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명선 기자

 

 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서점을 둘러보면 소심한 성격을 극복하고 자존감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는 서적들이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윤홍균 작가의 「자존감 수업」이나, 하완 작가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 등과 같은 책이다. 이 같은 서적들은 '나'보다 '남'을 위해 행동했던 우리들이 '자신'을 위해서 살 수 있는 방법과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 등을 제시하고 있다. 온전한 나로 향하는 방향을 알려주는 작품들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현대 사회에서 이 같은 처지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자존감이란, 말 그대로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스스로 가치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자신의 능력을 믿으며, 노력에 따라 성취를 이뤄낼 수 있다고 확신을 가지고 있는 상태일수록 자존감이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지난 5월 '알바천국'이 발표한 자존감 관련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1천648명 중 47.9%가 자신의 자존감이 낮다고 평가했다. 반면, 자신의 자존감이 높다고 응답한 사람이 겨우 17.4%에 그쳤다는 것을 보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수치는 매우 높은 편이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스스로 찾아내지 못하고 타인이 그려주는 지표에 의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양보'나 '겸손' 등 이타성과 배려를 잘못 인식하고 교육한 부작용일 것이다. 우리는 남을 존중하는 것과 동시에 '나'를 내세우지 않는 사람을 겸손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교만함을 배척하고 겸손함을 마땅히 행해야 할 미덕으로 여기는 것은, 개인 선택의 개념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기본 윤리에 가까울 만큼 단단하게 굳어진 인식이다. 그런데 이미 하나의 사회적 통념으로 굳어져버린 겸손한 태도는 조금만 잘못 생각해도 나 자신을 갉아먹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일부 사람들은 내가 이뤄낸 성과를 부정하고 자신을 낮추는 것이 예의, 구체적으로는 겸손함이라고 착각한다. 때문에 겸손함을 지나치게 의식해 필요 이상으로 자기 자신을 낮게 평가하는 등 자기표현의 기회를 스스로 박탈시키는 일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
 자신을 낮춰 말하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은 자신이 그어둔 틀 안에 갇히기 마련이다. 할 수 있는 일도 해낼 수 없다고 한계를 정해두면, 당연하게도 그 틀 안에 갇혀 도전과 성취를 맛보지 못 하고 자신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점점 놓아버리게 된다. 더불어, 그들이 착각하는 예의에 따르면, 상대방의 반응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을 타인의 시선에 결합해 생각하기 때문에 온전한 나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 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자존감을 회복하는 방법은 크게 어렵지 않다.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예의에 대한 모든 의무감을 버리고, 나를 제대로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된다. 자존감은 타인의 외적인 칭찬이 아니라 자신 내부의 성숙된 사고와 가치에 의해 얻어진다고 한다. 혹시나 실패하게 될 내가 두려워 어떤 시도라도 꺼린다면 스스로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내 자신과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도전'으로 인한 성공과 실패가 필요하며, 결과를 마주하기 위해서는 남들에게 완벽하게 보여 질 필요가 없음을 정확히 인지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 한 번의 실수가, 영원한 실패는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 타인의 시선보다 내 자신의 눈으로 나를 본다면, 도전하고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 않고 발전하는 단계를 갖고 나 자신의 성과와 가능성을 곧이 마주하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를 향한 자신과 믿음, 애정이 훨씬 커져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정명선 기자 sjfkd1919@wku.ac.kr
저작권자 © 원광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