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정운찬 서울대학교 총장이 최근 서울대학교 총학생회가 한총련을 탈퇴한 것과 관련하여 대학생들이 사회 의식을 잃어 가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총학생회가 한총련을 탈퇴하는 게 어떤 면에서는 좋은 방향일지 몰라도 대학생들에게 너무 사회의식이 없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단다. 대학생들이 공부나 취직 또는 연애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와 나라에 대한 관심이나 걱정도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이었으리라. 전폭적으로 동감한다.

 나는 민주화의 죄인이다. 채만식의 자전적 소설  G민족의 죄인 H에서 따온 말이다. 그는 이 소설에서 해방을 두어 해 앞두고 일제의 압력을 끝내 견디지 못하여 일본에 대한 협력을 권고하는 강연에 몇 번 나섰던 자신을 해방 이듬해에 ‘민족의 죄인’이라 자처하며 고해성사를 하고 있다.

  나아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해방을 맞아 학생들이 친일파였던 교사를 규탄하는 데모를 벌이는데, 반장이면서도 상급학교 입시준비를 핑계로 서둘러 귀가한 자신의 조카에게 데모 주동은 못할 망정 슬며시 빠져 나왔느냐며, 퇴학을 맞아도 좋고 입시에 떨어져도 좋으니 당장 데모에 참여하라고 호통치는 대목이 나온다.

 이 대목을 읽거나 생각할 때마다 어제와 오늘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죄책감을 느끼는 한편 쓴웃음을 짓게 된다.

 나는 대학가에서 데모 없이는 해가 지는 날이 거의 없었던 1980년대 초에 대학을 다니면서 정치외교학과 학생 대표를 맡기도 했지만, 단 한차례도 민주화 데모를 주동하기는 커녕 시위에 단순 참가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졸업한 뒤에는 10여년 동안 나라 밖에서 공부하다 돌아왔으니 젊은 시절 학생 운동이나 민주화 투쟁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평화운동가 또는 통일운동가를 자처하며 집안에서는 아내와 아들 그리고 조카들에게,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민주와 정의 그리고 평화와 통일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나이 20에 진보적 생각을 갖지 않으면 가슴이 없는 사람이요, 나이 40이 되도록 그러한 기질을 간직하면 머리가 없는 사람이라는 서양 속담을 따른다면, 나는 가슴도 없고 머리도 없는 셈이니 그야 말로 ‘새가슴에 골빈 놈’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하며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앞으로는 더 이상 지식인으로서의 죄를 짓지 않겠다는 다짐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다. 지난날의 민주화 운동에는 전혀 기여하지 못했지만, 앞으로의 평화 운동이나 통일 운동에는 조그만 힘이나마 적극적으로 보태겠다는 뜻이다.

 여기에 한 가지 욕심을 덧붙여, 학생들을 포함한 요즘의 젊은이들에게 간절한 소망 하나를 전하고 싶다.

 내가 사회와 나라에 대한 관심을 갖지 못하고 학생 운동에 전혀 참여하지 못했던 자신을 민주화의 죄인으로 생각하며 부끄러운 과거를 멍에처럼 지고 살아가는 것을 거울삼아, 뒷날 나와 비슷한 심적 고통을 겪지 않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사회와 국가에 더욱 큰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통일 운동이나 노동 운동 또는 환경 운동이나 여성 운동 등의 진보적 사회 운동에 기꺼이 나서달라는 것이다.

 학교 안에서든 밖에서든 불우한 이웃을 보면 도와줄 줄 알고, 불의와 비리에 맞설 줄 알며, 부정을 보면 정의감을 불태울 수 있는 20대의 뜨거운 가슴을 지닌 원광인들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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