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30일은 일본 현 천황인 아키히토(明仁)가 퇴위한 날이다. 그는 아시아 태평양 전쟁의 주범인 히로히토(裕仁)의 뒤를 이어 1989년에 즉위한 후 30년 3개월 동안 재위했다. 아키히토 천황의 퇴위는 메이지 유신 이후에 최초로 시행되는 생전퇴위로서 국제사회에서도 주목하였다. 일본은 메이지 헌법과 황실전범에 천황의 퇴위를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퇴위는 한 세대에만 적용하는 특례법으로 실행되었다.

 

 
 
 아키히토 천황이 퇴위 의향을 밝힌 것은 2016년 8월이었다. 그는 천황의 생전퇴위에 부정적이었던 아베 정권을 배제시키고, 대국민 메시지라는 방법으로 퇴위문제를 공론화하였다. 너무 노령이어서 더 이상 국가 제례를 이행할 수 없다는 천황의 고백은 국민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아베 정권은 천황의 생전퇴위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과정을 두고 일부에서는 천황이 아베의 우익행보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하여 퇴위문제를 공론화한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85세의 현 천황이 수행하기에는 국가 제례가 너무 과하기 때문에 순수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아키히토 천황의 생전퇴위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현행 헌법에서 일본은 '상징천황제'를 표명하고 있다. 이는 메이지 헌법에서 천황을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신성불가침한 존재로 규정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말 그대로 '실권이 없는 국민 통합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이 개념은 아시아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패한 후 냉전체제가 본격화하고, 중국이 공산화하자 일본을 자신의 우방국으로 삼고자 했던 미국과 어떻게든 천황을 전쟁책임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자 했던 일본 보수 세력의 타협으로 탄생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전쟁의 주범이었던 히로히토는 평생을 천황의 자리에서 살다 수명을 다했고, 그 뒤를 이은 현 천황 아키히토는 황족이 아닌 일반인 미치코 황후와 결혼하면서 열린 황실을 외쳐왔다. 그러나 이번 생전퇴위는 천황이 의지를 갖는다면 실제로 국민을 통합할 수도 있는 존재임을 드러낸 결과가 되었다. 다시 말해 아베의 헌법 개정을 막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그야말로 정치적인 문제에 확실하게 관여하는 결과이고, 단순히 노령 때문이라 할지라도 정치권의 반대를 무릅쓰고 천황이 직접 국민의 의견을 모음으로써 실질적인 국민 통합의 주체 가능성을 증명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새삼 일본 국민의 천황에 대한 심정을 확인하게 되었다. 일본 국민은 여전히 천황을 중심에 두고 세상을 바라본다. 원호(元號) 사용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아키히토 천황 때는 헤이세이(平城)였다. 히로히토가 죽고 드디어 일본이 '천지와 내외의 평화를 이룬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다음 천황인 나루히토仁)는 레이와(令和)를 사용한다. 일본의 최고 시가집 <만요슈(万葉集)>에 나오는 말로 '질서·평화·조화'를 뜻한다. 아베 정권이 레이와 원호와 '아름다운 국가' 또는 '보통 국가'를 어떻게 접목시킬지 지켜볼 일이다. 그는 이미 "레이와라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선에 서서 일본의 미래상을 정면으로 논의해야 할 때가 오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새 시대라는 분위기를 활용해 헌법 논의를 진전시키고자 하는 의도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 사회의 사회적 현상을 경계심 섞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천황의 의도가 어떠했든 천황의 생전퇴위로 역사의 큰 전환점에 서 있는 일본이, 그리고 일본 국민이 어떠한 선택을 할지 주목해야 할 것이다.
 
  유지아 교수(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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