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란에는 연속기획 <우리 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란 제목으로 의사소통교육센터의 <세계고전강좌>와 공개강좌 <글로벌인문학>, <지역학(익산학)> 강연 원고를 번갈아 싣는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길 바란다. 
/편집자
 
 
 
 매년 초에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기다리는 이들이 많다. 영화팬들, 영화업계 종사자들도 그러하지만 가장 초조히 기다리는 이들은 감독과 배우 이하 후보작으로 오른 작품 관련자들일 것이다. 그리고 수상 결과를 초조하게 지켜보는 또 하나의 그룹이 있다. 이들은 바로 '컨설턴트(consultant)' 혹은 '전략자(strategist)'라고 불리는 오스카 캠페이너들이다. 아카데미의 수상을 위해 스튜디오나 제작사는 대선 캠페인하듯 자신의 작품을 캠페인 해 줄 전문가를 고용한다. 선거와 비슷하다는 표현을 했는데 사실상 이 오스카 캠패이너들 중 꽤 많은 수가 실제 선거 캠페인 매니저 출신이 많다. 그간 가장 공격적인 아카데미 캠페인을 벌였던 인물 중 하나인 하비 와인스타인도 오마바 전 대통령의 캠페인 메니저를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캠페이너로 고용했던 바 있다.
 이런 전문가들의 고용은 주로 선댄스 영화제나 칸 영화제 직후에 이루어진다. 이들은 보통 시상식 6개월 전부터 공격적인 캠페인을 시작하고 엄청난 비용을 들여 자신이 고용된 영화를 홍보한다. 대부분(매년 그랬던 것은 아니다) 뛰어난 작품을 배출해내는 아카데미인 만큼 영화의 완성도, 작품성이 가장 중요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벌써 20년 넘게 지속 되어오고 있는 이 아카데미의 숨은 전통은 아카데미의 수상을 바란다면 반드시 거쳐가야 할 필수 코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는 행사인 만큼 일반인들은 이 캠페인을 일종의 뇌물과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매우 큰 오산이다. 플러스 알파가 아니라는 말이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예컨대, <기생충>을 위해 CJ 혹은 미국 측 배급사 네온이 쓴 돈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으며 일간의 오해처럼 CJ 가 "돈으로 바른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캠페인에서는 어떤 일들이 이루어지는 것일까? 가장 중요한 일은 아카데미 선거인단(AMPAS)이 후보작을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현재 8500명이 넘는 아카데미 선거인단이 모두 영화를 보게 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해외에 있는 선거인단에게는 스크리너를 보내고 미국 내의 선거인단에게는 시사를 마련한다. 이런 행사에 참여할 수 없다면 각자라도 영화를 찾아 볼수 있는 명분을 심어주기 위해 많은 미디어 인터뷰와 토크쇼 출연으로 이들을 자극한다. 아카데미에 근접한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 상영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아카데미에 노미네이션 되기 위해서 가장 결정적이라고 알려져 있는(미국 내의) 영화제는 텔룰라이드 영화제와 산타바바라 영화제다. 이 영화제들에서의 상영 유무, 관객과의 대화 행사도 선거인단에게는 중요한 팩터다.
