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메시지의 출현도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카톡,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수많은 정보가 오가고 있다. 이러한 때 지인들끼리 가상공간에서 구어체로 대화를 나누는 상황이 많아지게 된다. 앞으로 몇 주에 걸쳐 한 번 알아두면 유용하게 쓰일 몇몇 형태들을 알아보기로 한다. /편집자

 

 

 사람마다 머릿속에 사전이 있다. 그 사전에 따라 언어 수행도 달라진다. 사람마다 사전이 모두 다르다면 문제가 될 것이다. 의사소통이 잘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주도 토박이를 만나 의사소통에 지장을 느낀다면 바로 머릿속 사전 때문이다. '어미'만 달라서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제주 방언 '헨 주곡'은 '해서 주고'라는 뜻이다. 표준어 '-어서', '-고'에 해당하는 제주 방언의 형태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사람마다 사전이 다르다는 증거이다. 나아가 사람마다 개인어 때문에 사전이 다를 수 있으니 공용어를 정해야 하는 부담도 생긴 것이다. 그것이 바로 표준어라고 생각하면 되고 그 표준어를 쓰는 개개인의 사전이 머릿속에 있을 텐데 그 또한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래서 편의상 통일하고자 한 것이 ≪표준국어대사전≫이라 생각하면 된다. 어떤 사람은 '무르피 아프다'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무르비 아프다'라고 한다. 이 또한 머릿속 사전이 다르다는 증거이다. '무르피 아프다'라고 한 사람은 '무릎'이 머릿속 사전에 있는 것이며 '무르비 아프다'라고 한 사람은 '무릅'이 머릿속 사전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꼭 '무르파기 아프다'라든가 '무릅꼬배이가 아프다'라고 하는 사람은 머릿속에 '무릎'이나 '무릅' 대신 '무르팍'이나 '무릅꼬배이'가 들어 있다는 뜻이다. '무르팍'도 쓰다가 '무릅'도 쓴다면 그 사람의 머릿속 사전에는 그 둘이 다 들어가 있다는 뜻이다. 큰 사고는 나서 '무릅'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린다면 그 사람의 사전은 축소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람마다 머릿속 사전이 다르니 시험을 치르게 되면 성적도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니 머릿속 사전의 두께를 늘리는 것이 그래도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역에 따라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잎이 파랗다'에서의 '잎이'는 '이비'가 아니라 '이피'로 발화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나뭇잎이', '풀잎이'를, '나문니비', '풀리비'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마다 머릿속의 사전이 다르니 발음도 달라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문니비'라고 발화하는 사람의 머릿속 사전에는 표준어 '나뭇잎'과는 다른 'ㅂ' 받침의 '나뭇입'이 저장되어 있다는 뜻이다. 다음을 보도록 하자.

(1) 가. 해질녁/해질녘
나. 북녁/북녘


 후자가 맞는 표현이다. 우리는 이런 것이 왜 헷갈릴까? 이제는 '해직녀케', '동녀케', '남녀케', '북녀케'라고 하는 젊은 제보자 ― 머릿속 사전에 받침으로 ㅋ을 가진 제보자 ― 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면 맞춤법이 헷갈리게 된다. 이러한 현상과 관련하여 다음도 헷갈리게 된다.

