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커뮤니케이션은 의료 현장에서 의료진과 환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을 말하는데, 이에 대한 연구는 현재 의사와 환자, 간호사와 환자 간의 의사소통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의료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연구가 다양한 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인문학자와 의료인의 공동 연구도 시작되었다.

  인문학자와 의료인의 만남
 2000년 즈음에 독일 뮌스터에서 공부한 독어학자들 몇 명이 모여서 만든 대화분석연구회라는 소규모 연구모임에 의학자와 간호학자들이 찾아왔다. 이때쯤 의료계에서는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에 대하여 인식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2006년에 창립한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의 창립취지문에 잘 드러난다. "사실 좋은 의사가 되려면 전문 의료지식, 친절 및 호의, 리더십 등의 조건들을 갖춰야 하며, 이것은 대부분의 경우 의사에 대한 환자의 불만은 진료의 품질보다는 의사소통상의 어려움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한편, 지난 10여 년간의 급격한 환경의 변화가 의료인들에게 커뮤니케이션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하였다." 대화분석연구회에서 만난 인문학자들과 의료인들은 2005년 "의료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대화분석적 연구"라는 연구 과제를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받아서 3년간 공동 연구를 수행하면서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의 창립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의료인들이 독어학자들의 연구 모임에 찾아온 것은 유럽과 미국에서 이루어진 의료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연구 결과를 우리나라의 의료 현장에 직접 적용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의 방법과 양상은 상황에 매우 종속적인데 우리나라의 문화, 특히 언어문화와 의료 체계는 유럽이나 미국과는 많이 다르다. 그래서 의료인들은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의료커뮤니케이션의 방법 및 연구방법론이 필요했는데, 대화분석을 비롯한 언어 커뮤니케이션의 다양한 양상에 대한 인문학적/언어학적 연구에서 그 가능성을 찾았던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언어학적 이해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다음과 같이 도식화 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공동의 언어적 수단(code)을 이용하여, 화자의 생각(I = Idea)을 청자에게 전달하여 청자가 화자의 생각을 이해하는 과정으로 설명된다. 화자는 자신의 생각을 코드화(encoding)하는데, 먼저 자신의 생각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가를 결정하고(PrE = pragmatic encoding), 그 표현 방식의 실현을 위한 언어적 수단을 화자와 청자가 공유하고 있는 코드에서 선택하며(SE = semantic encoding), 이것을 문법 규칙에 따라 배열하고(SynE = syntactic encoding), 그 결과를 발성할 수 있는 형식으로 변환하여(PE = phonologic encoding) 발성하게 된다. 화자의 발화(utterance)는 음파 형태로 청자의 청각 기관에 도달하며, 청자는 이것을 코드화의 역순으로 해독하여(decoding) 화자의 생각을 이해하게 된다.
 커뮤니케이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커뮤니케이션의 전 과정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즉 커뮤니케이션의 각 단계마다 커뮤니케이션이 실패할 위험이 존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손하게 부탁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시하는 방식으로 말한다면 화용적 코드화(PrE) 단계에서, 청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을 사용한다면 의미적 코드화(SE)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발화가 적절한 문장 구조를 갖지 않으면 통사적 코드화(SynE) 단계에서, 발음이나 억양, 발화의 속도나 크기가 적절하지 않으면 음운적 코드화(PE)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발화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소음과 같은 언어 외적인 요소에 의해서도 의사소통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청자가 화자의 발화를 해독하는 과정에서도 코드화 과정과 유사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커뮤니케이션의 성공을 위해서는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화의 구조
 커뮤니케이션은 화자와 청자가 순서를 바꿔가면서 발화를 함으로써 이루어지는데, 잡담이 아니라 목적을 갖고 하는 대화의 경우에는 대화의 유형에 따라 전형적이고 표준화된 대화의 구조, 즉 대화원형이 있다.
 의료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대화분석적 연구의 결과에 따르며, 예를 들어, 병명통보대화는 시작단계-예비단계-질환확인단계-대처법논의단계-차후조치 설명단계-종료단계로 이루어진다.
 시작단계에서는 인사, 자기소개, 환자 확인, 관계 구축(근황 묻기, 가벼운 담소)이 이루어지는 것이 전형적이며, 예비단계에서는 대화진행 예고, 이전 검사과정 요약, 질환에 대한 환자의 예상이나 환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에 대한 탐구와 같은 행위들이 이루어진다. 질환확인단계에서는 병명을 듣고 놀라지 말라는 사전 경고에 이어 병명 통보가 이루어진 후 질환의 유형, 특성, 정도 등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대처법 논의 단계에서는 치료 목표, 유형, 기간 등에 대한 설명, 예후와 치료 부작용에 대한 설명, 그리고 치료법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며, 차후조치 설명단계에서는 치료기관이나 전문의에 대한 소개, 입원 또는 추가 검사에 대한 안내, 그리고 다음 진료일 약속 잡기와 같은 언어 행위가 이루어진다. 마지막으로 종료 단계는 전체 대화의 요약, 환자 지지 발언, 그리고 마침 인사와 같은 언어행위가 이루어지는 단계이다.
 이와 같은 대화원형의 적절한 실현은 병명통보대화가 성공적으로 수행되기 위한 전제가 된다. 물론 구체적인 의료 상황에서는 이 대화원형이 일부 변형될 수 있지만, 변형의 정도가 클수록 대화가 성공적이지 못할 위험이 높아진다.

