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환 기자

 늦가을의 찬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이제 겹겹이 옷을 싸매지 않고서는 새벽의 추위를 못 견딜 정도다. 하지만 이 쌀쌀함 속에서도 초연히 열을 올리고 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문학인들이다.

 언제나 열병처럼 지나가고 말았던 신춘문예 시즌이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왔다. 문학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이 가장 기다리고 있었던 시간이 아닐까 싶다. 문학인들은 어찌 보면 농부와 다를 바 없다. 농부는 때로는 따스한 햇볕을 쬐고, 때로는 무더운 더위를 견디고, 때로는 거친 비바람을 헤치고, 때로는 시린 추위를 이겨낸다. 그들은 그렇게 한 해 동안 구슬땀을 흘리고, 결국은 농작물을 수확해낸다.
 농부와 같이, 문학인 또한 숱한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사건, 여러 감정들과 마주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만의 글을 건져 올린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온 글을 널리 인정받기 위해, 신춘문예에 작품을 투고한다. 비록 예전에 비해 위상이 많이 낮아졌을지라도, 신춘문예가 여전히 문학을 업으로 삼으려 하는 이들에게 든든한 등용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신춘문예는 신문사나 잡지사가 매년 연말 현상금을 내걸고 문학작품을 공모해 심사를 거쳐 당선작을 발표하고 상금을 주는 일종의 문예작품 선발 행사다. 이는 1925년 <동아일보>가 문학작품의 공모를 연말에 실시하면서 생겨난 제도다. 당선자에게는 상금이 주어질 뿐만 아니라 문단에서 신인문학가로 인정을 해주는데, 새로운 신인문학가를 발굴하고 새로운 문학작품을 대중에게 널리 소개할 수 있는 제도로 인정을 받으며 지금까지도 한국 문단의 문학가 양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문학 활동에 뜻을 두고 있는 신인들이 이 제도를 통해 자신의 창작 역량을 시험하고, 문단에 등단할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신춘문예는 1930년대 이후부터 신인 문학가들의 등용문이 됐다. 약 100년 역사의 신춘문예가 지금까지 배출한 문인의 수는 이제 헤아릴 수가 없을 지경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세상 그 어떤 것이든 오래된 것은 녹이 슬고 색이 바래기 마련이다. 최근 좁아만 지는 문학의 입지와 맞물려 신춘문예 제도 그 자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돈황의 사랑』의 작가로 알려져 있는 윤후명 작가는 한 강연에서 "상금이 없거나 과하지 않은 타국의 문학상들과 달리 한국의 문학상은 요행심리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추구해야 할 본질인 문학이 도리어 실종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런 요행과 도박적 요소로 당선된 수상자들이 나중에까지 좋은 소설가로 남을지에 대해 회의적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어 윤후명 작가는 "누가 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단편 소설 기준이 80매다. 한 백 년 동안 유지되고 있는 형식으로, 외국에는 없는 기준"이라며 소설의 분량 기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고, 소설을 분량 채워나가듯 써야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사실 비판의 목소리가 향하는 곳은 비단 신춘문예만이 아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한국 문단 그 자체에 대한 회의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최근 자기계발서와 에세이만이 베스트셀러 목록을 꿰차고 있는 현 한국 출판계에서 문학인들이 추구해야 할 것은 어떤 것일까. 필자의 눈에는 현 한국 문학계가 북극과 같이 보이고, 문학인들은 북극곰처럼 보인다. 녹아만 가는 빙하를 두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고, 딛고 있는 빙하조차도 언제 녹을지 몰라 얼른 다른 빙하로 옮겨가야만 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결코 모든 빙하가 녹아 사라질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예부터 문학에 정답은 없었다. 문학은 우리네 인생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항상 살아 숨쉬고 있으며, 인간이 존재하는 한 문학은 짙고 긴 그림자처럼 우리에게 항상 달라붙어 있을 것이다.
 이에 관해서 괴테가 좋은 말을 남겼다. "인간이 타락했을 때에만 문학이 타락한다." 참으로 멋진 말이 아닐 수가 없다.
 
 김정환 기자 woohyeon17@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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