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날, 비온 뒤 쑥쑥 키를 높여가는 죽순의 허리를 뎅겅 잘라 손바닥에 문질러 보면 아득하고 또 아득한 향기가 코끝을 찌르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다지 아름답다고 할 수도 없는 대나무의 비쩍 마른 허우대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가느다랗지만 질긴 대나무 뿌리를 생각해 보는 일은 죽순의 은밀한 냄새를 맡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지요.

지진처럼 갈기갈기 찢겨진 삶의 괴로움을 땅속에 고스란히 품고 사는 이 메마른 나무의 고요한 울음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 겁니다.

 삶이란 갈등의 매순간이며 원하든 그렇지 않든 스스로 택한 길을 끝끝내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요.

 이러한 대나무를 닮은 뉴잉글랜드의 이선은 재능 있고 꿈 많은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시골에 파묻힌 채 환자인 어머니를 돌보면서 모든 이상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지요.

 결국 어머니가 병으로 사망한 뒤 어머니를 간호하던 먼 친척 여자와 결혼하면서 그의 꿈은 더욱 부르기 힘든 이름이 되어버렸고요. 결혼 후 아내마저 병에 걸려 이선은 궁지에 빠졌고 처음부터 애정이 없던 그들의 결혼은 그녀의 질병과 괴팍한 성격으로 더욱 악화되었지요.

 그런데 바로 그때 아내의 조카인 매티가 고모를 돌보기 위해 이선의 집으로 온 겁니다. 이선은 열일곱 살의 매티와 금방 사랑에 빠졌어요.

 매티의 건강한 육체, 철모르고 발랄한 그녀의 순수한 영혼을 흠모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처음 맛보는 사랑의 달콤함! 하지만 얼마 후 이런 사실을 눈치 챈 아내는 매티를 쫓아내려고 했지요.

 이별의 슬픔에 절망한 두 사람은 함께 썰매를 타고 언덕 밑에 있는 느릅나무에 부딪쳐 자살을 시도하지만, 운명은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매티는 척추가 부러지고 이선은 절름발이가 되어 오히려 아내의 보살핌을 받게 된 거지요. 이선은 그렇게 고달픈 삶을 살아갑니다.

 신은 우리에게 숙명이라는 멍에를 씌우고, 갈매기가 비행을 유지해야 하듯 각자에게 주어진 잔은 마땅히 비울 것을 요구합니다. 이선은 사랑에 한번 몸을 담근 죄로 수십 년을 운명에 저당 잡힌 셈이지요. 무서운 일일까요? 아니면 비극적인 아름다움일까요?

 생각해 보면 저 이선의 모습은 나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제는 다 부질없는 옛 이야기, 술상에 올라오는 시금털털한 안주 같은 이야기로 치부해 버리고 말지만 이따금 놓쳐버린 날들을 되새김질하려 할 때마다 저 생의 발가락 끝에서부터 아득아득 치통이 몰려옵니다.

 모두가 사랑이었고 모두가 사랑이 아니었지요.
그 해 겨울, 눈은 참 많이도 내렸습니다.

강 건 모 (한국어문학부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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