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강구 이동녕선생 거주지                                                        사진제공 : 조대호 동문

 '충칭'이라고도 불리는 '중경(重慶)'은 중국 중서부에 위치한 유일한 직할시로 우리나라 '광역시'에 해당하는 도시다.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훠궈의 본고장이자 여름에는 너무 덥고 습해 중국 3대 찜통 지역이라 불리기도 한다.

 필자는 지난 1월 성도에서 중경으로 넘어와 중국과 한국의 대일항전 유적을 중심으로 13일 동안 답사를 진행했다. 중경은 한국 독립운동사와 깊은 인연이 있는 도시 중에 하나이다. 한인(韓人)이 중국과 함께 반파시스트 노선에 합류해 대일항전을 전개했던 곳이다. 
 일본의 대(對) 중국 침략으로 인해 국민정부 수도인 남경이 점차 수세에 몰리자 국민당 정부는 중화민국 26년(1937년) 12월에 정식으로 수도와 관련된 정부 청사 등을 모두 중경으로 이동시켰다. 이에 따라 중경은 1937년부터 1945년까지 전시수도로 정치와 경제 그리고 군사와 문화의 중심지였다. 일찍이 신해혁명(辛亥革命, 1911년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성립시킨 중국의 혁명) 전후부터 한인들은 상해에서 중국 동맹회 계열의 인사들과 친분을 쌓아둔 덕분에 상해임시정부 설립 이후 매 위기마다 이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실제로 임시정부는 광주(廣州)와 류주(柳州) 그리고 기강(江)에서 중경에 이르기까지 국민당 주요 인사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중경에 국민정부와 합류할 수 있었다. 
 중경에서 가장 볼거리가 많은 해방비보행가 일대 서쪽 연화지(蓮花池) 38호에는 중경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이하 중정)가 위치해 있다. 본래 중정은 요인들의 사무실 겸 침실로 사용했는데, 현재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탄생부터 중경까지의 여정이 시기별로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 역할을 하고 있다. 중정 뒤편에는 방공호가 있었는데 이는 일본의 잦은 공습을 피하기 위한 시설로 중경 지역 건물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특징 중에 하나다.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서 셋방살이 정부를 이끌었던 우리나라 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보면서 문득 과연 내가 그상황에 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중경 임시정부 청사 중문 안내판
 중경 서역에서 고속철로 약 30분을 걸려 도착하는 기강구江區)에는 독립운동가 이동녕 선생이 거주했던 집이 보존돼 있다. 필자는 이동녕 선생의 거주지를 인터넷에 찾은 사진과 참고해 찾아갈 수 있었다. 지난해 겨울, 근 20여 년이 된 이동녕 거주지의 이름을 새로 교체하면서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래 거주지 앞에 흐르는 타만 강변을 따라 다른 임시정부 요인들의 거주지와 기강 임시정부청사가 있었지만, 현재는 재개발로 인해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어 아쉬웠다.

 중국 곳곳에는 한국항일운동전적지가 분포하고 있다. 현재의 연구가 다소 민족주의 계열에 치우쳐져 좌익 계열과 중국공산당과의 공동 연대 및 합작을 이뤄낸 성과에 관한 연구는 그렇게 많지 않다. 애국에는 좌우가 없다. 다가오는 통일국가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이념을 막론한 포용력부터 갖춰야 하지 않을까? 

 조대호 동문(사학과 12학번, 중국인민대학 역사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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