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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글] OK, 땡큐, 4유로,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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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0  17:3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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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라하 올드타운 스퀘어, 뒤로 틴성모마리아 교회가 보인다 사진 제공 : 조현범

 

 참 부끄러운 삶을 살았다. 무한할 거라고 느껴지던 대학생활이 이제 끝을 암시하고 있다. 벌써 개강, 벌써 종강, 그리고 다시 벌써 개강의 반복. 중간에 군대를 위한 휴학까지 포함하면 성인이 되고 나서 초등학교를 한 번 더 다닌 것과 같다. 이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가. 돌이켜 생각해보면 얻어낸 것들은 많지 않다. 자격증도 얼마 없는 사람. 자격증이라는 존재는 어느샌가 나를 쫓아오는 마왕이 돼 있었다. 항상 부족하다고, 더 준비해야겠다고 도망 다니던 나는 이제 막다른 골목을 코앞에 두고 있다.
 물론 자격증이 대학생활의 척도는 아니다. 나는 얻어낸 것들은 많지 않지만, 이뤄낸 것들은 적지 않다. 학생기자로서 원광대학교의 역사를 함께하고, 기록했으며 모범생(?)으로서 맨 앞자리에서 교수님의 강의에 적극 참여했고, 좋은 친구들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남들과는 다르지만 충분히 보람 있는 대학 생활을 보낸 거 같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생각이 그저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는 내적 비판이 이어졌다. 나는 작은 사람이다. 얻은 게 없는 작은 사람이다. 나는 정말로 작아지고 있었다. 얻어둔 게 없으니까. 그리고 얻어둔 게 없으니까 앞으로도 살아가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유럽을 눈으로 보기 전까진 말이다.
 11시간에 걸친 비행은 '작은 나'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풍경도 건물도, 사람 사는 모습까지 비슷한 듯 달랐던 동유럽.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아 더욱 반짝이는, 모든 것이 놀랍고 모든 것이 아름다웠던 체코 프라하. 단 하나 아쉬웠던 것이 있다면 다시 '나'였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기념품을 사려고 소통을 시도할 때, 버벅거림이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뛰어다닐 무렵부터 알파벳을 입에 붙이기 시작한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까지 최소 12년을 배웠던 영어가 내 발을 묶었다. 애당초 하나도 몰랐다면 억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눈앞에 문법이 아른거리고 목젖까지 올라온 "It's too expensive. Just a little discount please"가 "I have no money"로 허무하게 식어버리는 그 기분은. 말로 이루어 표현할 수 없다.
 신기하게도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돈이 없다는 말을 들은 상인은 "OK"를 두 번 말하더니 아쉬운 표정으로(다시 생각해보면 표정 연기가 수준급이었다.) 1유로를 낮춘 가격, 4유로를 불렀고 나는 "Thank you"를 외치며 "Merry Christmas"라고 덧붙였다. 이곳 사람들은 사람이 많은 곳을 헤치고 지나가야 할 때는,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Excuse me"라는 말보다는 "Sorry"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했다. 처음 보는 낯선 이에게도 "Merry Christmas"라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인종도 다르고 서로 사용하는 언어도 다른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라는 기념일을 맞아 성당에 모여 함께 미사를 올렸다. 귀국하는 비행기에 올라 다시 십여 시간을 날아오며 결심했다. 다음 방학에는 영어 공부를 하자. 자격증을 위한 공부가 아닌 나를 위한, 내 여행을 위한 공부를 하자. 이렇게 마음먹은 지 벌써 6개월이 지났다. 나는 이제 지난날의 나와 했던 약속을 지키려 한다. 당신께서는 어떻게 할 생각인지 궁금하다. "이번 방학에는…"이라고 세웠던 나름의 계획들을, 과거의 자신과 했던 언약을 지킬 것인가? 

  조현범(생명환경학부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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