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한국어를 통해 확인한다. 한국어는 우리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조상들이 오랜 세월동안 다양한 일들을 겪으면서 얻은 사상과 지혜를 우리말에 담아 우리에게 전해준 것이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다. 언어가 없다면 우리는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한다. 말을 통해 나의 뜻을 전하고 남의 생각과 느낌을 이해한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사상이나 문물이 도입되면 거기에는 새로운 이름이 달라붙는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없었던 새로운 명칭들이 거의 매일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시대가 격변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런데 새로운 말이나 외래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말의 고유한 어법과 서법에 괴변이 일어나고 있어서 매우 우려스럽다.
 우리말을 잘못 사용하는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같아요"라는 표현은 말하는 사람이 자신이 짐작했거나 추측한 내용을 전하는 말버릇이었다. 그런데 이런 어투가 이제는 명백한 사실을 전달하는 문장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오늘 세 사람이 결석 했습니다"라고 말하기보다 "오늘 세 사람이 결석한 것 같습니다"라는 어투의 말이 더 많이, 더 널리 사용되고 있다. 조사는 단어의 뒤에 붙어 그 단어의 기능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일을 한다. 누군가가 "부장님에 보고"라고 하는 말을 듣기만 한다면 그 뜻을 정확하게 짐작할 수 없다. '....에'라는 음소와 '....의'라는 음소가 듣기만해서는 구별하기도 어렵지만 '에'라는 조사와 '에게'라는 조사는 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이 여격이 될 때와 장소나 조직이 여격이 될 때 서로 다른 조사를 사용하는 것이 우리말의 원칙이다. '도지사에게 전달'을 '도지사에 전달'에서처럼 잘못된 조사를 사용하면 그 의미를 파악하기에 상당한 노력을 들여야 한다. 심지어는 듣는 사람이 '도지사가 전달'한 것이라고 잘못 해석할 수도 있다. 존칭어나 경어의 남용도 심각한 상황이다. '집'을 '댁', '식사'를 '진지'로, '딸'을 '따님'이라고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어법이다. 그런데 사물을 주어로 하는 경우 술어에 존칭어법을 사용하는 경향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주문하신 커피가 나오셨어요", "입으신 재킷이 핏이 좋으시고 가격도 착하세요"라는 말을 들으면서 한국어의 앞날에 대하여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말은 동시대 구성원들에게 서로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우리 세대와 후속 세대를 연결해주는 기능을 한다. 우리의 후손들이 두툼한 사전을 끼고 우리가 만들어낸 자료나 문헌을 읽어야할 처지가 되지 않도록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지경에 이르렀다. 각급 학교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 전반에 걸쳐서 교육과 홍보를 통해 잘못을 지적하고 올바른 어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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