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이다. 10월에는 기념일이 많으며 한글날도 그런 날 중 하나이다. 몇 년 전까지 공휴일에서 제외되는 바람에 사람들의 기억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던 한글날은 가까스로 공휴일로 복권되면서 10월을 즐겁게 보낼 수 있게 하는 날이 되었다.

 한글날 즈음이 되면 익숙한 내용들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보도된다. '한글 파괴, 우리말 훼손' 등등의 말들이 재탕 삼탕 반복되고, 비슷비슷한 내용의 행사들이 진행된다. 세상은 엄청난 속도로 바뀌지만 한글날 관련 내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국민들은 한글에 대해 다소 식상한 듯한 느낌을 가지고 있고, 새롭게 뭔가를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사실은 2000년대 들어서 한글(또는 훈민정음)과 관련된 흥미로운 연구 결과나 사건들이 여럿 있었으며, 올해도 이슈가 될 만한 일들이 없지 않았다. 이러한 최신 뉴스를 많은 사람들이 공유한다면 우리 말, 우리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자연스럽게 따라오지 않을까 한다. 뭐니 뭐니 해도 잘 알고 잘 이해해야 관심과 사랑이 싹 트는 법이다.
 앞서 올해 한글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이슈가 있었다고 했다. 두 가지 정도의 사건을 들 수 있겠는데, 하나는 훈민정음의 창제 과정을 그린 영화가 개봉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훈민정음 상주본과 관련된 대법원의 판결이 이루어진 것이다. 공교롭게도 둘 다 7월에 있었으며 모두 '훈민정음'과 관련된다. 그렇지만 영화는 '글자'로서의 훈민정음에 더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고, 대법원 판결은 '문헌'으로서의 훈민정음에 대한 것이다.
 영화 이야기부터 해 보자. 아마 '나랏말싸미'라는 말을 들으면 대다수 한국인들은 『훈민정음』의 맨 앞에 나오는 세종의 서문을 떠올릴 것이다. '나랏말싸미 중국에 달아'로 시작되는 세종의 어제 서문은 한국에서 학창 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 봤음직한 내용이다. 이러한 익숙함에 호소하려 했는지 몰라도 '훈민정음 창제'라는 주제를 담은 영화의 제목이 바로 '나랏말싸미'였다. 올해 7월 하순에 개봉되었으니 아직 '신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국어 연구를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는 '한글 창제'라는 익숙한 주제로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흥미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주연 배우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 '송강호' 아니던가? 그가 나온 영화는 말 그대로 '대박'이 나는, 그래서 흥행의 보증수표라고 일컬어지는 대한민국의 대표 배우가 '한글 창제'를 다루는 영화에 나온다니. 이번 영화는 얼마나 많은 관객을 모을 수 있을까, 어찌 보면 진부할 수 있는 주제를 어떻게 영화화하여 사람들에게 재미를 선사할까 등등 이런저런 생각을 했었다. 그러면서 영화는 영화이니만큼 역사적 사실을 변형한 부분들도 있을 텐데 무엇을 얼마나 바꾸었을지도 궁금해졌다.
 당연히 개봉이 되면 상영관을 찾아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개봉 전 TV를 통해 공개된 예고편을 보고 마음이 싹 달라졌다. 세종을 호통치는 신미 대사라니. 한글의 창제자로 스님인 신미 대사가 부각되는 영화임이 분명했다. 아, 불편한 내용이 많이 나올 텐데 봐야 하나? 망설임이 없지 않았지만 속는 셈 치고 봤다. '역시나'였다. 영화에 대한 감상이야 개인의 취향이니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지만, 개인적으로는 보나 안 보나 실망하기는 마찬가지인 영화라고 느꼈다. 주위의 다른 국어 연구자들도 마찬가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다만 필자처럼 실제로 본 사람이 아주 적었을 뿐.
 한글 창제자를 뒤바꾸어 놓았으니 그 보상으로 재미라도 있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재미도 관객들에게 선사하지 못한 것 같다. 130억이나 들였고 350만이 관람해야 손익 분기점을 넘긴다는데 실제 관객 수는 100만이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네이버에 나오는 정보라서 정확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자료를 찾아봐야 알겠지만 주연 배우인 송강호 개인에게도 출연했던 영화 중 가장 흥행에 실패한 영화가 아닐까 한다.
