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 축제에 BTS 온대, 그런데 소문이라 사실인지 아닌지 애매모호해"
 위 문장은 한 번쯤 사용했을 말이다. 하지만 이 중에는 잘못 사용되고 있는 단어가 있다. 순우리말이 아닌 일본식 한자를 우리나라의 방식으로 읽어 문제가 된다. 위 문장을 올바른 표현으로 순화하면 "우리학교 축전에 BTS 온대, 그런데 소문이라 사실인지 아닌지 모호해"라고 바꿔야 한다. 축제(祝祭)에서 제(祭)는 제사라는 의미로 틀린 표현이며, 애매(曖昧)라는 말은 일본어 '아이마이'에서 온 단어로 '모호하다'와 같은 의미이다. 따라서 '모호하다'로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되는 말인 만큼 잘못된 단어라고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이외에도 일제강점기에 수백 가지에 이르는 단어들이 일본식 표현으로 바뀌거나 합쳐졌다.
 1945년, 우리는 약 30년간 이어지던 일제의 탄압에서 해방되고 우리나라를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일제 치하에서 30년 동안 사용된 말들은 현재까지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말들은 일제의 흔적으로, 우리 민족의 깊은 흉터로 남아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친일파 청산에 앞장서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편에 붙어 자신의 이익을 챙긴 사람을 우리는 친일파라 부른다. 지난 13일, 익산 공공영상미디어 센터에서 3·1절 100주년을 맞아 '우리 사회 속 친일 잔재들'을 주제로 특별강연이 열렸다.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 김재호 지부장은 친일청산에 진정한 목적을 찾기 위한 강연콘서트를 열어, 약 1시간 30분 동안 이야기를 들려줬다.
 민족문제연구소는 한일 과거사 청산을 통해 굴절된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친일인명사전 편찬 등 일제 파시즘 잔재의 청산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2016년에는 친일파 이두황의 묘에 친일 행적이 낱낱이 적힌 단죄비를 설치했다. 사후 100년 만에 행해진 일이었다. 이두황은 동학 농민군을 토벌하는데 앞장서는가 하면, 명성황후 시해 당시 일본 자객의 길잡이 역할을 한 인물이다. 또한, 다야마 사다코로 살아간 배정자는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였다. 일본의 밀정으로 활동한 일제의 앞잡이로 조선인 항일세력 탄압에 앞장섰다. 그녀는 해방 후 반민특위로 잡혀온 첫 번째 여성 피의자로 마포형무소에 수감됐다.
 이들은 모두 친일인명사전에 기록됐다. 친일인명사전은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식민통치·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우리 민족 또는 타 민족에게 신체적 물리적 정신적으로 직·간접적 피해를 끼친 자'를 수록한다. 특히 그들의 구체적인 반민족 행위와 해방 이후 주요행적 등이 기록돼 있는데 그 수는 4천 389명에 달한다.
 
   도둑이 제 발 저릴까
 프랑스 및 유럽은 4년에 불과한 나치 점령 기간 동안 협력한 자국인들을 단호하게 처단했다. 전쟁이 끝난 후 처벌받은 프랑스인은 약 150~200만 명에 이르렀고, 이후에도 매국노 재판소를 프랑스 전역에 설치해 나치 협력자들을 대거 숙청했다.
 반면 우리는 아직까지 친일파 청산을 하지 못했다. 1948년 친일 민족 반역자를 처벌하기 위해 '반민족 행위 처벌에 관한 특별법'이 만들어졌고, 4개월 동안 300여 명의 반민족 행위자를 체포했다. 하지만 이승만과 친일파들은 법률 제정과 조사위원회의 활동을 방해하며, 결국 1949년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 해체안'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반민특위는 이렇다 할 성과 없이 해산되고, 친일파 청산은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갔다.
 
   들리지 않는 규탄의 목소리
 일부 대학의 학생들도 일제의 잔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일부 대학교 교가가 친일파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봤는가? 전북대와 군산대 교가는 일제의 식민통치를 지지한 작곡한 현제명이 작곡했고 우리대학 교가는 김동진이 작곡했다. 김동진은 만주작곡가협회에 가입하고 만주국 건국을 찬양하는 음악을 작곡하는 등 일본 제국의 만주 정책에 협조한 행적이 있어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인물이다. 우석대는 일제를 찬양하는 시를 쓴 서정주가 작사한 교가를 10년 만에 고쳤다. 하지만 우리대학을 포함한 대부분의 대학은 친일인명사전에 기록된 인물이 작사·작곡한 교가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반성하면서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게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은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는 목숨 걸고 "독립만세"를 외쳤던 선열 앞에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기 위해, 곳곳에 산재한 친일 잔재를 청산해야 할 의무가 있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모른척하는 것은 부끄러운 짓이다. 과거의 역사를 덮어두면 오늘의 역사를 보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의 후손을 위해 잘못된 점을 인지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머지않아 역사의 흉터는 덧나지 않고 새살이 돋아날 것이다.
 
 

  이애슬 기자 dldotmf3295@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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