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3일과 14일 양일에 걸쳐 익산에 다녀왔다. 익산시와 원광대학교 대안문화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2019 백제 역사 문화 탐방'을 통해 익산의 멋과 맛을 만끽하였다. 미륵사지, 쌍릉, 왕궁리유적 등을 통해 익산 전통의 멋에 취했고 청국장, 매운탕, 막걸리 등을 통해 익산 오늘의 맛에 취했다.
 이렇게 멋과 맛에 취하던 중에 익산의 방언도 익산의 유·무형 문화 유산만큼이나 재미있다는 익산 토박이 분들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익산 방언을 흥미로워하는 필자에게 그 분들은 소설 『소라단 가는 길』을 읽어 보라고 하시면서 익산 방언이 그 소설에 잘 구현되어 있다는 조언을 주셨다.
 
 『소라단 가는 길』은 원로 소설가 윤흥길(원광대 국문과 72년 졸업)의 작품으로서 40년 만에 고향을 찾은 초등학교 동창들의 회고담 9편을 포함하여 총 11편으로 구성된 연작 소설이다(창비, 2003년). 문학에 문외한인 필자로서는 이 작품의 문학적 의의에 대해서는 말하기 어렵다. 이 작품을 통해 전후의 어려웠던 지난날, 즉 오늘의 우리를 낳은 어제의 우리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는 소박한 감상을 남길 수 있을 뿐이다. 다만 여기서는 이 작품에 제시된 지명인 '소라단'과 관련된 국문법을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소라단'을 고른 이유는, 문학 작품은 그것이 배태된 공간과 무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일차적이지만, '소라단'이라는 지명이 국문법적으로 매우 중요한 증언을 하고 있다는 점이 보다 본질적이다.
 『소라단 가는 길』에는 지명이 여럿 등장한다. 시녀지, 큰남바우, 소라단 등이 그것이다. 시녀지(侍女池)는 '농림학교 방죽' 못을 가리키는데(후에 메워져 이리농림학교가 되었다가 지금의 전북대학교 익산캠퍼스가 됨), 못(池)의 물이 하도 맑아서 옥황상제를 모시는 시녀(侍女)가 내려와 목욕을 하였다는 설화에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한다(62-63쪽). 큰남바우는 남바위를 닮아서 붙은 이름이라는 견해와 남쪽과 관련되어 있는 이름이라는 견해가 소설에서 함께 제시되어 있지만 결론은 뚜렷하지 않다(85-86쪽). 그러면 소라단은?
 소라단 역시 소설에서 대체적인 이름의 기원을 설명하고 있는데(205쪽), "소라딱지 모양으로 생긴 데서 붙은 지명"이라는 민간어원론도 제시되어 있고 "소라단의 본디 이름은 송전내(松田內)였다. 그걸 우리말로 풀어쓴 이름이 솔밭안이고, 세월에 따라 소리 나는 대로 바뀐 이름이 곧 지금의 소라단"이라는 정곡을 맞힌 설명도 제시되어 있다. 필자는 "세월에 따라 소리 나는 대로 바뀐"이라는 부분에 대한 설명을 조금 덧붙여서 '소라단'이라는 이름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한다.
 '송전내(松田內)'가 시사하듯이, '소라단'은 원래 '솔+밭+안'의 복합어로부터 출발하였을 것이다. 이 '솔밭안'에서 '소라단'으로의 변화에는 크게 세 가지 국문법적 주제가 개입되어 있다. 첫째, 공명음 사이에 있는 'ㅂ'이 'ㅸ'을 거쳐 'w(오/우)'로 변하였다.('ㅸ>w(오/우)'의 변화는 오늘날의 '고와, 더워'가 15세기에 '고 더였음을 떠올리면 이해가 된다) '솔밭안>솔안>솔왙안'. "집의 울안에 있는 작은 밭"을 뜻하는 '터앝'이나 지리산의 반야봉과 연곡사 사이의 계곡인 '피앗골'도 같은 변화를 밟았다. '터+밭터왙>터앝, 피+밭+골>피골>피왙골>피앝골>피앗골'. 이쯤이면 기억하기도 싫은 고등학교 문법 시간이 떠올라 진저리가 쳐질지 모르나, 내친걸음이니 문법 설명을 계속한다.
 나머지 둘은 간단하다. 둘째, '솔ㅤㅇㅘㅌ안'의 'ㅌ'이 'ㄷ'으로 발음된다. 이는 '겉옷+이'가 [거도시]로 발음되고 '밭 아래'가 [바다래]로 발음되는 것과 같다. 셋째, '와'가 '아'로 변하였다. '놓아라'를 줄여 [놔라]로 발음하는 것을 넘어 더 편하게 [나라]로 발음할 때 이와 같은 '와>아'의 변화가 일어난다.
 좀 어려웠을지 모르겠으나, 지금까지의 설명으로 '솔밭안'의 '소라단'으로의 변화를 이해하게 되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면 '송전내(松田內)'는 무엇인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소라단은 애초에 '솔밭안'이었을 것인데, 한글이 창제되기 전이나 한글이 있더라도 한자로 지명을 써야 될 상황에서는 이 '솔밭안'을 '松田內'로 표기했을 것이다.(따라서 앞에서 인용한 "소라단의 본디 이름은 송전내(松田內)였다. 그걸 우리말로 풀어쓴 이름인 솔밭안"은 실제와는 반대다) '솔→松, 밭→田, 안→內'와 같이 고유어를 그 의미의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이것이 구결이니 이두니 향찰이니 하는, 이른바 한자차자 표기법이다) '한밭'을 한자로 '大田'이라 쓴 것도 이와 같은 과정을 따른 것이라고 하면 더 이해하기 쉬울지 모르겠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로 가득한 『소라단 가는 길』의 일독을 권한다. 배경이 되는 익산의 곳곳을 찾아가 보기도 아울러 권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필자도 이 책을 옆구리에 낀 우리 학생들과 함께 익산의 거리 곳곳을 누벼 보고자 한다.
 ※ 『소라단 가는 길』의 익산 방언 전반은 전북대 이태영 교수의 논문에서 자세히 분석된 바 있다[이태영(2006), 「윤흥길의 <소라단 가는 길>에 나타난 일상어의 특징」, 『국어국문학』 142, 국어국문학회, 31-54.].

  이상신 교수(아주대 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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