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5월 7일)에서는 '가지 마라고 / 가지 말라고'에 대해 살펴보았다. '가지 말라고'가 옳은 표현이라고 했다. 관련하여 간접 인용과 직접 인용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가지 마라"라고 했다.>로 쓰는 것이 직접 인용이다. 직접 인용 시에는 반드시 '-라고'라는 형식을 취해야 한다. 따옴표 안에서 한 말을 직접 제시하고 따옴표 뒤에서 바로 '-라고'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불편하더라도 일단 규정은 그렇게 되어 있음을 상기하자. 『표준국어 대사전』을 인용한다. '-라고' 앞에는 따옴표가 있고 '-고' 앞에는 따옴표가 없음을 아래 (1), (2)에서 확인할 수 있다.

 

 (1) -라고 「조사」
  (받침 없는 말 뒤에 붙어) 앞말이 직접   인용되는 말임을 나타내는 격 조사. 원  래 말해진 그대로 인용됨을 나타낸다.
 주인이 "많이 드세요."라고 권한다.
 그중 하나가 나서서 "내가 바로 홍길동이 다."라고 소리쳤다.
 조카가 나에게 "삼촌은 비 내리는 소리가  좋으세요?"라고 물었다.
 (2) -고 「조사」
  (종결 어미 '-다, -냐, -라, -자, -마'   따위 뒤에 붙어) 앞말이 간접 인용 되는   말임을 나타내는 격 조사.
 아직도 네가 잘했다고 생각하느냐?
 아까는 술을 전혀 못 마신다고 하더니?
 아내는 나더러 낙엽 밟는 소리가 좋으냐고  물었다.
 다음과 같은 '-라는'에도 따옴표 방식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2) '지구가 둥글다'라는 견해는 처음에는     지지되지 못했다.
 
 
 위에서처럼 '-라는'을 쓰는 경우에도 따옴표를 붙여야 한다. 따옴표를 하기 싫으면 '지구가 둥글다는 견해는…'이라고 쓰면 된다. 그런데 말을 할 때에도 다음과 같이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잘못이다.
 
 
 (3)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먹기에 달려 있   다라고 원효는 깨달았지. 바로 일체유   심조(一切唯心造)지.
 말을 할 때에는 따옴표가 없으니 '있다라고', '온다라고', '가자라고', '고개를 들어라라고'처럼 표현해서는 안 된다. 이는 모두 '있다고', '온다고', '가자고', '들어라고'로 말해야 한다.
 이제 위에서 살펴본 '-라는'과 관련된 간접 인용 '내로라는 선수들'과 '내노라는 선수들' 중, 무엇이 맞는지 검토해 보자. 일단 (4)에 제시된 황진이의 유명한 시조 한 수를 읊어 보자.
 (4) 산은 녯산이로되 물은 녯물이 안이로다.
    주야(晝夜)에 흘은이 녯물이 이실쏜야.
    인걸(人傑)도 물과  여 가고 안이
    오노라.
 
 
 바로 위 시조의 초장, '산은 옛산이로되 물은 옛물이 아니로다.(현대어 역은 필자)'에는 '-이로되'와 '아니로다'가 눈에 띈다. '-이되', '아니되'의 고풍스러운 표현이다. '-이다'는 '-이로되', '-이라고', '-이라는' 등으로 교체되고 '아니다'는 '아니로되', '아니라고', '아니라는' 등으로 교체된다. 
 그러면 '내로라는'은 무슨 뜻인가? '내로라는'은 '나이다'의 간접 인용 방식이다. '나이다'에서 어미 '-다' 대신, '-라는'이 결합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나이라는'을 고풍스럽게 표현한 것이 바로 '나이로라는'이다. '-이다'는 '-이로되', '-이라고', '-이라는' 등으로 교체된다고 하였다. 그러면 '내로되', '내로라고', '내로라는'으로 교체됨을 알 수 있다. <'노래로 말하자면 나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를 간접적으로 인용한다면 '노래로 말하자면 나이라는 말이 있다'로 표현된다. 여기에서 '-라는'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로라는'은 고풍스러운 표현이라고 했다. '나이로다'라는 말이다. 이를 간접 인용으로 표현하면 '나이로라는'이 되고 '나이'가 줄어서 '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로라는'이 맞는 표현이다. '내로라 하는'은 '내로라 말하는'에서 '말'이 생략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맞는 표현이다. '내로라는 선수들'도 맞고 '내로라 하는 선수들'도 맞는 표현인 셈이다. '내노라는'이야말로 정체불명의 틀린 표현이라는 것을 위 설명에서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내노라는(×) / 내로라는(o)'은 '희노애락(×, 喜怒哀樂) / 대노하다(×, 大怒-)'를 '희로애락(o) / 대로하다'라고 부드럽게 발음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상은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요약될 수 있다.
 
 
 (5) '나이로다'라고 하는 → 나이로라고 하   는 → 내로라고 하는 → 내로라는
 차례대로 "간접 인용"의 과정, "'나이'가 '내'로 줄어드는 과정", "-라고 하는"이 "-라는"으로 줄어드는 과정이 적용된 것이다.  
 참고 : 위에서 황진이의 시조를 제시한 바 있다. 아래 시조도 황진이의 작품이다. 세종대왕 덕분에 아름다운 우리말을 그대로 표현해 낼 수 있었다.
 冬至(동지)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 혀 내어
 春風(춘풍)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착상이 매우 뛰어나다. 이런 착상은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전에도 한문으로서 가능했다. 중요한 것은 세종 덕분에 '서리서리', '구뷔구뷔'라는 표현을 아무 부담 없이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한자로 표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필자 같은 국어학 연구자는 물론 문학인도 세종에게 고마움을 뜨겁게 느껴야 한다. 머릿속에 떠오른 시어를 소리대로 쓰면 되는 것이었다. 한자를 찾지 않고도 말이다. 소위 진정한 언문일치의 기점 바로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였던 것이다.
 
  임석규 교수(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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