 떠난 제자임에도 언제나 조언을 아끼지 않는 태기수 선생님까지. 모두 빛나는 눈으로 저의 글을 봐 주었기에 제가 이렇게 기쁜 순간에 설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제가 좋아서 쓴 소설을 남도 좋아해주는 일은 앞으로도 몇 번 일어나지 않겠지요.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준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맙습니다. 언젠가 다시 창작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오더라도 글이, 저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기다려준다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일찍 집으로 돌아가 엄마에게 비싼 저녁을 사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설 부문 심사평
 
'쉬운 글쓰기'와 '정직한 글쓰기'- 독창성과 개성
김용 문학상에 투고된 대학생 작품을 읽는 것은 기성문단의 심사보다 흥미롭고 즐거운 일이다. 20대만이 가질 수 있는 풋풋함과 싱그러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문학상 심사를 하면서 느낀 것은 '튀는 힘'보다는 정적인 어떤 상실감과 허무한 정서가 우세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강고한 시스템에 갇힌 우리 일상과 고달픈 청년 세대의 현실이 반영된 듯하다. 투고된 작품들은 대체로 고른 수준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키보드와 모니터에 익숙한 세대의 '쉬운 글쓰기'를 보여주듯, 지나치게 요설적인 글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쉽게 쓰여진 글이나 관념적인 글은 쉽게 휘발되어, 독자에게 전달되기가 쉽지 않다. 차라리 키보드를 버리고, 연필로 꼭꼭 눌러써본다면 '하나의 문장, 문단이 훨씬 더 탄탄하게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대체로 이번 응모작들에서는 몇 년 전부터 지속된 이국적인 배경, 황정은식의 우화, '식용인간'을 파는 홈쇼핑과 같은 판타지 경향이 두드러졌고 동성애를 다룬 작품도 더러 눈에 띄었다. 그러나 대체로 최근의 스타 작가를 모방한 듯한 수준에 그쳤다는 것은 아쉽다. 습작기라는 알리바이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직한 글쓰기'는 어찌되었든 독창성과 개성을 품고 있어야 한다.
심사위원들이 눈여겨 본 작품들과 수상작은 다음과 같다. 「하룩희의 하루키」, 「환상통」, 「해왕성엔 다이아몬드 비가」, 「도쿄 안드로이드」이다. 「하룩희의 하루키」는 매력적인 인물과 서사 전개 등으로 심사위원의 눈을 끌었으나 엉성하고 비약적인 결말이 아쉬움으로 남는 작품이다. 「환상통」의 문장은 안정적이고 빼어나지만 청년 그룹의 일탈의 설득력이 부족하다. 「해왕성엔 다이아몬드 비가」는 두 청년의 '슬픔'을 깊은 여운으로 직조해놓는 솜씨가 일품이나, 아쉬운 것은 중반까지의 풍자적인 문체가 시적 분위기와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쿄 안드로이드」는 업둥이 화자가 자신을 길러준 아버지와 결별하고 연인에게 향하는 성장의 지점을 알레고리적 상상력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아버지가 텔레비전으로 변한다는 설정은 엉뚱하고 기존 작가의 스타일을 연상시키지만, 이 엉뚱한 변전은 TV와 함께 방치된 고독한 유년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데 잘 활용되고 있다. 진지한 논의 끝에 심사위원들은 「도쿄 안드로이드」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앞서 언급한 아쉬움이 있지만 더 많은 문학적 성취를 이룰 수 있는 잠재성이 충분하다고 판단되어서이다. 당선을 축하하고, 투고한 많은 이들의 분투에도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 정영길(작가, 원광대 교수)
정은경(평론가,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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