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메시지의 출현도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카톡,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수많은 정보가 오가고 있다. 이러한 때 지인들끼리 가상공간에서 구어체로 대화를 나누는 상황이 많아지게 된다. 앞으로 몇 주에 걸쳐 한 번 알아두면 유용하게 쓰일 몇몇 형태들을 알아보기로 한다. /편집자

 우리는 '-어지다'가 붙는 말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1)의 셋 중에서 무엇이 맞는지 판단해 보자.

 
(1)가. (글씨가 잘)
씌어지네, 씌어지니까, 씌어져서

  나. (글씨가 잘)
쓰여지네, 쓰여지니까, 쓰여져서

  다. (글씨가 잘)
쓰이네, 쓰이니까, 쓰여서

 
 (1가), (1나), (1다)에서 의미 차가 인식되지 않는다면 셋 중에 하나만 맞는 것으로 하자. 가장 간결한 (1다)를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쓰이어지다'에서 '쓰이'가 줄면 '씌'가 되는데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말이 '씌어지다'이다. 또 '쓰이어지다'에서 '이어'가 줄면 '여'가 되는데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말이 '쓰여지다'이다.
 그런데 문제는 (2)에서와 같이 '쓰이다' 또는 '써지다'로 의미 전달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2)가. 오늘은 칠판에 글씨가 잘 쓰이네     (O).
나. 오늘은 칠판에 글씨가 잘 써지네
(O).

다. 오늘은 칠판에 글씨가 잘 씌어지네    (×).

  라. 오늘은 칠판에 글씨가 잘 쓰여지네    (×).


 굳이 '쓰이다'와 '써지다'가 중복된 '쓰이어지다/씌어지다/쓰여지다'를 옳다고 할 필요는 없다. '중복'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3)가. 커지다, 작아지다, (양이)
많아지다, 적어지다, 싫어지다

나. (길이) 놓이다, (책이) 쌓이다,
(글자가) 잘 보이다


 (3)에서 제시된 '-어지다/아지다' 또는 '-이-'가 쓰인 예들의 의미는 대략 '의지와 관계없이 자연적으로 어떻게 되다'라고 할 수 있다. 소위 피동이라는 것인데 영어의 수동태에 상응한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어지다'와 '-이-'를 중복해서 쓰면 이중 피동이 되는 셈이다. '역전 앞'과 같은 표현처럼 의미가 중복되어 있다는 뜻이다. 특히 (3나)에 제시된 어간과 '-어지다'를 결합한 표현이 한국인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그것이 (4)에 제시되어 있다. 모두 의미가 중복된 잘못된 표현이니 주의해야 한다.


(4)가. 길이 놓여지고, 길이 놓여졌다,
길이 놓여집니다

나. 책이 쌓여지고, 책이 쌓여졌다,
책이 쌓여집니다

다. 글자가 보여지고, 글자가 보여졌다, 글자가 보여집니다

(4)와 (5)를 대비하면서 깊이 들어가 보자.

(5)가. 의견을 받아들이다, 이유를 밝히다

나. 의견이 받아들여지다,
이유가 밝혀지다


 (5가)의 '받아들이-', '밝히-'에 '-어지다'가 결합된 (5나)는 문법적으로 맞는 말이다. (5가)는 '자연적으로 어떻게 됨'을 뜻하는, 소위 피동 표현이 아니다. 반면 (5나)는 피동 표현이다. '-어지다'가 붙었다고 무조건 이중 피동으로 몰아세워서는 안 된다. 피동 표현에 '-어지다'가 붙은 것만 틀렸다고 보면 된다.
 이중 피동의 예를 몇 가지 더 제시하면서 마무리한다. 일단은 (6나)만 맞는 말로 인정받고 있다.

 (6)가. 씌어진/쓰여진 글, 놓여진 책, 쌓여진 먼지, 뺏겨진 물건, 잡혀진 사람, 읽혀진 글자, 꽂혀진 화살, 잊혀진 계절…

  나. 쓰인 글, 놓인 책, 쌓인 먼지, 뺏긴 물건, 잡힌 사람, 읽힌 글자, 꽂힌 화살, 잊힌 계절…
cf. 되어지다(×) → 되다

 끝으로 '-어지다'가 결합된 밑줄 부분이 어법에 맞는지 알아보자. 방탄소년단의 'Fake love'의 첫 부분이다


           널 위해서라면 난 슬퍼도    
기쁜 척할 수가 있었어
널 위해서라면 난 아파도
강한 척할 수가 있었어
사랑이 사랑만으로 완벽하길
내 모든 약점들은 다 숨겨지길
이뤄지지 않는 꿈속에서 피울 수 없는
꽃을 키웠어 (하략)


'(-을) 숨기-', '(-을) 이루-' 뒤에 '-어지-'가 통합되었음에 유의하자. 이중 피동이 아니다.

 원리는 : 피동[수동태(?)]의 뜻을 가진 형태에 '-어지다'가 결합되면 중복 표현이 된다. '잠기다'는 그 자체가 피동인데 여기에 '저절로 어떻게 되다'라는 '-어지다'가 통합해서는 안 된다(잠겨지다×).

 참고 : 윤동주의 '쉽게 씨워진 시'는 현대 어법으로 하면 '쉽게 쓰인 시 / 쉽게 써진 시'가 된다. 제목과 관련된 표현은 발표 당시 표기를 그대로 두었다.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중략)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씨워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하략)


임석규 교수(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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