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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제58회 '원광 전국 고교 현상문예 백일장' 당선작 (운문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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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1  15: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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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문 부문 장원>

 


       초식동물의 약속

                                                                       김세연(서강고)


흰 옷을 입는 건
얼룩을 기다리기 위해서야, 말했던 엄마는
얼룩말 무늬 가득한 옷을 입고 있었지
유리창에 투영된 TV에선 다큐멘터리가 흘러나왔어
초식동물들이 물을 마시는군요
육식동물을 피해서 나온 모양입니다
날파리처럼 다닥다닥 붙는 옆집의 눈소리를 피해
날카로운 이빨이 없는 우리는
다큐멘터리의 반대편에서 술을 마셨지
초식동물들의 본능적인 고요,
둘만의 암묵적인 약속
엄마의 숨결에선 화장실 타일의 소독약 냄새가 났어
체취를 잃어버린 엄마
툭, 튀어나온 꼬리뼈가 딱딱하게 굳어가는데
그것을 강함의 증거라 믿기로 했지
이를테면 문지를수록 단단해지는 양쪽 가슴,
나는 밤마다 어른이 되는 꿈을 꾸면서
엄마의 소독된 표정을 알 것도 같았지

 

당선 소감 - 운문 장원 김세연(서강고)

 

 

 안녕하세요. 제 58회 원광대학교 전국 고교생 백일장의 운문부 장원을 받은 서강고 2학년 김세연입니다. 백일장 심사위원분들, 관계자분들의 노고에 먼저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덕분에 좋은 환경에서 작문에 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선에 합격한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장원이라는 큰 상이 굉장히 크게 다가오기도 하고 아직은 얼떨떨한 기분입니다.
 저를 믿고 지지해주신 부모님과 옆에서 격려해주신 선생님, 친구들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 글에 있어서 부끄럽지 않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언젠가는 지면으로 사람들에게 찾아뵙겠습니다. 시 쓰는 김세연입니다. 감사합니다.

 

 

 

 

 

<운문 부문 차상>

 

       오선지 밖으로

                                                                    심현정(안양예고)


어릴적 나는
계단 난간을 쥐고 엉거주춤 선 낮은 도,

뛰어올라가는 아이들 틈에 끼어들기에
오선지는 가팔랐고 내 한쪽 다리는 너무 짧았다.

자라는 내내 세상은
이 안에 열맞춰 서야 음악이 될 수 있다고
나를 오선지로 떠말고
찌그러진 몸을 구겨넣으려다 나는 불협화음처럼 나뒹굴었다

절뚝거리는 화음을 누가 원하겠어?
나를 소음이라 부르는 음표들의 날카로운 말마디 너머 어느날,
처음으로 계단 난간을 놓고 뒤돌아 걸음을 옮겨보았던 날

절뚝거리는 걸음은 오직 나만이 지휘할 수 있는 박자였고
오선지 밖에서 나는 처음으로 나만의 것

모두가 원하는 음악을 뒤로하고
음악과 소음의 차이를 생각한다

음악에는 언제나 끝이 있다는 것

나는 끝없고 아름다운 소음이 되어
오선지 밖으로,
한 발자국을 내딛는다

 

 



완연한 흰색을 잃어가는 건 마음이었던걸까
내게 묻은 것들이 무엇인지
깨끗해졌다고 믿는 것들로부터 우리는 가장 위험했지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얼룩말로, 얼룩말로
변해가는 중이었지

 

 

당선 소감 - 운문 차상 심현정(안양예고)

 

 

 변두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눈과 혀와 오른손과 그것들이 만드는 제 이야기는요. 변두리에 머물 때는 변두리와 중심부를 두루 볼 수 있어 좋습니다. 저는 중심에 있었던 적 없지만, 지금껏 제가 알았던 중심의 사람들은 대부분 변두리를 잘 못 보는 것 같았습니다. 궁극적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에 오는 것들에 대해 쓰고 싶은데 그것 역시 중심보다는 변두리의 감각 같아요. 그래서 이번 백일장에서도 변두리의 화자를 데려와 썼습니다. 음악이 되지 못하는, 되지 못한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만드는 선율은 어떨까? 그걸 무어라 부르면 좋을까? 라는 의문에서 출발한 시였습니다. 하지만 늘, 항상,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제 시쓰기는 주머니에 넣은 적도 없는데 끔찍하게 엉키는 이어폰 줄 같았고, 이번에도 그랬어요. 엉킨 채로 낸 것 같아서 속상했는데 어떻게 잘 풀어 들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끝나지 않는 아름다운 소음' 이라는 게 얼마간 가능할 수도 있다는 뜻 같아 기뻤어요. 상도 상이지만, 삼십 만원은 정말 큰 돈이에요. 저는 여전히 변두리에 있겠지만 그 돈으로 맛있는 걸 사 먹고 새 여름 옷도 사 입고 앞으로도 이어폰 줄과 열심히 씨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운문 부문 심사평>

 

 

          세상의 모든 글쓰기는 독자를 위한 것


 이번 백일장 운문 부문 본선에는 총 76명의 예선 통과자가 참여했다. 예선을 거친 참가자들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단 한 작품도 허투루 읽을 수 없었다. 70여 편의 작품 대개가 참신한 상상력과 탄탄한 구성력으로 선자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올해로 58회에 다다른 대회의 무게를 확인할 수 있는 심사였다.
 김세연(서강고등학교)의 「초식동물의 약속」, 심현정(안양예술고등학교)의 「오선지 밖으로」 이상 두 편의 작품이 단연 눈에 띄었다. 심사위원들은 두 작품 중 「초식동물의 약속」을 이견 없이 장원으로 선택했다.
 「초식동물의 약속」은 초식동물과 신산스러운 모녀(母女)의 삶을 절묘하게 겹쳐 놓고 있다. 탄탄하고 안정적인 시상 전개가 특히 돋보였다. 이러한 작품이 나오기까지 참가자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날카로운 이빨이 없는 우리는 / 다큐멘터리의 반대편에서 물을 마셨지 / 초식동물들의 본능적인 고요, / 둘만의 암묵적인 약속"과 같은 진술이 특히 흥미로웠다. 이러한 진술은 담백하고 평이해 보이지만 대상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노력이 없이는 나오기 힘들다.
 「오선지 밖으로」는 인간 삶의 틀을 규정하는 대상을 '오선지'라는 모티프와 결합시켜 놓고 있다. 역시 자연스러운 시상의 전개와 유려한 수사가 돋보였다. "모두가 원하는 음악을 뒤로 하고 / 음악과 소음의 차이를 생각한다"라는 시구를 통해 작품에 완결성을 부여하고 있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시는 원래 파토스(pathos)의 장르이다. 아낌없이 감정을 토로하는 것이 시의 미덕이다. 물론 그러한 감정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서는 시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담화 체계에 익숙해 질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감정을 토해내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배치하여 독자를 설득하는 것에는 미숙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의미에서 김세현과 심현정의 작품은 읽는 사람을 고려한 쓰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시는, 문학은 일기가 아니다. 세상의 모든 글쓰기는 독자를 위한 것이다. '나'를 벗어난 글쓰기가 진행될 때 비로소 세상이 '나'의 글을 읽어줄 것이다. 모든 참가자들이 이 명제를 가슴에 새겼으면 좋겠다. 수상자들에게 축하의 말씀을 전한다.

심사위원/

강연호(시인, 문예창작학과 교수), 서덕민(시인, 융합교양대학 교수), 안성덕(시인), 배귀선(시인), 이혜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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