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어. 전혀 모르겠어" 한 남자가 중얼거린다. 이 남자는 나무꾼이다. 비가 내리던 어느 날, 반쯤 무너진 나생문(羅生門) 아래에서 나무꾼은 승려와 누군가의 하인에게 자신이 겪었던 일을 말해준다.
어느 때와 같이 나무를 베어 팔려 했던 그는 길 가장자리에서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한 남자가 죽어있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 관아에 사건을 알린 그는 "자신이 발견했을 때는 이미 남자는 죽어있었다"고 진술한다.
죽은 남자는 사무라이였다. 악명 높은 도적 타죠마루가 그의 소지품을 가지고 있었고, 그 역시 체포되어 관아로 끌려오게 된다. 호탕하게 웃던 그는 자신이 사무라이를 죽였고, 그의 아내를 안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털어놓는다. 그를 속여 나무에 묶어놨고, 그의 아내를 겁탈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사무라이를 죽일 생각이 없었으며, 오히려 그의 아내가 싸움을 부추겼고 정정당당히, 그리고 치열하게 싸워 승리했다고 말한다. 그는 싸움이 끝나고 여자를 찾았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사무라이의 아내는 절에 숨어있었다. 관아로 끌려온 그녀는 서럽게 울었다. 그녀는 자신의 단검을 들고 도적에게 맞섰으나 역부족이었다. 도적은 달아났다. 남편은 살아있었다. 다만 싸늘하게 그녀를 노려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아내는 남편에게 그렇게 보지 말아 달라고 애원한다. 남편은 그저 노려볼 뿐이었다. 결국 그녀는 실신했고, 눈을 떠보니 남편의 가슴에는 칼이 박혀 있었다. 이후 그녀는 수차례 자살을 시도하나 성공하지 못했다고 진술한다.
그녀의 남편, 사무라이 또한 무녀의 몸을 빌어 증언한다. 도적은 아내를 유혹했으며, 아내는 둘 중 이긴 쪽을 따라가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도적은 그녀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풀어줬고, 아내는 도망갔다. 그는 아내의 단검으로 자결했다. 그리고 누군가 자신의 몸에 꽂힌 단검을 뽑아가는 것을 느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승려는 "인간이 인간을 믿지 못하는 것이 지옥"이라고 말하며 자신만은 인간에 대한 믿음을 내치지 않겠다고 말한다. 하인은 사람 사는 게 이런 거라고 답한다. 그때 한 여자가 자신의 아이를 그곳에 버리고 가고, 하인은 아기를 감싼 포대기만 챙긴다. 나무꾼은 그를 이기적이라 비난하나, 하인은 정말 이기적인 것은 너라고 일갈하며 나무꾼이 여자의 단검을 챙긴 것을 비난하며 자리를 떠난다.
4명의 용의자는 서로 '진실'을 말했다. 누군가는 떨며 고백했고, 누군가는 호쾌하게 자백했다. 누군가는 오열 속에 진실을 섞었고, 누군가는 타인의 입을 빌려 말했다. 그러나 이들 중 객관적인 진실을 이야기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발견자였던 나무꾼은 사실 목격자였다. 그는 처음부터 모든 상황을 보고 있었다. 도적은 여자를 유혹했고, 여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결투 끝에 승리한 자가 여자를 갖는다라고 생각한 도적은 굳이 목숨을 걸고 싶지 않았고, 남편 역시 정절을 지키지 못한 여자가 자결하지 않았으며, 나는 이런 여자는 필요 없다며 부인을 내친다. 여자는 너희들은 남자도 아니라고 비난하며 결국 두 남자는 싸우게 된다. 도적의 증언처럼 정정당당하고 치열한 싸움은 아니었다. 모래를 뿌리거나 허공에 칼을 휘두르며 우스꽝스럽게 도망 다니고, 굴러댄다. 두 남자의 결투는 결국 도적이 사무라이의 가슴을 찌르며 끝나게 된다. 사무라이는 담담하게 자결한 것이 아니라, "죽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며 비참히 죽는다. 여자는 도망가고, 남겨진 도적은 사무라이의 물건만을 챙기게 된다. 그리고 숨어있던 나무꾼 역시 여자의 단검을 챙겨 자리를 뜨게 된다.
진실을 알게 된 승려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순간 나무꾼은 울고 있는 아기 쪽으로 다가가고, 승려는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고 의심한다. 이에 나무꾼은 집에 아이가 여섯이다. 입이 하나 정도 늘어도 똑같다며 자신이 키우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승려는 나무꾼에 대한 불신을 부끄러워한다. 그리고 승려는 "당신 덕분에 인간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늘이 뚫린 것처럼 쏟아지던 비는 구름 뒤에서 나타나는 햇살과 함께 잦아든다. 나무꾼은 아이를 들고 나생문 밖으로 나간다.
라쇼몽은 '이기주의'를 다룬 영화다. 영화가 담고 있는 현실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당장 오늘이라도 내게 벌어지고 있는, 혹은 내가 만들고 있는 상황일 수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을 말할 것인가? 거짓말한 타인을 불신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 사는 세상이 이런 것이라며 조소 섞인 웃음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정답은 어디에도 없다. 각자의 사람마다 자기만의 '진실'이 있으니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자기만의 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진실을 어떻게 전달할지 선택할 수 있다. 선택에 따라서, 우리는 하인이 될 수도, 승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조현범 객원기자(산림조경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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