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란에는 연속기획 <우리 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란 제목으로 의사소통교육센터의 <세계고전강좌>와 공개 강좌 <글로벌인문학>, <지역학(익산학)> 강연 원고를 번갈아 싣는다. 이 번호에는 지난 2일 진행된 <글로벌인문학> 셰익스피어에 관한 열네 가지 의문 중 열두 번째 글을 발췌하여 싣는다.

/편집자

 
 
 
 1590년대 초에 극계에 진출한 셰익스피어는 약 10년간 사극과 희극 작품을 발표하다가 1600년(36세)에 비극시대로 진입했다. 그의 낙천적 인생관이 비관적 인생관으로 바뀌었다. 1601년, 부친 존이 사망하고, 2월 8일 반란사건을 주도한 엘리자베스 여왕의 충신 에섹스 백작이 체포되어 2월 25일 처형되었다. 셰익스피어의 후원자 사우잠프톤 경은 그와 연루되어 종신형을 받았다. 1603년 3월 24일, 엘리자베스 여왕이 서거했다. 튜더 왕조가 막을 내리고 제임스 1세의 스튜어드 왕조가 출범했다. 셰익스피어 주변의 이 같은 일들이 전환의 동기라고 보는 학자도 있고, 그 당시 관객의 취향 변화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으며, 셰익스피어 예술관의 변화가 전환의 원인이라고 보는 학자도 있다. <햄릿>(1600), <오셀로>(1604), <리어왕>(1605), <맥베스>((1606) 등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이 연달아 이 시기에 발표되었다.
 <베니스의 상인>은 사랑과 자비심 넘치는 창의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는 바사니오와 어릴 적부터 친구였다. 안토니오는 부유하고, 바사니오는 가난했다. 바사니오는 사랑을 위해 돈이 필요했다. 그의 연인은 벨몬트의 미녀이며 상속녀(相續女) 포셔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포셔의 결혼에 기묘한 조건을 내걸었다. 금, 은, 동 상자 고르기로 포셔 결혼 상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포셔는 수 많은 구혼자 가운데서 바사니오를 좋아했다. 그가 상자를 제대로 고르기를 희망하며 시녀 네리사와 해결책을 강구했다.
 바사니오는 유태인 대금업자 샤일록을 만나 3천 다카트를 3개월간 거상(巨商)인 친구 안토니오를 보증인으로 세워 대출하려고 했다. 유태인 샤일록과 기독교도인 백인 안토니오는 평소 원수지간이다. 샤일록은 기일 내 변제하지 않으면 안토니오의 살점 1 파운드를 잘라낸다는 조건으로 돈을 빌려주었다. 수많은 상선을 보유한 안토니오는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다. 현재 그의 상선은 모두 바다에 떠 있다. 1막은 이런 서두로 시작된다.
 2막은 구혼자들의 상자 고르기다. 구혼자들은 상자 고르기에 실패하고, 바사니오는 성공했다. 셰익스피어 연극은 '이중 플롯드(double plots)'이 특색이다. 극의 주요 흐름과 그것을 떠받쳐주는 부차적인 줄거리다. 바사니오와 포셔의 사랑을 샤일록의 딸 제시카와 로렌조의 사랑이 떠받치고 있다. 여기에 안토니오의 친구 그레시아노와 포셔의 시녀 네리사의 사랑이 섞여 있다.
 3막이다. 세 쌍의 커플이 탄생하는 환희의 순간에 대사건이 발생했다. 안토니오의 상선들 이 모두 암초에 걸리는 불행한 일이 생겼다. 샤일록은 안토니오의 불운을 기뻐하며 채무에 대한 법적인 대가를 요구하고 나섰다. 포셔는 바사니오에게 행운의 반지를 선사하면서 바사니오와 결혼하고, 그를 베니스로 보내 샤일록에게 돈을 갚으려고 했지만 샤일록은 살 1 파운드를 요구한다. 안토니오는 수감되고 재판을 받게 되었다. 포셔는 젊은 변호사로 변장하고, 네리사는 서기로 변신해서 재판에 관여했다.
 4막이다. 포셔와 네리사는 법정에 도착했다. 바사니오가 빚을 세배로 갚는다 해도 샤알록은 여전히 안토니오의 살점을 끈질기게 요구했다. 포셔는 법 위에 자비심이 있다고 호소한다. 샤일록은 칼을 갈면서 여전히 1파운드의 살점을 요구했다. 할 수 없이 포셔는 샤일록에게 살점을 허가했다. 그러나 조건부였다. 가져가되 피 한 방울 흘려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피를 흘리면, 베니스 법에 의하여 그의 재산은 전부 몰수된다고 말했다. 결국, 샤일록은 패소하고, 재산은 국가에 몰수당했다. 그 재산은 안토니오에게 돌아갔다. 법정은 샤일록의 목숨만은 살려준다고 관용을 베풀었다. 안토니오는 그가 받은 재산을 로렌조에게 주었다.
