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꽃, 넋으로 돌아오라

그 희생을 잊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한의과대학 신관과 구관 사이에 있는 화단에는 작은 추모비가 하나 세워져있다. "오월의 꽃 넋으로 몰아오라 임균수여" 그리고 바로 옆 기둥에는 화살표 모양의 코팅지가 붙어있다. 그 속에는 "5.18 임균수 열사님의 추모비가 있습니다."라는 손글씨가 꾹꾹 눌려담겨 있다. 비에 번지고 햇빛에 바래어 오랜 시간동안 추모비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매일매일 지나다니며 추모비를 무심코 스쳐가다가도, 5월이 되면 사람들의 눈길이 잠시 머물다가 떠난다. 꽃과 잡초들이 주변 화단을 물들이면, 그 사이에서 이질적인 회백색의 추모비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 앞에는 가끔씩 작은 꽃이나 매점빵 같은 것이 놓여있다. 잊혀져가던 추모비는 누군가의 작은 추모식에 의해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기억된다.
 곧 따뜻한 5월이 된다. 중간고사가 끝난 캠퍼스의 5월은 일 년 중 가장 들떠있는 달이다. 이름에 무색하게도 1980년의 봄은 가장 잔혹했다. 지금이 39년 전의 캠퍼스였다면 나는 이곳에서 생명을 걸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치는 깨어있는 학생이었을까. 
 1980년, 매일같이 열렸던 집회는 학생들을 거리로 이끌었고, 광주 금남로에서는 신군부의 집권을 규탄하고 민주주의를 외치는 목소리와 열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당시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본과2학년으로 재학 중이던 임균수 선배님은 매번 열리는 시위 속에서 민주주의의 목소리를 내며 맞서 싸우던 학생이셨다. 계엄령과 휴교령으로 인해 광주에 머물게 된 선배님은 5월 21일, 형 임양수 씨와 함께 전남도청 앞으로 갔다가, 협상 결과를 기다리던 시민들을 향해 발포된 무자비한 총알을 피하지 못했다. 
 39년 전 5월의 외침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눈물과 분노, 그리고 투쟁의 열기는 2019년 지금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문자 속에 남아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1980년 이후로 오늘까지 우리는 광주의 5·18 민주화운동을, 그리고 임균수 선배님의 희생을 기억했다. 잊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이들의 삶은 우리에게 남아있다.
 지난 2011년 5월에는 5·18 민주화운동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만들어주는 힘은 기억에 있으며 기록물은 그 기억을 보호해준다." 유네스코 사무총장인 이리나 보코바의 말처럼, 우리는 무고한 희생을 기억하고 추모함으로서 그 가치를 보호해야한다. 
 원광대학교는 임균수 선배님을 기리기 위해 수덕호 옆에 임균수 광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2009년 법학대학원 설립과 함께 공대 옆 잔디밭으로 추모비가 옮겨진 후에도 계속해서 많은 학생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누군가 임균수 선배님의 추모비 앞에서 기린 작은 마음이 퍼져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았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들은 선배님의 마음과 뜻을 이어가고 있다. 이 자리를 빌어 임균수 선배님과 그를 기리기 위해 기억을 남겨준 많은 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조나현(한의학과 본과 2년)

 

 

남겨진 하나의 '씨'

민주주의 위해 목숨 바친 분들이 생각나는 계절

 1945년 8월 15일 대한제국은 광복을 맞이하였다. 일본에게 뺏긴 주권을 다시 되찾은 것이다. 되찾은 주권은 국민에게 돌아왔으나, 초기 국민들은 그 주권을 어떻게 활용해야할지 몰랐다. 주권이라는 개념자체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졌고, 한 번도 주권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였기에 활용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이용한 사람들이 존재하였다. 물론 그들이라고 그 상황을 오롯이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서만 사용한 것은 아니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분명 창천의 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의 맛은 달콤했다. 결국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에 수많은 위기를 겪게 되었다. 사사오입개헌과 유신개헌과 같이 재집권을 하기 위하여 헌법을 바꾼 사례 등이 이들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민주주의 대한 열망을 막진 못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부당한 권력에 맞서기 위하여 투쟁하였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목숨들이 민주주의, 단 하나의 가치를 위하여 희생하였다. 4.19혁명, 부마항쟁, 5.18 민주화 운동 등이 바로 그것이다. 수많은 열사들이 민주주의 가치를 위하여 기꺼이 투쟁하였고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빼앗긴 주권을, 민주주의를 다시 되찾아 올 수 있었다. 그분들은 산수유 같은 붉은 마음과 매화와 같은 고고한 향기를 갖춘 분들이였다. 원광대학교 정문에서 조금 걸어 올라오면 한의대 앞에 아직 피지 않은 산수유와 그 옆에서 하얗게 핀 매화를 볼 수 있다. 매화가 피고 벚꽃이 피면 봄이 온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봄은 그렇게 갈망하던 민주주의를 사랑하던, 민주주의 목숨을 바쳤던 분들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이 아름다운 꽃들을 보면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하여 희생하신 분들을 위하여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정신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에서 공화국(Republic) 이라는 뜻은 "자유와 법을 수반한 권력" 이라는 뜻이다.(『인간학』[§109, Ⅶ 330f.]) 즉, 자유와 법을 수반한 권력이라는 뜻은 그 권력이 자유와 법에 위배되어서 안되고 자유와 법을 넘어서는 권력이여서는 안되는 것이다. 자유와 법에 위배되면 그것은 야만상태이고 자유와 법을 넘어서면 그것은 전재국가일 것이다. 머나면 과거에 있었을 일 같지만 불과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인 1980년 5월이 바로 그런 상황이였다. 국가권력이 자유와 법을 넘어서는 권력을 갖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갈망하였었다. 원광대학교에서도 뜻이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기꺼이 민주화를 위하여 구호와 노래를 불렀다. 그분들도 각자 자신의 꿈이 있었다. 어떤 이는 엔지니어를, 어떤 이는 선생님을, 어떤 이는 명의를 꿈꿨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잠시 제쳐두고 대한민국의 미래와 민주주의를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고 장렬하게 산화하였다. 그리고 산화하면서 하나의 '씨'를 남겼다.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의 '씨' 다. 그리고 이 민주주의의 '씨'는 자라서 결코 시들지 않는 나무가 되었다. 그것들은 모두 우리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봄은 민주주의의 계절이다. 너무나도 슬픈 일이 있었던 계절이면서 너무나도 민주주의를 갈망으로 부르짖던 계절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의 봄은 희망의 봄이다. 이 희망의 봄은 결코 저절로 우리에게 다가온 봄이 아니다. 이 희망을 위하여 숭고한 희생이 있었음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곧 5월이다. 민주주의를 위하여 희생한 이들을 위하여 잠시나마 묵념과 감사의 인사를 하자
 "타는 목마름으로 갈망하던 그대여, 숨죽여 흐느끼며 남 몰래 썼던 그대여, 당신들의 꿈보다 우선하였던 그대여, 그대들 덕분에 희망의 봄이 왔노라, 이 봄은 결코 시들지 않는 '씨'를 품고 있노라, 그대여 편히 잠드소서"

조영민(한의학과 본과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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