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와 태풍이 지나가고 가을의 문턱이 성큼 다가왔다. 무상(無常)의 사시 순환임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사회현상도 무상으로 직시하면, 그 다변적 가치를 인정해야 하지만 우리 내면의 보편적 가치는 변하지 않아야 할 것들이 있다. "유도운동이 주는 가르침"을 통하여 더불어 함께하고 자신을 반조하는 원광인이 되기를 바란다.

 유도운동은 부드러워야 한다. "유능제강(柔能制剛)"은 '부드러움이 강함을 능히 제압 한다'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면 왜 유도운동은 부드러워야 하는가? 연어의 회귀본능에서 모험과 도전의 여정에는 험난한 고난이 있다. 때로는 수 미터나 되는 물줄기를 역(逆)으로 타고 오른다. 이것은 아마도 부드러움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본다. 유도운동 연마 중에 '몸'에 힘을 빼라! 지도자들은 수 없이 강조한다. '메치기'기술을 시도하려면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그러나 그때 어깨에 힘이 빠지고 부드러워지면 '강(剛)'한 상대를 메치게 된다. 이처럼 부드러움은 운동 중 강·약, 장·단, 고·저, 완·급의 상반된 움직임 창출을 '자유자재' 한다.
 유도운동은 과도한 운동을 조절할 수 있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노자의 "궁력거중 불능위용" 즉 '최대의 힘으로 그 무게를 들어 올렸기에 아무런 쓰임이 없다'란 구절을 자주 인용한다. 예를 들어 최고 기록을 경신한 어느 역도선수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역기를 내려놓는 일 밖에 할 수 없다. 유도운동 중 심박수(운동자각도 14 수준 이상)가 상승하면 운동강도를 낮출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그 방법으로는 '자세와 위치'를 변화시켜 공·수의 힘을 선용하거나 '메치기와 굳히기'기술을 교차시키면 된다. 우리 몸에 알맞는 운동강도는 자신의 최대 심박수의 60~80% 수준이다. 이 운동강도는 몸과 마음을 좋게 한다. 그렇지만 숨이 턱밑까지 차는 과도한 운동은 피로를 유발시키고, 몸과 마음을 손상시킨다.
 유도운동은 발바닥이 매트에 스치듯 하며, 중심을 낮추어야 한다. 노자의 "기자불립(企者不立)" 즉 '발뒤꿈치를 들어 올린 사람은 결코 발뒤꿈치를 들어 올린 상태를 지속할 수 없다.' 유도는 '익히기'를 하든 '겨루기'를 하든 기술사용 시에만 발뒤꿈치를 들어 올리고 중심을 낮추어 '걸기'를 하여 메친다. 만일 발이 매트로부터 떠 있거나 발뒤꿈치가 세워져 있으면 기저 면 이 좁아지고, 오래 못 버틴다. 그 상태는 상대방에게 중심을 흩트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유도운동은 '중심과 힘의 효율성'의 문제가 중핵이 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 유도운동을 한다는 것은 우리 몸의 소관인데, 근육이 자라나고, 체력이 증진되고, 몸이 건강해진다. 또 유도운동을 한다는 것은 마음의 소관인데, 뇌가 부드러워지고, 사유가 깊어지고, 덕성이 함양된다. <운동화 신은 뇌>를 쓴 존 레이티와 에릭 헤이거만은 "운동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안정감을 높인다"고 하였다.
 지금 우리사회의 일부 계층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 큰 부(富)를 이룬 사람, 많이 배운 사람들이 어깨에 힘(剛)을 주고 있다. 힘 빼는 "마음공부"와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가졌으면 좋겠다. 또 자신의 최대 능력에 매몰되어 위 만 바라보는 사람! 한 단계 낮추어 능력 발휘를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남에게 군림하고 싶어 노심초사하는 사람, 뭔가 남보다 잘난 체하고 싶은 사람, 남보다 더 잘 보이고 싶어서 발뒤꿈치를 들어 올리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결코 발뒤꿈치를 들어 올린 상태로 오래 버틸 수 없다. 지금 바로 발뒤꿈치를 내렸으면 하는 바램이다.
 원광인! 유도운동이 주는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행동으로 옮기기를 기대한다.
 
  이채산 교수(스포츠과학부)
저작권자 © 원광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