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메시지의 출현도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카톡,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수많은 정보가 오가고 있다. 이러한 때 지인들끼리 가상공간에서 구어체로 대화를 나누는 상황이 많아지게 된다. 앞으로 몇 주에 걸쳐 한 번 알아두면 유용하게 쓰일 몇몇 형태들을 알아보기로 한다.
/편집자
 
 고등학생의 국어 노트를 본 적이 있다. 아직도 89년 이전의 맞춤법으로 가르치는 분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저명한 학자의 저서에서도 그런 점은 확인된다. 맞춤법이야 학문이라고 하기는 어려우니 이해는 된다. 고대국어 연구에 심취하다 보면 맞춤법이 무슨 대수겠는가?
 맞춤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독파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글쓴이조차도 대학에서 정서법 과목을 개설하고 나서야 맞춤법 규정의 허와 실을 찾아 샅샅이 읽어 보려고 애쓰고 있다. 허와 실을 찾는 노력 없이 전 조항을 기계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따분한 감이 없지 않다.
 그러다 보니 국어학 전공자라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하나를 아래에 제시한다. 소위 접사 '-히', '-이'와 관련된 것이다.
 
 (1) 조용히, 솔직히, 깊숙이, 깨끗이
 
 89년 이전에는 '조용', '솔직', '깊숙', '깨끗'에 '-하다'를 붙여 말이 되면 'X히'로 적고, 말이 안 되면 'X이'로 적되, 어근이 'ㅅ'으로 끝나면 'X하다'를 붙여 말이 되더라도 'X이'로 적는다고 했다. 지금도 이렇게 가르치는 분이 있다. 이를 따르면 '조용하다', '솔직하다', '깊숙하다'는 말이 되므로 모두 'X히'로 적어야 하겠지만 현행 맞춤법은 그렇지 않다. '조용히', '솔직히', '깊숙이'라고 써야 한다. 이 셋 중에는 '깊숙이'가 문제된다. 이제는 끝 음절이 '이'로 발음되느냐, '히'로 발음되느냐가 중요하다. 전형적인 서울 사람들이 '깊숙히'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전형적인 서울 사람은 어떤 사람을 지칭하는지 잘 새겨 보기 바란다. 이 규정을 두고 못마땅해 하는 사람이 많다. 서울 토박이 10명에게서 "우리는 '깊숙히'라고 하지 않는데 저쪽 변두리 사람들이나 강 건너 사람들이 자꾸 '깊숙히'라 하더라고"라는 말을 듣는다면 어떨까? 
 한글 맞춤법은 소리대로 적는 것이 우선이다. '시월'을 '십월'이라 적고 '오뉴월'을 '오륙월'이라고 적자고 하면 좋겠는가? 지금 서울 사람들 중 '십월', '오륙월'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서울에 산다고 해서 다 서울 사람은 아니다. 그러면 또 따지고 들면 된다. '먹구', '하구'라고 말하니까 '-고'를 '-구'로 바꾸자고. 장사에도 상도덕이 있듯이 맞춤법에도 도덕이 있다. 그 도덕은 여러 가지 측면이 있지만 3대 이상의 서울 토박이와 관련될 것이다.
 접사 '-이', '-히' 관련 규정(제51항)을 간단하게 기술하기로 한다. 서울 사람이 '이'라고 발음하는 것과 '히'라고 발음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라 발음하면 '이'로 적고 '히'라 발음하면 '히'로 적는다는 것이다. 바로 '소리대로'를 강조한 조항이다. 얼마나 좋아졌는가? 규정이 이렇게 되면서 큰 시험에는 나올 일이 없어졌다. 이와 관련한 문제를 내는 사람은 적어도 국어 전공자는 아니다. 글쓴이는 주요 국어 시험 문제를 출제할 때 규칙적인 유형, 원리적인 유형만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면 사실, 수험생 반응은 무척 안 좋다. 수험서에 없는 것도 나오니 말이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문제 유형은 어떤가.
 
 (2) 다음 중 표준어가 아닌 것은?
 ① 짜장면    ② 으스스하다
 ③ 아귀찜    ④ 강냉이
 
 정답은 ②번이다. 하나하나 외워야 하니 힘들다. 그런데 외워도 그 외운 단어 하나에만 적용된다. 하나를 알면 하나를 아는 데서 그치고 마는 이런 문제는 좋은 문제가 아니다. 원리에 딱 들어맞는 것이라든가 틀린 이유가 명확한 것만을 대상으로 하여도 출제할 문제는 많다.
 또 하나 전공자들도 잘못 받아들이는 것이 있다. '오뚝이'라고 써야 하나 '오뚜기'라고 써야 하나 고민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콧날이) 오뚝하다'라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오뚝'이 '오뚝이/오뚜기' 말고도 다른 환경에서 사용되는 것이다. 다른 환경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오뚝이'가 맞는 표현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사실상 틀린 설명이다. '수그리다', '오그리다' 등은 '숙으리다', '옥으리다'로 쓸 수도 있다. 국어사전에 '숙다', '옥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숙이다'라는 말도 알고 있다. 그런데 결정적인 제한이 있다. '-이'와 '-으리다'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활발하게 사용되는 형태이지만 '-으리다'는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형태이다. 생산성의 차이이다. '-음'은 어떨까?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는지를 고민하면 된다. 사용 빈도에 관한 기준을 명확히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많이 활용되는 형태가 언중의 의식과 밀접하게 관련된다고 보는 것이다. '죽음'과 '주검'의 표기 차이를 통해 그 일면을 짐작할 수 있다. '-음'은 많이 쓰이는 것이고 '-엄'은 거의 쓰이지 않는 것이니 표기에 차이를 두는 것이다.
 생산성이 높은 접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아주 거칠게 말하면 '-이(-)', '-히(-)', '-음' 정도뿐이다. '-이(-)', '-히(-)', '-음' 정도만 알면 2% 부족하지만 98%는 맞는 것이다. 이들을 아래에 제시하기로 한다.
 
 (3) 가. -이: 깊숙이, 깨끗이, 실없이,
       더욱이 ; 바둑이, 오뚝이 등
   나. -이-: 먹이다, 깜빡이다 등
   다. -히: 솔직히, 익히, 급히 등
   라. -히-: 먹히다, 잡히다 등
   마. -음: 졸음, 걸음, 믿음 등
 
 앞에서 설명한 '얽히고설키다'의 발음 '얼키고설키다'에는 '-이-', '-히-'가 개재될 가능성이 농후하기에 형태를 밝힐 수 있는 것은 밝혀서 적혀야 한다. 이때 '얽-', 'ㅤㅅㅓㄺ-'이 존재하는지를 따지면 되는 것이다. '얽-'은 우리의 인식 속에 있는 것이기에 '얽히-'로 적어야 하고, 'ㅤㅅㅓㄺ-'은 우리의 인식 속에 없는 것이기에 그냥 소리대로 '설키-'로 적어야 한다. 생산적인 접사 '-이(-)', '-히(-)' 등이 무시할 수 없는 큰 기준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참고 : '잡히고', '덮이고'를 어떻게 써야 할지 헷갈리는 사람도 있다. 소리 '자피고'에 대해서는 '자피고', '잡히고', '잪이고' 세 가지로 쓸 수 있다. 소리 '더피고'에 대해서도 '더피고', '덥히고', '덮이고' 세 가지로 쓸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동사는 '잡-', '덮-'에서 온 것이기에 그 형태를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잡히고'와 '덮이고'로 적어야 한다.
 
 
 
  임석규 교수(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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