(2) 목젖/목젓

 우리의 현실 발음은 '목저시', '목저슬'이다. 그러면 '나시 (잘 든다)', '나슬'이라고 할 때처럼, 또 '모시 (망치 옆에 있다)', '모슬'이라고 할 때처럼 ― 이는 '낫'과 '못'이라 적는다 ― 당연히 '목젓'으로 써야 한다. 그런데 사전을 찾으면 'ㅈ' 받침의 '목젖'이라 되어 있다. 중부 방언 화자들은 종성의 'ㅈ', 'ㅊ', 'ㅌ' 등을 실제 발화에서 꺼리는 경향이 있다.
 모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피'라고 하다가도 '나문니비', '풀리비'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 이유는 단음절 어간과 다음절 어간의 차이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ㅋ', 'ㄲ'으로 끝나는 단어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ㅋ', 'ㄲ'으로 끝나는 2음절 이상의 명사 '부엌', '해질녘', '안팎'의 경우는 조사가 결합할 때 '부어기', '해질녀기', '안파기'처럼 'ㄱ'으로 발음되지만 단음절 명사 '밖'의 경우는 '바기'처럼 'ㄱ'으로 발음되는 경향이 낮다.
 반면 단음절 명사라 할지라도 명사와 조사가 결합하는 환경에서 'ㅈ', 'ㅊ', 'ㅌ' 등은 웬만하면 'ㅅ'으로 발음된다.

(3) 가. 아가가 엄마 저슬(젓+을) 자꾸 깨문다
(표준어: 젖을 자꾸 깨문다).
나. 꼬시(꼿+이) 예쁘다
(표준어: 꽃이 예쁘다).
다. 바시(밧+이) 크다
(표준어: 밭이 크다).


 그 이유는 종성의 'ㅈ', 'ㅊ'를 꺼리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유표적인 'ㅈ', 'ㅊ'보다 무표적인 'ㅅ'으로 발화하는 것이다. 'ㅅ'은 'ㅈ'과 'ㅉ', 'ㅊ'보다 무표적(unmarked)이다. 그래서 '젖', '꽃'은 무표적인 '젓', '꼿'으로 바뀔 수 있다. 그렇다면 'ㅌ' 받침을 가진 '밭이'는 왜 '바시'로 발음되기도 하는가. (4가)에는 'ㅊ' 받침 명사가, (4나)에는 'ㅌ' 받침 명사가 있다.

(4) 가. 꽃이, 꽃은, 꽃을
나. 밭이, 밭은, 밭을


 그런데 그 발음을 (5)에 제시해 보자.

(5) 가. 꼬치, 꼬츤, 고츨
나. 바치, 바튼, 바틀

 (4가)는 'ㅊ'이 유표적이기에 가장 무표적인 'ㅅ'으로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꼬시, 고슨, 꼬슬'이라는 발화가 생겨났다. 이른바 서울 사투리 유형이다. 문제는 (4나)인데 첫 번째 곡용형 '바치'가 그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이때 '꼬치>꼬시'에서와 같이 'ㅊ'은 다시 무표적인 'ㅅ'으로 바뀔 수 있다. 그래서 '바시, 바튼, 바틀'과 같은 발화가 가능한 것이다. 여기에 또 단일화가 일어나 '바시, 바슨, 바슬'과 같이 발화될 수 있는 것이다.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는 '바치, 바츤, 바츨'과 같이 발음하기도 한다. 바로 'ㅊ'으로 단일화한 것이다. 젊은 층에서는 대중매체의 영향으로 서서히 '바시'라는 형태로 발화하기도 한다.


 참고 : 유표성(Markedness)은 속담 '모난 돌[유표적인 것]이 정 맞는다.'와 관련지어 이해할 수 있다. 둥글게 그저 둥그스름하게 살아가라곤 한다. 모나게 살다 보면 시기와 질투 등 어려운 일을 겪는다는 말인 듯하다. 그렇다고 유표적이라는 말이 무조건 안 좋은 뜻은 아니다. 특정 집단은 비리가 많은 사람들만 모여 있는데 혼자 비리가 없다면 그때는 비리가 없는 사람이 유표적인 사람이다. 운동장에 모인 학생 50명 중 세 사람만이 모자를 쓰고 있다면 그 세 사람 또한 유표적이다. 자기 학과 또는 자기 집에서 자신은 어떤 점에서 유표적인지 생각해 보자. '유표적=특징적', '무표적=일반적'이라는 관계가 성립할 수 있다.

임석규 교수(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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