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기'로서의 고전(古典) <파우스트>
 
 '고전'이란 무엇인가? 분명 '오래된 책'이라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고전'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감동을 받는 작품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독일 낭만주의 철학자 쉴레겔은 위대한 예술의 조건을 "완전히 이해될 수 없음"으로 설명한다. 즉 고전은 '이해 불가능'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고전은 "그래서 영원히 되풀이하여 비판되고 해석되어야 한다"라고 쉴레겔은 정의한다. 고전은 끊임없이 '다시 읽기'가 필요한 작품이다. 
 '고전'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특수성과 보편성이다. 고전은 유일(唯一)해야 한다. 자기만의 '아우라(Aura)'를 갖고 있어야 한다. 유사한 것이 많아서는 고전이 될 수 없다. 특별하고 매우 사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야 고전이 된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이야기여야 한다. 동시에 다른 많은 사람에게도 감동을 주어야 한다. 감동은 '동감(同感)'을 전제로 한다. 나만의 이야기이면서 모두의 이야기가 고전의 조건이다. 특수와 보편의 모순은 지속적인 의문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둘째, 역사성과 시대성이다. 고전은 작품의 생성 시대뿐만 아니라 수용 시대의 문제를 담고 있어야 한다. 중세의 종언, 기독교 시대의 종말과 근대의 시작을 반영한 제시한 <파우스트>는 21세기 신자유주의 시대의 '소진(燒盡)사회'의 모습까지 보여준다. 고전은 '그 때와 그 곳'이 아니라 '지금, 이 곳'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끝없는 다시 읽기가 요구되는 것이다. 
 
'우주적 천재(universaler genius)' - 괴테의 생애
 1749년 8월 28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1832년 3월 22일 바이마르에서 운명한 괴테는 '삶 자체가 하나의 예술'인 인물이다. 괴테는 작가, 관료, 행정가, 극장 책임자, 대학 운영자, 자연과학자 등의 작업을 거의 살인적으로 수행했다. 괴테는 단순히 작가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열정적인 탐구를 실천한 인간이다. 그의 전기를 쓴 아이슬러는 괴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괴테는 궁정관료, 모험가, 학자(물리학자, 광물학자, 식물학자, 기상학자, 해부학자, 생물학자), 교사, 연인, 남편, 아버지, 행정가, 외교관, 극장과 박물관 감독, 화가, 디자이너, 행사기획자, 철학자, 정치가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가 시인, 극작가, 소설가, 번역가, 서간문 작가, 비평가라는 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Kurt R. Eissler: Goethe. Eine psychoanalytische Studie 1775-1786. Band 1. Deutscher Taschenbuch Verlag, Munchen 1987, S. 36.)
 
<파우스트> 생성사
파우스트 - 전설과 역사적 인물
 
 <파우스트>는 독일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책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독일문학과 세계문학에서 중요한 작품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1808/1832년 발표한 이 작품은 게르만 전설과 역사적 인물인  요한 파우스투스박사의 실화를 소재로 써진 작품이다. 파우스트는 게르만 전설의 인물이다. 그는 인간으로서 모든 학문과 능력을 갖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만족을 모른다. 그는 우주의 신비를 알고 최상의 향락을 경험하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판다. 그는 악마가 제공하는 마술의 힘을 빌어 무한한 정신적 인식과 육체적 향락을 즐긴다. 그러나 그는 만족하지 못한다. 악마는 그에게 최고의 미녀 헬레나를 보여준다. 황홀해진 파우스트는 헬레나를 안으려는 순간 복수의 여신으로 변한다. 그녀는 파우스트를 지옥으로 끌고 간다. 그와 악마가 맺은 계약기간이 완료되었기 때문이다. 
 만족을 모르는 전설의 파우스트는 끝없는 욕망을 가진 인간의 초상이다. 그는 요한네스 파우스투스라는 역사적 인물에서 구체화된다. 1469/70년 하이델베르크 근처의 마을에서 태어나 1536/39년에 죽은 그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 그 후 그는 비텐베르크 등에 체류하면서 신학, 의학, 철학 등을 연구한다. 세간으로부터 '사기꾼'이라는 멸시를 받으면서 마술의 힘으로 세계여행을 하고, 비행(飛行)을 시도하고 연금술사로서 금을 만들기도 한다. 마술의 힘으로 호머 Homer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을 불러내기도 하고, 늘 개의 모습을 한 악마를 데리고 다니기도 한다. 결국 그는 길에서 살해되어 생을 마감한다.
 
