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메시지의 출현도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카톡,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수많은 정보가 오가고 있다. 이러한 때 지인들끼리 가상공간에서 구어체로 대화를 나누는 상황이 많아지게 된다. 앞으로 몇 주에 걸쳐 한 번 알아두면 유용하게 쓰일 몇몇 형태들을 알아보기로 한다. /편집자

 
 우리에게 익숙한 동요를 제시하면서 시작하도록 하자. '조용해라'가 맞는 표현인지는 말미에서 알아볼 것이다.
 (1)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다. 칙∼폭 칙칙 폭폭 칙칙 폭폭 (…)
   기차소리 요란해도 옥수수는 잘도잔
   다.
 '크다'를 보통은 형용사로 알고 있다. 그런데 위에서는 '크-'에 '-ㄴ다'가 통합되어 있다. '-ㄴ다'가 붙어 있는 것은 동사이다. '자라다/성장하다'라는 의미이다. '못 본 사이에 많이 커서 못 알아보겠다'에서 '커서'는 '성장하다'라는 의미를 갖는 동사이다. 물론 '액정이 꽤 크다'에서의 '크다'는 형용사이다. '액정이 큰다'가 말이 되지 않는다. 형태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액정이 큰다'는 마술을 부려야 가능한 일이다.
 '젊다'의 반대말은 무엇인가? 보통 사람은 '늙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와, 그 사람 젊다'의 반대 의미로는 어떤 표현이 적당할까? '와, 그 사람 늙었다'가 정답이다. '늙었다'는 과거를 뜻하는 표현이 아니다. '늙어 있다' 정도로 치환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의 '-았/었-'은 현재의 상태(또는 상태 그 결과의 지속)를 말하는 것이다. 영어 문법으로 따지면 현재완료적인 의미로 파악될 수 있겠다. 현재완료 정도로 쓸 수 있는 단어는 동사라 보면 된다(후술). 사람은 자꾸 늙는다. 늙게 마련이다. 계속 늙어 간다. 그 과정에서 현재 시점을 끊어서 말하는 것이 '늙었다' 정도일 것이다. 그러니 '늙다'도 동사인 셈이다. '(문이) 잠겼다/열렸다'도 완료적 의미로 파악되니 동사이다. 다음과 같은 예도 참고할 수 있다.
 (2) 가. 내 앞에 지금 섰는 사람은 누구냐?     ☞ 서 있는
   나. 지금 저 뱀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해라. ☞ 죽어 있는지
 국립국어원은 2017년 12월 '-았/었-'이 형용사에 결합하면 '과거'의 의미가 드러나는데(3가), '낡다', '잘생기다', '못생기다', '잘나다', '못나다' 등은 '-았/었-' 결합형이 (3나)와 같이 '현재 상태'를 의미하기에 품사를 '동사'로 수정한다고 하였다.
 (3) 가. 내 나이가 가장 적었다(과거).
      내 나이가 가장 적다(현재).
   나. 아빠를 많이 닮았다(현재).
      아빠를 많이 닮다(기사문에서나       가능함).
   cf. 낡았다, 잘생겼다, 못생겼다,
      잘났다, 못났다
 국립국어원의 이 설명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글쓴이가 제시한 대로 기본형으로 쓰이는지 안 쓰이는지로 판단해도 된다. 기본형으로 평상시 쓰이면 형용사, 안 쓰이면 동사라는 것이다. 
 외국인이 한국어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한국어의 조사와 어미 때문이다. 그중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 고쳐지는 것이 바로 이상에서 살펴본 '상태 지속 / 완료'를 뜻하는 '-았/었-'이다. 다음은 중국인 유학생과 글쓴이와의 대화이다. 5분 전까지만 해도 두 학생 진진과 피뢰는 강의실에 같이 있었다. 5분 후 진진이 학과사무실에 갔다가 강의실로 막 들어왔다. 그런데 그 강의실에는 방금 전까지 있었던 피뢰가 없는 것이다.
 (4) 가. 진진: 선생님, 피뢰 지금 어디
       가요?
     글쓴이: (헐)
     나. 진진: 선생님, 피뢰 지금 어디
        (    )?
    글쓴이: 지금? 화장실 갔어(O)/
        화장실 갔지(O).
 (  ) 안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가? (4가)에서 진진은 '가요'라고 말했다. 글쓴이는 당황스러웠다. 정상적인 대화라면 빈칸에 '갔어요'를 넣어야 한다. 외국인은 '지금'이라는 말과 '-았/었-'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많은 외국인들은 '갔어요'라 하지 않고 '가요'라고 한다. 여기에서 '갔어요'는 '가 있어요'라는 의미이다. '지금 어디 가 있어요'라고 물으면 선생님은 당연히 '화장실에 가 있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상태 지속(완료)의 '-았/었-'이다.
 이와 관련하여 '늦다', '밝다', '있다'에 대해 살펴보자. 각각은 형용사로도 쓰이고 동사로도 쓰인다. 먼저 '늦다'를 예로 들어보자.
 (5) 가. 이 시계가 빠르고 저 시계가 늦다.
     나. 그러면 학교에 늦는다. 아니, 벌     써 늦었다.
 (5가)는 '늦다'라는 기본형이 쓰이고 있으므로 형용사임을 확인할 수 있다. (5나)는 현재의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학교에 '늦는다'라고 말하다가 결국 '늦었다'라는 완료의 의미로 발화하는 것이다. 어느 시점부터 벌써 늦은 상황이고 그 상황이 말하는 시점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래서 이때의 '늦-'은 동사이다. 조금씩 늦는 상황과 관계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늦는다'가 중요하다. 형태상 '-는다'가 쓰였기에 동사이다. '밝다' 역시 마찬가지이다.
 (6) 가. 이제 날이 밝았다, 이제 날이 밝     는다
     나. 형광등이 밝다, 방이 매우 밝다
 '밝-'에서도 (6가)처럼 완료적 용법을 찾을 수 있다. 또한 '-는다'와의 결합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밝-'은 동사로 쓰임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6나)의 '형광등이 밝다', '방이 매우 밝다'는 기본형인 '밝다'만으로 말이 되니 형용사인 셈이다. 
 이상에서 형용사로 알고 있는 여러 단어 중에는 동사로 쓰이는 것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반대로 동사처럼 활용을 하는 형용사 몇몇을 제시하기로 한다. (7)에는 그동안 거리낌 없이 써 온 말들이 제시되어 있다. 주의할 필요가 있다.
 (7) 가. (조용해라, 조용히 해라).
     나. (조용하십시오, 조용히 하십시오).
     다. (조용하자, 조용히 하자).
     cf. *건강해라, *건강하십시오,
        *건강하자, *아프지 마

 '조용하다', '건강하다', '아프다'는 형용사이다. 기본형 자체로도 일상생활에 쓰인다는 점,  '-ㄴ다' 결합형, '조용한다', '건강한다', '아픈다'가 말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 수 있다. 주지하듯이 형용사는 '작아라', '많자'와 같은 명령 및 권유 형태로 쓰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7)에 제시된 예는 모두 후자처럼 표현해야 한다. (7)을 통해서도 명령형, 청유형 등이 동사와 형용사를 구별하는 전형적인 표지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임석규 교수(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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