 왜 그럴까? 국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의 평가 중에는 '한글 창제자=세종'이라는 공식을 부인한 점을 거론하는 사람들이 많다. 역사적 사실을 심하게 왜곡했다는 것이다. 영화를 직접 본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이 영화의 사실성 자체가 아주 낮은 것은 아니다. 영화 도중에는 한글 창제에 참고했으리라 추정되는 파스파 문자가 매우 정밀하게 나오며, 어제 서문의 언해문이 108자인 사실에 대한 언급도 나온다. 양적으로는 사실성을 뒷받침하는 장치가 영화 곳곳에 숨겨져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신미 대사'라는 한글 창제자의 등장으로 인해 빛을 잃고 만다.
 아마 이런 설정이 부담이 될지 모른다는 사실은 제작자들도 인식했던 듯하다. 영화의 첫 장면을 '한글의 다양한 창제설 중 하나를 영화화했다'는 취지의 자막으로 시작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다. 한글에 대한 다양한 창제설들은 각각이 대등한 자격을 가진 것이 아니다. 1940년 『훈민정음』이라는 문헌이 발견되기 전의 갖가지 억측, 또는 신빙성 낮은 간략한 기록에 근거한 추측들을 '세종 친제설'과 동일한 반열에 놓을 수는 없다.
 지금까지 숱한 논의를 통해 세종이 한글 창제에 가장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것은 명백하게 밝혀졌다. 신뢰할 만한 대부분의 사료에서 한글은 세종이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한글 창제보다 그 당시 실생활에 더 필요한 사업들의 책임자는 세종 대신 실무를 담당한 신하들의 이름을 기록했다. 굳이 '한글 창제'에 대해 공을 돌리기 위해 세종이 직접 만들었다고 할 필요가 없었다. 더욱이 세종은 당대 최고 학자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실제로는 더 뛰어난 언어학적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오히려 한글 창제를 주도했다고 오해하는 집현전 학자들은 반대 상소문을 통해 한글 창제에 반대하고 있었다. 여기에 '신미 대사'가 한글 창제자로서 새로 자리에 낄 여지는 전혀 없다.
 누군가는 설마 세종이 전부 혼자 했겠느냐는 말을 하면서 세종 친제설을 부인한다. 그런데 이 문제는 융통성 있게 접근해야 한다. 100%를 모두 혼자 해야 친제인가? 비유를 해 보자. 어떤 뛰어난 요리사가 세상에 없던 새로운 요리를 선보였다고 할 때, 요리의 재료를 사거나 다듬는 정도의 보조적인 역할은 주위 사람들이 해 줄 수도 있다. 이래도 혼자서 전부 하지 않았으니 그 요리사가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없는 것인가? 보조는 어디까지나 보조에 불과하다. 한글 창제라는 사업에서 제1저자요, 총책임자는 세종이었다. 다만 보조를 누가 얼마나 했는가가 명확하지 않을 뿐이다. 이것을 가지고 한글 창제자를 세종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 것은 단역 배우를 주연 배우로 둔갑시키는 것만큼이나 비합리적인 일이다.
 이제 다음 이야기를 할 차례이다. '나랏말싸미'라는 영화가 개봉되기 며칠 전 대법원에서는 '훈민정음 상주본'이라고 알려진 문헌과 관련하여 중요한 판결을 내렸다. 이 책은 2008년에 그 존재가 세상에 공개된 것으로 이전까지는 국보 70호로 지정된 '훈민정음 안동본'이 유일한 책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다가 동일한 책이 한 권 더 나타난 것이다.