 따라서 위에 나열한 일들을 하는 것만으로도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해외용 스크리너 제작, 배포만도 25만 달러 정도가 소요된다(DVD 시절은 비용이 더 크게 들었으나 현재 파일로 전환되면서 대폭 줄긴 했다). 게다가 시사용 극장 대관, 영화제 참가 비용, 미디어 출연 시 메이크업, 헤어 비용, 텔레비전과 빌보드 광고 등등을 합산 하면 어마어마한 수치가 나옴이 당연하다. 광고비를 제외하고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아이템 중 하나는 켐페인 기간 동안 일어나는 수 많은 칵테일 파티와 식사비다. 아카데미 멤버인 스튜 자킴은 '더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파티들에 갈 수 있는 것이 아카데미 멤버로서의 가장 큰 특권이라고도 밝혔다. 아울러 아카데미는 선거인단에게 주는 작은 선물 정도는 허용하고 있다. 이에 캠페이너들은 자신의 영화를 각인 시킬만한 재치있는 기념품을 주는데, 이 기념품 경쟁 역시 만만치 않다. 가장 흔한 선물은 영화와 관련된 책, 초콜렛 정도인데 영화에 등장했던 아이템을 그대로 재현해 기념품을 만들어 보내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올해 넷플릭스는 <두 교황>을 홍보하면서 교황들이 영화 안에서 신고나온 붉은 색 공단 슬리퍼를 선물한 바 있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이 모든 비용은 얼마나 될까? 사실 언론에서 나오는 영화 마다의 오스카 캠페인 비용은 어디까지나 누군가의 뒷 얘기를 바탕으로 한 '추측'이다. 정확한 비용은 각 스튜디오 마다 일종의 영업비밀로 발설하지 않기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문이나 방송에서 나오는 특정 영화의 오스카 캠페인 비용은 100퍼센트 신뢰할 수 없는 정보다. 그러나 최소한 우리가 이 정보들로 오스카 켐페인의 스케일을 '추측'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2008년작 <허트 라커>는 3백만 달러, 2012년작 <아르고>는 2천 5백만 달러, 2013년작 <그래비티>는 2천만 달러를 오스카 캠페인비로 썼다고 전해진다.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나온 작품일 경우 작게는 3백만, 크게는 2천만 달러가 캠페인 비용으로 쓰였던 셈인데 이 평균이 서서히 늘다가 최근 넷플릭스의 참여로 급상했다. 역대급 돈이 캠페인 비용으로 쓰였다고 알려진 작년 2019년 기준, 넷플릭스의 <로마>는 2천5백만에서 3천만 달러가(영화의 제작비는 천5백만 달러다), <스타 이즈 본>은 2천만 달러에 약간 못 미치는 금액, <더 페이버릿>은 5백만에서 천만 달러 사이 정도가 쓰였다고 한다. 다른 스튜디오들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거금을 넷플릭스가 사용한 셈이다. 2020년 현재, 오스카 캠페인 비용의 범위는 5백만 달러에서 7천만 달러다. 7천만 달러는 역시 넷플릭스로 <아이리시 맨>, <두 교황>, <결혼 이야기> 등을 합친 금액이다.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오스카 켐페인 비용을 보며 배우, 수잔 서랜든은 지난 칸 영화제에서 아카데미 시상식이 가진 자와 못 가진자의 게임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비판하며 오스카 캠페인 개혁("We need campaign finance reform.") 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넷플릭스가 유독 오스카 캠페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돈을 쓰는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는 몇 년 전 넷플릭스 영화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스티븐 스필버그를 필두로 스트리밍 회사가 만들어 내는 영화의 예술성에 대한 냉소적인 대중적 시선을 타파하기 위함이다. 사실 이 여론은 전 세계의 골수 시네필들의 태도를 내포한 것이기도 하다. 영화의 동맥과도 같은 극장에서의 상영을 필요로 하지 않는 스트리밍 회사 - 넷플릭스에서 예술성이 충만한 영화를 만들어 낼리 없다는 것이다. 이런 여론에 대응하는 것으로 넷플릭스는 작품성을 인정받은 감독을 대거 영입하기 시작했고 이들의 작품들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넷플릭스의 공격적인 아카데미 캠페인은 분명 이런 노력 중 하나다. <비스트 어브 노 네이션>(2015)을 필두로 넷플릭스는 그야말로 자기들만의 아카데미 레이스를 펼치기 시작했다. 이 영화는 좋은 평론가들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 수상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넷플릭스의 끊임 없는 아카데미 캠페인은 결국 작년 <로마>의 아카데미 수상으로 결실을 맺었다.
