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에는 띄어쓰기에 대해 쉽게 풀어 보려고 하였다. 이제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이번 학기 첫 원고는 좀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필자는 '웬일/왠일', '간대/간데', '처먹어/쳐먹어', '허예/허에'와 같이 현재 우리의 발음이 같으니(?) 쓸 때도 헷갈린다는 말을 자주 한다. 오늘 배우게 될 '부딪히고/부딪치고', '닫히고/닫치고' 또한 발음이 같기 때문에 제대로 쓰기가 만만치 않다. 이를 명확히 구분하여 쓸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우리가 하는 카톡류에서도 옳지 않은 형태를 많이 볼 수 있다. 
 일단 영어의 수동태에 대응될 수 있는 피동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동사 어간과 결합하는 '-히-'는 사동 접사 아니면 피동 접사이다. 사동 접사와 피동 접사의 예를 들어보자.
 
 (1) 가. 아이가 바닥에 눕고
    나. 누군가가 아이를 바닥에 눕히고
 (2) 가. 나는 종이를 접고
   나. 종이가 접히고
 
 (1), (2)의 '눕히고', '접히고'에는 '-히-'가 공히 확인된다. (1가)의 '아이가'와 '아이를'에 주목하자. (1나)는 '(아이를) 눕도록 한다', '눕게 한다', '눕도록 시킨다' 정도의 의미를 가진다. 이런 것을 사동문이라 한다. 'He makes me dance'와 같은 영어의 사역 동사 구문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눕히-'는 사동 접미사가 포함된 사동사인 것이다.
 (2)에서는 '종이를'과 '종이가'에 집중해야 한다. 종이를 접으면 그 종이는 자동적으로 접어지게 된다. 저절로 접어지게 된다. 이런 것이 피동문이다. '접히-'는 피동 접미사가 포함된 피동사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영어의 수동태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동이란 동작을 하는 누군가의 의도, 즉 주어의 의도가 분명히 나타난다. '눕도록 만든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피동은 주어의 의지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이제 이 글의 '제목'과 관련시켜 보려 한다. '부딪-'에는 주어의 의도가 있다. '부딪히-'에는 주어의 의도가 없다. 주어를 '나'로 해서 문장을 제시한다.
 
 (3) 가. 나는 샌드백을 부딪는
    힘이 강하다. 
    나. 나는 기둥에 부딪혀서
       뼈가 부러졌다.
 
 '부딪-'과 '부딪치-'는 문장 구조가 동일하다. 다만 후자의 어감이 좀 셀 뿐이다. '부딪치는'과 '부딪히는'은 발음이 같아서 쓸 때마다 혼동된다고 했다. 다시 한 번 말하면 '부딪히-'는 피동이다. 의지와 관계없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을 말한다. '부딪-'과 '부딪치-'는 나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더러는 운동 능력 정도로 이해될 수 있겠다. 혼동되는 단어를 '박다', '들이받다' 정도로 대치해 보자. 위의 예에서 '박다/(들이)받다'로 대치하면 문장이 성립되는 것이 있고 성립되지 않는 것이 있다. (3가)의 '샌드백을 받는(박는) 힘이 강하다', 이것은 말이 된다. (3나)의 경우는 '기둥에 박혀서 뼈가 부러졌다'라고 해야 문장이 성립된다. '기둥에 박아서'라고 하면 피동의 뜻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부딪히-'는 의지와 관계없다. 내가 정신없이 걷다가 사물에 박히는 것을 '부딪히는 것'이라 보면 된다. 이때는 '부딪히다'로 쓰는 것이 중요하다. (4가)는 '이 차와 저 차'가 '받았다', '박았다'로 이해되므로 '부딪치다'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4나)∼(4마)도 검토해 보자.
 
 (4) 가. 이 차와 저 차가
     (부딪쳤다 부딪혔다).
    나. 우산을 (받치고 받히고) 간다.
    다. 바람에 문이 저절로
      (닫쳤다 닫혔다).
    라. 내가 저 차를
    (부딪쳤다 부딪혔다).
    마. 이 오동나무에
    (부딪쳐서 부딪혀서)
     머리가 찢어졌다.
 
 (4다), (4마)는 후자가 맞는 표현이다. 이 둘은 행위자의 의지와 관계없는 수동 표현이다. 반대로 (4나)와 (4라)는 행위자의 의지와 관련되는 것이다. 만약 자해공갈단 유형의 사기꾼이라면 '이 차에 부딪혀서 다리가 아프다'라고 하기보다는 '이 차에 부딪쳐서 다리가 아프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자해공갈단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원리는?
 '부딪치다'는 의지가 있거나 운동 능력이 있을 때 쓸 수 있는 표현이다. 이때는 '박다', '들이받다' 정도로 대치된다. 반면 '부딪히다'는 '박혀서' 정도로 대치될 수 있다.
 참고
 경상 서부 쪽을 제외한 대부분의 경상도 사람은 '부딪치다'와 '부딪히다'의 악센트를 달리한다. 지역 간 왕래가 빈번함에 따라 다소 변형되기는 하였으나 일반적으로는 '부딪'치다', '부딪히'다'로 발화한다. 두 번째 글자를 높이는 유형과 세 번째 글자를 높이는 유형으로 구분된다.
 참고Ⅱ
 본문에서 '부딪-'과 '부딪치-' 구문은 그  구조가 동일하다고 했다.
 이와 관련하여 ≪표준국어대사전≫을 인용해 본다. '-치-'는 일부 동사 어간 뒤에 붙어 '강조'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라 규정되어 있다.
 (일부 동사 어간 뒤에 붙어)
 '강조'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 넘치다/밀치다/부딪치다/솟구치다.
 그런데 강조라는 표현은 다소 모호해 보인다. '넘다'를 강조한 말이 '넘치다'인지, '밀다'를 강조한 말이 '밀치다'인지 쉽게 와닿지 않는다. 또 일반적으로 '부딪다'보다는 '부딪치다'를 선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관계가 '넘다/넘치다', '밀다/밀치다'에 대응되기도 어려워 보인다.
 
  임석규 교수(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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