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초 인류를 본따 만든 인조인간, '레플리칸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유전적으로 개량과 강화를 거친 레플리칸트는 인간과 비슷한 지능을 갖고 있지만, 신체능력은 인간을 뛰어넘는다. 이들의 유일한 단점은 4년 남짓한 수명이다. 이들은 인류에 의해 우주에서 작업하는 용도로 사용되거나 전투원으로 이용되는 등 그저 '물건'에 불과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어느 날, '넥서스 6'이라 불리는 레플리칸트들이 지구로 잠입한다. 이들은 인간의 지시를 거부하고 오히려 인간들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레플리칸트를 찾아내 '폐기'하는 특수 경찰 팀 '블레이드 러너'. 과거 은퇴했지만 다시 경찰의 부름을 받은 릭 데커드(해리슨 포드)가 이들을 좇으며 영화는 본격적으로 막을 올린다.
 릭은 넥서스 6의 리더인 로이 베티(룻거 하우어)를 비롯한 나머지 레플리칸트를 찾기 위해 조사에 들어가고, 격한 몸싸움을 벌이며 하나씩 '폐기'해 나가기 시작한다. 한편, 로이는 4년에 불과한 자신들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 레플리칸트를 제작하는 이들을 찾아다니며, 자신들을 설계한 타이렐 박사를 수소문한다.
 회색빛 도시에서 끊임없이 비가 내리는 칙칙한 배경과 어딘가 불안한 조명, 연출 그리고 음악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묘한 이질감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레플리칸트들을 '인간을 해치는 악당'으로 한정 지어 생각하기 어려워진다. 이들 또한 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당장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인간을 공격하고, 타이렐 박사를 통해 수명 연장의 꿈을 좇는다. 하지만 그들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마침내 타이렐 박사를 만나 "더 살게 해달라"고 요구하지만, 타이렐 박사는 "할 수 없다"고 말하고, 로이는 박사를 죽이고 도망친다.
 도망친 로이를 좇아온 릭은 폐건물에서 만나게 되나, 로이의 압도적인 신체능력 앞에 릭은 열세에 몰린다. 마치 사냥감을 가지고 놀 듯, 릭을 몰아붙이는 로이는 서서히 굳어가는 자신의 팔을 보며 자신의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직감한다. 치열한 싸움 끝에 난간 끝에 몰린 릭. 이를 지켜보던 로이는 "공포 속에서 사는 기분이 어때? 그게 바로 노예로 산다는 거야"라고 말한다. 그리고서는 손을 놓친 릭의 팔을 잡아 그를 들어 올려준다. 로이는 릭을 죽이지 않았다. 자신을 왜 죽이지 않았는지 의문 가득한 눈빛을 가진 릭을 앞에 두고, 그는 말한다. "난 너희가 상상도 못할 것을 봤어. 오리온 전투에 참가했었고, 탄호이저 기지에서 빛으로 물든 바다도 봤지. 그 모든 순간들이 금방 사라질 거야. 빗속의 눈물처럼. 이제 죽을 시간이야."
 '빗속의 눈물'이라는 표현이 애잔하기 그지없다. 수많은 물방울이 떨어지는 빗속에서 몇 방울의 내 눈물은 묻히기 마련이다. 어쩌면 울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 눈물은 그들이 가진 '생명'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을까?
 요 근래 발생하고 있는 수많은 생명경시로 인한 사건들이 결코 낯설지 않다. 오히려 낯설어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지만, 어느덧 익숙한 것이 돼 가고 있다. 과연 이것이 옳은 일일까?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일상이 되는 것이 맞는 것일까? 로이의 행동도 정당화될 수는 없어 보인다. 다만, 사람과 레플리칸트라는 관점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있다. <블레이드 러너>는 어느 다큐멘터리나 드라마처럼 직설적이지는 않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의문점을 남긴다. 
 
조현범 기자 dial159@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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