  상대방과의 정서적 교감 
 대화 상대방과의 정서적인 교감을 형성하고 유지함으로써 커뮤니케이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경청과 공감 표현이다. 상대방이 말을 하는 동안 눈 맞춤, 고개 끄덕임, 표정 등과 같은 비언어적 수단과 "아", "응", "그래" 등과 같은 청자의 수용신호를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있다는 표시를 해주는 것이 경청인데, 경청하는 방법을 습득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맞장구치기는 적극적으로 공감을 표현하는 효과적인 방법인데, 대화 상황이나 대화 상대방을 고려하여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정도로 맞장구를 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데 많은 기여를 한다. 물론 이 능력을 습득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교육과 훈련을 통해 향상시킬 수 있다. 의료 상황에서 의료진과 환자 및 환자 가족이 상호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진단과 치료의 전 과정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 필요한데, 대화에서의 경청과 공감 표현은 이와 같은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도 기여한다.
 
  의료커뮤니케이션 향상 체크리스트
 커뮤니케이션 모델, 대화원형의 개념, 그리고 정서적 교감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방법들을 바탕으로 앞에서 언급한 "의료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대화분석적 연구" 프로젝트에서는 의료커뮤니케이션을 평가하고 향상시키기 위한 체크리스트를 개발하였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포함된다. 
 ○ 발음은 정확한가?
 ○ 단어의 선택은 적절한가?
 ○ 문법적이고 적절한 구조를 갖는 문장을 사용하는가?
 ○ 정보가치가 있고 관여적인 내용을 말하는가?
 ○ 적절한 발화 형태를 사용하는가?
 ○ 적절한 언어행위를 사용하는가?
 ○ 대화원형에 근거하여 대화를 잘 조직하는가?
 ○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가?
 ○ 상대방에게 이해와 공감 표시를 충분히 하는가?
 ○ 비언어적 소통은 적절하게 하는가?
 2009년부터 의사국가시험의 실기시험에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대한 평가가 도입되었다. 이로써 우리나라의 의료커뮤니케이션이 획기적으로 향상될 수 있는 제도적인 기반은 마련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의 의료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연구는 아직 시작 단계이다. 주로 의사/간호사와 환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이루어지는 연구는 환자와 환자 가족이 의료 상황에서 접하게 되는 병원 내의 다양한 스태프들과의 커뮤니케이션으로 확대되어야 하며, 치과의사, 위생사, 한의사, 상담사 등 다양한 직군들의 커뮤니케이션도 연구의 대상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아울러 의료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평가도구 개발도 더욱 정교화 되어야 하고, 다양한 의료 대화의 유형과 직군에 맞는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도 개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문학자와 의료인들의 공동 연구가 앞으로 더욱 활성화 되어야 할 것이다.
 15년 전쯤에 인문학자와 의료인이 같이 시작한 의료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학제적 연구는 의과대학생을 위한 의료커뮤니케이션 교과목 개발로 이어졌고, 질병체험 내러티브에 대한 연구로 확장되었다. 2009년부터 5년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질병체험 내러티브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한 다학제적 연구: 언어학적 연구 방법론을 기반으로"에서는 당뇨, 위암, 유방암, 우울증, 치매, 호스피스와 같은 질병을 경험한 사람들이나 그 가족을 인터뷰하고 그 체험담을 분석ㆍ정리하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이렇게 구축된 데이터베이스는 한편으로는 후속 연구를 위한 자료로 제공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쉽도록 요약ㆍ정리한 후 웹사이트를 통하여 공개함으로써 같은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질병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와 같은 인문학자와 의료인의 학제적 연구는 인문학의 새로운 연구 분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며, 언어에 대한 인문학적 연구 성과를 실용적인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강창우 교수(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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