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대신문방송사는 지난해 12월 26일부터 29일까지 총 3박 4일간 대만 타이페이(台北市), 난터우(南投), 그리고 화련(花蓮)으로 연수를 다녀왔다. 2017 신문방송사 해외연수기는 총 4회에 걸쳐 게재된다. /편집자

 우리대학 신문방송사 연수단은 지난 동계 방학기간(12월 26~29일)중에 대만 연수를 다녀왔다. 이번 호에서는 둘째 날 다녀왔던 난터우 유심성교학원(역경대학)과 중정기념당, 용산사(龍山寺)와 시먼딩 거리를 중점으로 다루고자 한다.
 둘째 날은 우리대학과 교류 중인 난터우 역경대학을 방문했다. 유심성교학원은 불교와 중국 춘추전국 시대의 인물 '귀곡자(鬼谷子)'의 역학(易學)을 결합한 신종교, 유심종(唯心宗)을 기반으로 설립된 학교다. 연수단이 묵고 있는 숙소에서 학교까지 가기 위해서는 버스로 약 3시간을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연수단은 이른 아침부터 버스에 올라탔다.
 가기 전에는 말만 들어도 지치고, 힘들 것 같았는데 실상 그것이 아니었다. 오토바이로 아이를 데려다주는 엄마, 예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이 가는 건물, 귀여운 애니메이션이 있는 보행자 신호등, 열대 나무 등 2층 버스에서 내려다보는 바깥 풍경은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색다른 기분을 들게 해줬다. 구불구불한 길을 버스가 얼마나 달렸을까? 거의 도착했다는 가이드의 안내에 버스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창밖을 보면 비슷하게 생긴 열대 나무만 눈에 들어오고, 포장된 도로가 보이지 않아 학교가 있을까 하고 의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마음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눈앞에 펼쳐진 역경대학은 굉장히 멋있었다. 조각상 하나에도 많은 정성이 느껴졌고, 황금색 문인 '천대문'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학교 안으로 들어간 연수단은 유심종의 종주이자 유심성교학원의 창립자인 혼원선사(混元禪師)와 간담회를 가졌다. 조영철 신문방송사주간(유럽문화학부 교수)은 "연수단을 학교에 초대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린다"며 "원불교 또한 역경을 중심으로 음양 사상과 인과원리 등을 융합한 종교다"고 언급한 뒤 "역경(유교 오경의 하나)에 대한 내용이 한국 국민들에게 많이 알려져서 한국과 대만 간의 문화 교류가 활성화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또한, 대만 유심성교학원 진립악 원장은 "우리 대학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우리 대학과 원광대학교와의 교류가 더 활발히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짧은 간담회를 마친 연수단은 학교에서 제공해 준 점심을 먹으러 이동했다. 점심은 대만 본토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도시락이었다. 도시락은 생소한 맛이라서 입에 맞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대만에 온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아서 본토 음식에 적응이 되지 않았나 보다. 그래도 연수단을 격하게 환영해주고, 친절하게 대해준 학교 관계자분들이 감사했다. 학교를 나와서 버스에 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시던 그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어, 연수단은 유심성교학원을 뒤로한 채 대만 역사의 흐름이 녹아있는 중정기념당(中正紀念堂)으로 향했다. 중정기념당은 타이페이에 갔다면 꼭 가봐야 하는 명소로 꼽히는 곳이다. 중정기념당은 장제스(장개석, 蔣介石)를 기리는 기념당이다. 장제스는 대만의 초대 총통이자 대만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만주사변 후 일본의 침공에 대해 내정을 안정시키고, 후에 외적을 물리친다는 방침을 세워 군벌을 이용해 오로지 국내통일을 추진했다. 또한, 그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 우리에게 아주 고마운 분이기도 하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웅장한 외관이 시선을 압도했다. 본관에 입장하려면 총 89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가이드가 89는 장제스가 서거한 나이를 뜻한다고 설명해 줬다. 계단 위에는 거대한 장제스 동상이 있었다. 매 시각 정시에 근위병 교대식이 이뤄지지만 우리는 그 후에 가서 보지 못했다. 첫째 날 여행지인 충열사(忠烈祠)에서 봤던 근위병들의 모습이 너무 강렬해서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웠다. 여러 가지 전시물 중에서 장제스가 죽기 직전까지 썼던 집무실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이 가장 인상 깊었다. 1층 전시실에는 장제스의 생애를 엿볼 수 있는 사진과 유품 등이 전시돼 있었다. 전시실에서 나와 흐뭇한 표정의 장제스 동상을 지나면 드넓게 펼쳐진 자유 광장이 보였다. 계단을 지나면 그 양 옆으로 잘 조경된 수목들이 가지런하게 펼쳐져 있고, 끝에는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주황 지붕의 인상적인 건물 두 채가 마주 보고 있었다. 대로의 끝에는 크기만으로 엄청난 존재감을 자랑하는 정문과 그 풍경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누구든 자유 광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면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을 것이다.