 5막이다. 로렌조와 제시카가 벨몬트의 밤을 즐기고 있는 동안, 포셔와 네리사는 바사니오 보다 한 발 앞서서 집에 돌아왔다. 포셔는 바사니오가 결혼반지를 끼고 있지 않는 것을 따지기 시작했다. 그 반지는 포셔가 변호사로 변장하고 베니스에 갔을 때, 변호 사례금으로 바사니오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포셔는 반지를 남에게 준 것을 힐책하다가 호주머니에서 그 반지를 꺼내면서 자초지종을 모두 밝혔다. 이들이 서로가 서취한 행복한 결말을 축하하고 있는 동안 안토니오의 상선이 무사히 베니스 항구에 도착했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진다.
 셰익스피어 작품에는 법정 장면이 많다. 전체 37개 작품 속에서 3분의 1이 넘는 작품에 법정장면이 나온다. 그 가운데서도 스릴이 넘치는 <베니스의 상인>이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다. 악인이 처단되는 장면을 당시 관객은 즐겼다. 실제로 죄수들은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리에서 처형되었다. 잔혹한 곰 싸움은 최고의 구경거리였다. 샤일록의 하인인 어릿광대 란슬로트 고보와 그의 아버지 고보 노인의 희극장면은 즐겁다. 인육재 판에서의 극적인 반전은 통쾌하다. 수전노 유태인을 골탕 먹이는 일도 시원한 일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물욕을 경멸하고, 사랑의 나눔을 강조하는 올바른 삶의 정신을 찬양하는 주제였다.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을 통해 인생에는 사랑과 미움이 있고, 꿈과 현실이 있으며, 행복과 불행이 있는 법이지만, 중요한 것은 법보다 자비심이란 것을 거듭 강조하고 깨닫게 해주는 성과를 올렸다.
 <베니스의 상인>은 셰익스피어 작품 중 종교적인 내용이 가장 강한 작품으로 알려려지고 있다. 리치몬드 노블(Richmond Noble)은 그의 저서 "셰익스피어의 성서 지식"에서 "샤일록의 묘사에서 셰익스피어는 성서를 면밀하게 연구한 흔적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고 말했다. 작중 인물 포셔도 성서에 대해서 많은 언급을 하고 있다. 샤일록은 재판에서 법과 정의의 실현을 완강하게 주장했다. 포셔는 자기희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자비심을 찬양했다. 포셔와 샤일록의 대사를 보자.
 포셔 : 자비는 하늘에서 내려와 땅을 적시는 은혜로운 비와도 같다. 왕에게 있어서 그것은 왕관 이상의 것이다. 지상의 권력이 하느님의 힘에 접근하는 경우는 자비심이 정의를 완화시키는 경우가 된다. 그러기 때문에 샤일록, 그대가 정의를 요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샤일록, 생각해 봐라, 정의만을 추구하면, 인간은 단 한 사람도 구제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자비를 바라며 애원하는 것이다.
 샤일록 : 소인은 법을 원합니다.
 자비의 찬가는 '격언의 서'(The Proverbs of Salomon) 20장 28절에 "자비와 진실은 왕을 지키고, 왕의 옥좌는 자비심으로 유지된다"고 적혀 있다. '시편' 103, 136, 143, 2에도, '마태복음' 6장에도 자비심이 반영되어 있다. 샤일록은 이런 자비심에 대항해서 법과 재판의 실천을 (4막 1장) 요구했다. 샤일록의 입장은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죽이는 일이었다. 포셔는 개인의 희생을 통해 자비의 실천을 호소했다. 결국 샤일록은 안토니오의 살점 1파운드를 도려내도 좋다는 법정의 판결을 얻고 기뻐 날뛴다. 그러나, 역전되었다. 살점을 도려내되 피 한 방울 흘리면 베니스 국법에 따라 샤일록의 재산은 국고에 몰수되고 그의 목숨은 베니스 공작의 재량에 위임된다는 최종 판결이었다. 이 때문에 사태는 급변했다.
 유태인과 기독교도의 싸움에서 유태인은 패배했다. 서기 73년, 유태 민족은 나라를 잃었다. 서기 135년, 이들은 팔레스티나 고향땅에서 추방되어 유랑했다. 새로 국가를 세운 해가 2차 대전 후 1948년이었다. 그 동안 유태인들은 세계 각지를 떠돌면서 돈을 벌고 결속을 다졌다. 그들은 주로 대금업에 종사했다. 무자비한 유태인의 행태에 많은 사람들은 항상 반감을 느끼고 분노했다. 항구 도시 베니스에 정착한 샹일록도 잔혹한 대금업자였다.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에서 지상의 법 정의보다는 천상의 신이 베푸는 자비를 세상의 원리로 삼고 찬양하며 주장했다.
 
  이태주 교수(영문학자, 예술공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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