 상주본의 발견은 국어학자들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안동본은 첫 두 장이 떨어져 나갔으며 1940년 무렵 이것을 기워 넣었기 때문에 완전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워 넣은 내용에는 적지 않은 오류가 있다. 그래서 상주본을 통해 원래의 앞 두 장 내용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온전한 형태의 서책을 가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공개된 상주본은 책 앞쪽의 3장이 떨어져 나가 있으며 뒤쪽도 일부가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남아 있는 부분의 상태는 안동본보다 양호하지만 낙장의 수가 많아서 국어학자들에게 아쉬움을 주었다.
 옛 책의 경우 앞장이나 뒷장에 소장하는 사람이나 집안의 인장이 찍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앞이나 뒤가 훼손된 책은 원 소장자가 누구인지를 숨기고자 하는 것이 많으며 소유권 분쟁이 일어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니나 다를까, 상주본 역시 소유권 분쟁을 겪게 된다. 고서점 주인과 현 소유자 사이의 분쟁은 민사 소송과 형사 소송에서 각기 다른 판결이 나오는 혼란을 겪었다. 또한 민사 소송에서 소유권을 인정받은 고서점 주인이 상주본을 국가에 기부한 후 세상을 떠나면서 국가와 현 소유자 사이에 또 다른 소유권 논란이 지속되는 상황이다. 특히 현재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자신만 아는 장소에 상주본을 감추어 둔 채 국가로의 귀속을 거부해 왔다. 그 사이 화재로 인해 상주본의 일부가 훼손된 것이 사진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국가에서는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하여 상주본의 강제 집행에 들어가고자 했고, 현 소유자는 그것을 막아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그 소송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지난 7월에 있었던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은 '원고 패소'. 다시 말해 상주본의 소유권은 국가에 있으므로 강제 집행이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장자는 반환을 거부하며 버티기를 지속하고 있다.
 그런데 소유권과 관련된 문제는 안동본이라고 해서 비껴가지는 않았다. 직접적인 소유권 다툼은 없었지만 원 소장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1940년 간송 전형필 선생이 훈민정음을 사들인 후 오랜 기간 동안 이 책은 안동 이 씨 집안 소유였으며 그 집안의 후손이 서울에 유학 중 이 책의 존재를 그의 스승에게 말함으로써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원 소유자가 안동 이 씨 집안이 아니고 그 집안 후손의 처가인 안동의 광산 김씨 집안이며, 사위인 안동 이 씨가 무단으로 반출하여 세상에 나타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간간이 나오기는 했다.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 매우 구체적인 증거와 함께 안동본의 반출 경위를 밝힌 논문이 나옴으로써 이것이 진실임이 밝혀졌다.
 게다가 안동본의 앞 두 장이 떨어져 나가게 된 경위도 어느 정도 드러났다. 1940년에 책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에는 연산군 때 있었던 한글 탄압을 피하기 위해 앞 두 장을 없애고 몰래 감추어 간직했다고 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한글 탄압을 피하는데 왜 한문으로 된 안동본의 첫 두 장을 없애는가? 어차피 숨길 거라면 없앨 필요가 없지 않은가? 더욱이 첫 두 장만 없앤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지금으로서는 이해 안 되는 부분이 많으나 당시에는 최초의 해례본을 발견한 기쁨 때문이었는지 의심을 별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논문을 통해 안동본 앞 장에 광산 김씨 집안의 소유임을 말해 주는 도장이 찍혀 있었으며, 이것을 숨기기 위해 두 장을 없앴을 가능성이 매우 높음이 밝혀졌다. 이처럼 안동본이든 상주본이든 소장 과정이나 발견 경위에 극적인 요소들이 담겨 있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자. 개인적으로 온 국민이 관심을 가져 마땅한 '한글'에 대한 주제를 영화로 만드는 것은 대찬성이다. 영화로 만드니 흥미를 위해 상상력도 동원되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아직도 새롭게 밝혀지는 부분들이 적지 않고, 잘 모르는 부분들도 많으니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는 충분하다. 다만 그 상상력은 필요한 곳에서 빛을 발해야 한다. 다음에 제작될지 모르는 영화는 '미완성'에 있는 우리의 지식을 활용해 재미와 교훈을 주는 것이었으면 한다. 적어도 세종 친제설을 부인하는 상상력은 이제 사절이다.
 
  이진호 교수(서울대 국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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