 대만 현지에서도 맛집으로 유명한 한 딤섬 식당에서 저녁을 먹게됐다. 우리 앞에는 만두와 육즙이 가득한 딤섬 코스 요리가 펼쳐졌다. 대만에서는 보통 딤섬과 우롱차를 같이 먹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우롱차에 포함된 카테킨 성분은 지방을 분해하는 효소를 활성화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들었다. 우롱차를 처음 먹어봐서 신기해 많이 먹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딤섬은 생강 맛이 너무 강해서 입맛에 맞지 않아 별로 먹지 못했다. 예상외로 가장 맛있었던 것은 동파육이었다. 대만 연수 기간 먹었던 음식 중 가장 맛있었던 것 같다. 역시 고기가 최고다.
 이어, 타이완의 수도 타이베이 완화구 북동쪽에 있는 시먼딩(西町)에 갔다. 가이드분이 시먼딩은 서울의 명동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가기 전부터 쇼핑하고 구경할 생각에 설레었다. 도착하자마자 대만에서 유명하다는 망고 빙수 가게로 향했다. 가게 주인은 한국말로 주문을 받을 정도로 한국어를 유창하게 했다. 후식으로 먹은 망고 빙수는 아직까지 기억에 남을 정도로 괜찮았다. 거리를 구경하면서 신기했던 게 우리나라 사람 같이 생겨서 계속 주시해서 보면 100% 다 한국인이었다. 대만 여행을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타국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니까 괜스레 반가웠다. 쇼핑하면서 TV와 인터넷으로만 접하던 우리나라의 한류 영향이 정말 강력하다는 것을 실제로 느낄 수 있었다. 가게 곳곳에는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연신 들려왔다. 마침 그때 한창 인기 있었던 '신과 함께' 포스터가 가게 바로 앞에 진열돼 있었고, 우리나라 연예인들의 브로마이드도 자주 보였다. 곳곳에 뻗어 있는 우리나라의 흔적들이 자랑스러웠고, 볼 때마다 미소 짓게 했다.
 밤이 되자 연수단은 용산사로 이동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용산사는 타이완의 자금성이며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사찰이라고 했다. 솔직히 말하면 한국에서도 절에 가면 합장을 하지 않은가. 한국의 절과 용산사가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에 아무래도 많은 기대를 하지 않고 갔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배움이 많았던 곳 같다. 이성 친구가 생기기를 원하는 사람, 자녀가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길 바라는 사람, 돈이 많이 생기면 좋겠다는 사람 등 그곳엔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그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얼마나 큰 절실함이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어떤 것을 저렇게 바란 적이 있나' 하고 생각이 들었다. 혹여나 나중에 대만의 용산사를 다시 오게 된다면 '나도 저들처럼 절실하게 어떤 것을 바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일정을 마무리했다.

문승리 기자 anstmdfl97@wku.ac.kr
정은지 기자 dytjq0118@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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