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시절은 신데렐라처럼, 노년은 천사처럼 한시대를 풍미한 배우가 있다. 바로 오드리 헵번이다. 『로마의 휴일』,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 다양한 작품에서 연기를 펼쳐 찬사를 받았던 그녀. 헵번이 영화계를 은퇴한 이후 유니세프에서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구호활동에 매진했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려져 있다.
 1992년, 소말리아를 방문한 그녀는 참혹한 현실과 마주했다. 영양실조로 굶주리는 아이들은 피부에 달라붙은 파리조차 떨쳐낼 힘이 없었고, 눈을 감은 채 결국 깨어나지 못한 아이도 많았다. 헵번은 사람들에게 이 참상을 알리고 도움을 호소하며, 전염병과 전쟁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곳을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다. 그녀의 봉사는 그녀가 암으로 눈을 감을 때까지 이어졌다.
 헵번는 미국의 시인, 샘 레벤슨의 시 '시간이 일러주는 아름다움의 비결(Time Tested Beauty Tips)'을 각별히 좋아했다. 이 시는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자신의 아들에게 들려준 시로도 유명하다.
 "매혹적인 입술을 가지고 싶다면, 친절한 말을 하라. / 사랑스러운 눈을 가지고 싶다면, 사람들의 선한 점을 봐라. /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싶다면, 그대의 음식을 배고픈 자와 나눠라. / 예쁜 머릿결을 가지고 싶다면, 하루에 한 번 어린이가 그 손가락으로 그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게 하라. / 아름다운 자세를 가지고 싶다면, 결코 그대 혼자 걸어가는 것이 아님을 알도록 하라. / 재산보다는 사람들이야말로 회복돼야 하고, 새로워져야 하며, 활기를 얻고, 깨우쳐지고, 구원받고 또 구원받아야 한다. / 누구도 내버리지 말라. 이 사실을 기억하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 그대는 그것을 자신의 손끝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 /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대는 손이 두 개인 이유가 하나는 자신을 돕기 위해서, 하나는 다른 이를 돕기 위해서임을 알게 되리라."
 필자 역시 몇 번의 봉사활동 경험이 있다. 단순 청소에 그친 봉사도 있었고, 누군가의 손과 발이 돼줬던 봉사도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봉사는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도와 시설 근처의 산을 올랐던 일이다. 사실 산이라고 부르기도 미묘한 높이의 언덕이었지만, 대상자들에겐 쉽지 않은 경사였다.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힘들면 쉬어가고, 재미있어 보이는 운동기구를 보면 놀다가는 시간을 보냈다. 목적지인 넓은 공터에 도착했을 즈음, 이들은 지치기는커녕 오히려 더 신이 난 듯 보였다. 몸은 어른이지만 마음은 아이인 이들을 보며, 필자는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순수한 눈빛을 가진 이들에게 개인의 실리를 추구하는 봉사자가 죄책감을 가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는 잠깐의 고민 끝에 '오늘 하루, 이들이 가장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결론을 내렸다.
 봉사활동이 끝나고, 하나의 의문점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정성을 다하는 봉사가 아니라면, 하지 않느니만 못할까?' 흡사 선거 기간이 되면 봉사가 필요한 시설을 찾는 정치인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곧 고개를 저었다. 대상자들이 보여줬던 웃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마 그들은 가산점 따위의 문제보다는 '자신과 함께 놀아 줄 친구'가 필요했던 것 같다.

 다시 헵번 이야기로 돌아와 이 글을 매듭지으려 한다. 그녀는 가장 높은 자리에서 얻었던 것들을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자들에게 베풀었다. 그녀의 행동에 감화된 다른 사람들도 자선사업에 참여하거나 기부의 뜻을 밝혔다. 물론 모든 사람이 정성을 담은 손을 내미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그게 누구의 손이든 간에 중요하지 않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손이 내밀어졌다는 것이다. 다른 이를 돕기 위해 내민 한 손은 설령 상처 나고 주름지더라도, 자신만을 위한 깨끗한 두 손보다 훨씬 아름답다.

 조현범 기자 dial159@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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