<파우스트 1, 2> - 60년의 글쓰기
 괴테의 <파우스트>가 완성되는데 걸린 시간은 60년 이상이다. 괴테는 1797년 다시 파우스트 작업을 재개하여 1806년 파우스트 1부를 완성한다. <파우스트, 비극 제1부>에서 괴테는 작품 앞부분에 '헌사', '극장에서의 서극'과 '천상에서의 모놀로그', '발프르기스의 밤' 장면을 1806년까지 추가시킨다. 괴테는 이 작품을 <파우스트 비극 제1부 Faust, Eine Tragodie>로 1808년 라이프치히 도서박람회에서 발표한다. 
 <파우스트 비극 1부>를 작업하면서 괴테는 파우스트 2부의 장면과 내용을 구상한다. '천상의 서곡' 장면에서 이미 비극 제2부가 예시된다. 그는 특히 고대 그리스 문학에 심취하여 파우스트의 세계를 더욱 확장시킨다. 1800년경 '헬레나  비극'의 앞 부분을 집필하고 비극 제2부의 윤곽을 세운다. 괴테는 1825년부터 1831년까지 파우스트 2부를 장면별로 집필한다. 1827년 헬레나 비극을 <헬레나. 고전적 낭만적 환상. 파우스트의 막간극>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다. 그 후 괴테는 황제의 궁정에서 일어나는 '황제의 비극'을, 1830년에는 제2막과 '고전적 발프르기스의 밤', 4막과 5막의 '지배지의 비극'을 완성시키면서 죽음을 앞 둔 1831년 비로소 60년 이상의 긴 파우스트 집필을 끝낸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파우스트를 수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마지막 작업을 한 후 "이제 그만"이라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은 진정한 의미의 창작 과정은 작가가 아니라 독자의 손에서 완성된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현대문학의 특징으로 진정한 독서는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 독자의 이해가 중요하다는 수용미학적 관점'과도 연관된다. 
 
<파우스트 1,2> 작품 분석
<파우스트 비극 1부>
 <파우스트 비극 1부>는 틀극과 본극으로 이루어진 구조이다. 틀극에는 헌사, 극장에서의 서극, 천상에서의 서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헌사'에서 괴테는 드라마의 인물로서 이 작품의 창작과정과 자신의 지나간 청춘, 첫사랑과 정열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 '극장에서의 서극'에서는 극장장, 작가, 배우가 등장하여, 각자 성공한 연극에 대한 의견을 이야기한다. 극장장은 흥행에, 작가는 예술적 성공에, 배우는 오락적 인기를 강조한다. 그들이 타협하여 내놓는 '우주적 작품'이 <파우스트>이다. 좁은 무대에서 창조의 과정이 이루어지고 엄청난 속도로 천국에서 세상을 거쳐 지옥까지 다녀오는 광경을 펼칠 것이라고 이 작품을 소개한다. '천상에서의 서극'에서 주님이 천사 세 명과 등장한다. 인간에 대한 그들의 긍정적 시각을 메피스토펠레스가 비웃는다. 그래서 메피스토와 신 사이에 성경의 욥의 내용과 유사한 내기가 체결된다. 메피스토는 신이 신뢰하는 파우스트를 유혹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만일 메피스토가 지면 "착한 인간은 비록 어두운 충동 속에서도/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잘 알고 있더군요"라고 주님 앞에서 고백해야 한다.  

<파우스트 비극 2부>
 <파우스트 2부>는 5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와 다른 점은 2부에서는 개인의 영혼과 감정이 중심으로 이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2부에서 파우스트는 계속 발전하여 사회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행동하는 인물로 변한다. 그는 자신의 정치사회적 이상을 실현시키려 하지만 실패한다. 2막에서 파우스트는 매우 다양한 행동들을 한다. 1막에서 그는 연기자가 되어 자신의 이상을 현실로 실현시켜보려 하지만 실패한다. 3막에서는 파우스트는 시대를 초월한 여행을 한다. 여기서 그는, 게르만 예술가인 파우스트는 고대 그리스 미를 상징하는 헬레나와의 결합한다. 4막에서는 전쟁 영웅이 되어 해안가의 넓은 땅을 영지로 받는다. 5막에서 영지로 받은 땅을 간척하여 자유로운 백성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이상향을 만들려고 하지만, 지나친 욕심과 아집으로 결국 좌절하고 죽음에 이른다. 천상으로 올라간 파우스트는 그레트헨의 형상을 한 여인의 기도로 구원받는다.
 괴테가 파우스트를 통해 추구했던 것은 -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공동체의 건설 - 단순한 이상, 자유, 절대정신, 세계정신과 같은 절대적 이념이나 원칙의 실현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가 함께 추구해야 할 '미래'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미래에 대한 희망과 그를 위한 노력은 의미가 없고 기만적이다. 오히려 '무위(無爲) -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이 유일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희망은 인간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를 통해 인간의 존재의 당위성을 인정받는다. 미래에 무엇이 있을 수 있다는 믿음, 즉 미래에 대한 희망은 '무'에 대한 지속적 부정이다. 이런 관점에서 노력하며 방황하는 인간은 의미를 획득한다. 인간은 한시적 존재이다. 개별적 인간이 창조한 것은 시간이 지나가면 소멸된다. 그러나 전체로서의 인류가 창조해 나가는 역사와 문화는 영원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인간은 노력하는 것이고, 그 노력을 하는 한 방황하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언제나 갈망하며 애쓰는" 파우스트는 구원받는 것이다.

  이상복 명예교수(문예창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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