 그렇다면 본론으로 들어가서 올해 아카데미 4관왕의 영예를 차지한 <기생충>의 아카데미 마케팅은 얼마 만큼의 스케일이었으며 어떻게 진행이 되었을까? 일단 한국에서 발표된 기사들은 <기생충>의 오스카 마케팅 비용에 대해 100억 원(약 848만 달러 정도)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언급했듯, 이는 배급사나 제작사가 공개한 공식적인 수치가 아니다. 비교적 자세한 추산을 내놓는 외신 기사에서도 <기생충>의 오스카 캠페인 비용을 따로 밝히지 않고 있다. 이 비공식적인 수치와 여태까지 이루어진 <기생충>의 켐페인기간 동안의 활동을 기반해서 직접 가늠해 보면 확실한 것은 올해 업계 오스카 캠페인 비용 평균인 12.5 million, 즉 천 이백 오십만 달러 미만을 지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CJ가 그만의 자본력으로 화려한 물량공세를 펼쳐 오스카 캠페인을 이루어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 되는 것이다. 추정으로 내놓은 100억이라는 돈도 사실상 아카데미식 계산으로 큰 것이 아니며 어찌 보면 적은 살림을 굉장히 알차게 했다고 칭찬해 줘야 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기생충>이 이번 아카데미 레이스에서 알뜰하고 영리하며 인간적인 캠페인, 즉 적은 비용에 '관객친화적' 마케팅을 펼쳤기 때문이다. 일단 미국 배급사 네온은 미국 내의 <기생충> 홍보, 그리고 아카데미 캠페인의 키워드를 철저히 감독, 봉준호로 세웠다. 일종의 감독 마케팅을 한 셈인데, 스필버그나 타란티노 정도의 인지도를 갖기 않은 봉준호 감독을 내세워 총체적인 영화 마케팅을 한 것은 과감한 시도다. 그 만큼 감독 봉준호, 인간 봉준호에 대한 강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이들의 아카데미 마케팅은 거의 봉준호를 이용한 것들이었다. 수 백개에 이르는 관객과의 대화, 미디어 인터뷰, 특강, 토크쇼에서 봉준호는 특유의 온화함과 재치, 번뜩이는 멘트들을 쏟아냈다. 특히 관객과의 대화에서 봉준호는 관객들의 질문에 매번 심혈을 기울여 반응했다. 아마도 GV가 많은 한국의 관객과는 달리 미국의 관객들은 감독의 이러한 세심한 대답에 감동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또한 네온은 봉준호 감독의 대답, 멘트들을 어록으로 만들어 연일 SNS 에 올렸고 이는 엄청나게 많은 공유수를 기록했다. 봉준호와 일한 경험이 있는 탐 퀸 그리고 공동대표인 팀 리그가 가진 봉감독에 대한 애정, 그리고 그의 매력에 대한 확신이 미국 내 봉준호 돌풍을 만들어 낸 것이다. 앞서 언급한 오스카 켐페인의 관습들과는 사뭇 다른, <기생충>의 오스카 캠페인은 오로지 작품과 그 창작자로만 승부를 낸, 매우 인간적이고 똑똑한 모범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CJ 와 네온이 오랜 기간 동안 전략을 짜고 계획했을 일종의 마라톤이었을텐데 마케팅비용을 낸 CJ도, 오스카 캠페인의 메인 테마를 기획한 네온도, 무엇보다 초인적인 양의 스케줄을 자신의 몸을 갈아 넣 듯(봉준호 감독의 표현이다) 완주한 봉준호 감독 그리고 그 가운데 많은 행사를 함께 했던 봉감독의 단짝 송강호 배우도 이 오스카 레이스의 진정한 위너다. 
 앞으로 한국영화는 많은 국제적 조명을 받을 것이다. 이번 <기생충>의 영광이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영화 전반의 가치와 기대를 올릴 것은 너무 자명한 일이다. 분명 더 많은 편수의 한국영화 진출이 예상되는데 CJ, 네온, 봉준호 3인방의 오스카 레이스는 영화 마케팅의 최고 사례로 남을 것이다. 가치 절하되 선 안되는 <기생충>의 또 다른 기록이기도 하다.
 
  김효정 교수(수원대 연극영화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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