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대학 A 학과에 재학 중인 ㅊ 씨는 개강 후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했다. 수업이 시작되자, 담당교수는 개강 첫 주에는 진도를 나가기보다 앞으로의 수업 계획 및 평가 방법, 그리고 수업에서 다룰 교재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수업이 끝나고 강의실을 나온 ㅊ 씨는 다음 강의에서 필요한 교재를 구입하기 위해 곧바로 학생회관의 구내 서점으로 향했고, 교재명을 적은 쪽지를 서점 직원에게 건넸다. 책을 찾아온 직원은 "4만 8천 원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책을 건넸지만 ㅊ 씨 망설여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비싼 가격 때문이었다. 다음에 오겠다는 말과 함께 ㅊ 씨는 구매를 미루고, 동기들에게 교재를 샀냐고 물었다. 동기들도 비싼 가격 때문에 구매를 망설였지만, 선배들로부터 "제본을 하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는 말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교재를 구매했다는 말을 들었다. 결국 ㅊ 씨도 좋은 학점을 위해 책을 구매했다.
 
   수업을 위한, 수업에 의한 교재
 이와 비슷한 사례는 전남의 한 대학교에서도 발생했다. A 교수는 지난해 2학기부터 350여 명이 수강하는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자신이 집필한 2만 원 상당의 책을 사도록 학생들에게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A 교수의 교재는 일반 서점이 아닌 대학 학과실에서 판매됐고, 시험 또한 '오픈북' 형식으로 치러져 교재를 구매하지 않은 학생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반 강매나 다름없다는 논란이 제기됐고, 이에 대해 해당교수는 '책을 판매한 것은 맞지만, 강매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새 학기가 되면 대학생들은 비싼 교재 값 때문에 부담을 느껴 중고 장터나 선배들로부터 중고 서적을 구매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교재는 수량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인터넷 서점이나 구내 서점에서 교재를 구매하게 된다.
 교수 본인이 집필한 서적을 수업 교재로 지정하고, 교재를 구입하지 않은 학생들을 구입한 학생들과 차별하거나 성적에 반영하기도 해 학생들의 불만이 잇따르고 있다. 수업에 필요한 교재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교재 판매 과정이 교수의 우월적 지위를 행사하는 이른바 '갑질'이라는 지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공유와 협력의 교과서 '빅북 운동'
 비싼 교재 가격의 부담으로 교재를 구매할 수 없는 학생들은 결국 '제본'이라는 불법 행위의 유혹에 넘어가곤 한다. 이는 비싼 값에 매겨진 교과서와 얇은 주머니 사정을 가진 학생들의 이해관계가 충돌된 결과다.
 이로 인해 학생들이 갖는 부담감을 해소시키고자 부산대학교 조영복 교수(사단법인 사회적기업연구원장)는 '빅북(BIG BOOK) 운동본부'를 설립했다. '빅북 운동'은 지식을 나누기 위한 저작권 공유 활동으로, 대학 교재를 쓴 저자가 저작권을 기부하면 이를 전차책으로 만들어 온라인에서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운동은 학생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것은 물론, 대학교재를 전자화했기 때문에 자료를 무한대로 첨부하는 등 지속적인 학습이 가능하며 변화하는 지식의 습득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조 교수는 빅북 운동 홈페이지를 통해 "지식은 인류의 자산이며 누구에게나 공유돼야 하고, 대학의 지식창조 활동의 결과물들도 학생들에게 효과적으로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지적재산권의 문제를 비롯한 걸림돌들을 해결하고자 시작한 이 운동은 현재 30여 명의 교수 및 교사들과 함께하고 있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교재는
 다른 대학 B 학과 ㅇ 씨는 교수가 자신의 집필 교재를 구매하게 한 뒤, 구매 여부를 명단에 적힌 경험이 있다며 "수업에 꼭 필요한 교재라서 구매하긴 하지만, 책의 진도를 끝까지 나간 적이 거의 없어 구매한 책이 아깝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책의 진도를 모두 소화하지 못하면서 책을 꼭 구매해야 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책을 집필해 수업 교재로 사용하는 일부 교수들은 "오랜 시간과 열정을 투자해 만든 교재가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만으로 외면 받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책의 가격은 집필자의 독단적인 결정이 아닌 출판사와 협의 하에 내려진 결정이라고 설명하면서, "교수들도 교재의 가격으로 학생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고 단지 수업에 있어 필요한 책을 선정했을 뿐"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대학이라는 지식의 상아탑이 강매의 현장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면서, 비싼 교재에 대한 문제 해결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가르치는 교수와 가르침을 받는 학생 모두가 교재에 대해 만족할 수 있는 교육 현장을 만들기 위한 대책과 해결 방안이 요구된다.
 
 

  임지환 기자 vaqreg@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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