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는 "가을은 여름이 타고 남은 것"이라고 했다. 타고 남은 가을은 어떤 모습일까.
 "잊지 않고 고운 모습 간직하고 있습니다. 가장 힘들었을 때 그래도 살 만한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작은 위로가 되었던 분, (중략) 언제인가 뵈올 날 기다리며... 고맙습니다. -시인 000 올림."
 언젠가 이런 문자를 받았다. 강산이 몇 번은 바뀔 만큼 나보다 세상을 더 오래 사신 분이다. 그분은 다른 곳으로 떠나며 내게 마음의 인사를 보내왔다. 돌이켜보니 그때 남들한테 바보 같다는 소리 들으며 무던히도 마음고생을 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생전에 늘 남에게 덕을 보려하지 말고 '손해 보는 삶'을 살라고 강조하셨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순간이 수두룩했다. 겸손이 어리숙함으로, 배려와 관심이 실속을 위한 다른 이름으로 변질되는 모습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진심이 벽에 부딪혀 공허한 울림을 낳는 순간들 속에는 소통의 부재, 공감 없는 관계의 연속, 그리고 커다란 적막이 가로놓여 있었다.
 그러나 삶이 내맘 같지 않다고 절망해도 그 속에서도 생을 위한 꽃은 피고 흔적이 남는다. 시간은 무심한 듯 흐르지만 그 속에 기억되고 간직되는 인연이 있다. 그래서 고달프지만 훈훈한 생 아닌가. 인생의 성공은 부러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워하는 주체가 되고 그리움의 객체가 되는 것이다. 사람은 그리움을 잃었을 때 가장 큰 위기감을 느껴야 한다. 빈틈없는 완벽을 위해, 만족과 성공을 위해 질주하는 경쟁시대. 그래서인지 빈 구석, 좀 덜 찬 데, 좀 모자란 듯한 그런 구석이, 그런 사람이 더욱 그립고 아쉬운 요즘이다.
 최근 부각되고 있는 을의 문제에 대한 자각과 관련해 인간 존엄성과 삶의 격, 자존감 등 나를 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그 어느 때보다도 분주하다. '나'라는 존재가 그 어느 때보다도 화두가 되어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내가 귀한 만큼 남도 귀한 존재라는 자명한 사실을 우린 잊곤 한다. 나를 위한 나다운 삶, 자기만의 작은 만족을 추구하는 삶을 위해서는 더불어 삶, 즉 나를 돌아보고 남을 인정하는 마음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감성적 움직임이 내면의 성찰로 이어져야 한다.
 외롭고 고달픈 이 계절, 곳곳에 스산한 기운이 감돌지만 다시 새롭게 숨고르기를 한다. 네가 있고 그대가 있고 당신이 계시기에. "몸이 잘 산다는 건 편안한 것에 길들여지는 것이고 마음이 잘 산다는 건 편안한 것으로부터 놓여나 새로워지는 것(박완서 「시인의 꿈」)"이라고 했다. 내 마음은 잘 살고 있는가. 잘 살기 위해 애쓰고 있는가.

 풍요로움은 단지 물질적인 양의 증가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음의 자세이자 태도의 양식인 것이다.(E.F.슈마허 「자발적 가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무한 질주, 경쟁을 강요받는 세상이지만 세상의 기준에 몸을 짜 맞추려 하지 말고 그 기준 위에 걸터앉아 유유히 휘파람도 불고 가끔 하늘도 바라보자. 숨 가쁘고 팍팍한 생이지만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처럼 따스한 위로로 채워지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그리하여 누군가의 인생길에 작은 쉼표 하나 찍을 수 있기를! 오늘 나에게, 그대에게 부드러운 마음의 눈인사를 해보자. 

신현선 교수(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HK+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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