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언론인상은 우리대학 출신 언론인 동문 모임인 '원언회'에서 언론문화 창달과 대학의 명예를 빛낸 동문 언론인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올해 제11회 원광언론인상은 이석 시사저널 취재 2팀장과 서민호 국민일보 화백에게 돌아갔다. 이석 동문은 우리대학 전기공학부를 졸업해 현재 시사저널 취재 2팀장을 맡고 있으며, 서민호 동문은 우리대학 한국화과를 졸업해 국민일보 화백으로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편집자

 
▲ 이석 시사저널 취2팀장(전기공학부 1999년 졸업)
 제11회 원광언론인상을 수상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자기소개 및 소감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91학번, 전기공학부를 졸업한 이석이라고 합니다. 요즘 '기레기(기자+쓰레기)'를 넘어 '기더기(기자+구더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언론 환경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반증이겠죠.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꿋꿋이, 그리고 의연하게 취재 현장을 지켰기에 이 상을 받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언제, 어떠한 계기로 언론인을 꿈꾸게 됐는지, 언론인을 준비하기 위해 대학 시절에 겪은 특별한 활동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사실 언론인은 제 꿈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공대생이 그랬듯, 당시는 전공과 관련이 있는 기사 자격증 취득 후 대기업이나 괜찮은 중견기업에 취업하는 게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가 발발하면서 이 목표가 사라졌습니다. 기업의 신입사원 공채는 물론이고, 공무원 신규 임용이 사실상 없어지면서 취업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죠. 미리 작성해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이름만 바꿔 뿌리다시피 했지만 번번이 쓴맛을 봐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취업 사기도 여러 차례 맛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행히도 1990년대 말은 이른바 '닷컴 붐'으로 전 세계가 열광하던 시기였습니다. 그 당시 대학 시절 번역회사에서 의뢰받은 매뉴얼을 번역 후 보내는 전문 번역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그 경험을 살려 일간지 및 경제지 사이트에 실리콘밸리 소식을 번역해 올리다가 편집자의 눈에 띄어 언론계 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 때 경험이 제 인생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꾼 것 같습니다.
 
 언론인으로서 고충은 무엇인가요?
 시사저널은 시사 전문지다 보니 민감한 내용을 보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독이나 특종 보도가 많지만, 한편으로, 언론중재위원회나 경찰, 검찰, 법원을 자주 찾게 됩니다. "법원에 진술을 위해 제출하는 준비서면 정도는 변호사 없이도 쓸 수 있다"라고 농담처럼 후배들에게 말할 정도입니다.
 
 앞으로 다루고 싶은 기사의 주제가 있다면?
 올해로 언론계에 입문한지 21년 차입니다. 그동안 많은 기억이 있었습니다만, 특히 아프리카 세네갈이나 브라질, 페루 등 남들이 가지 못했던 지역을 취재차 다녀온 것은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과거 흑인 노예의 송출 기지였던 세네갈의 고레섬, 지구 반대편인 브라질에 불고 있는 '한류 열풍' 등을 몸소 체험하며 시각을 넓힐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데스크에 있어서 이런 기회가 많지는 않지만, 틈틈이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장과 인물을 취재해 보고 싶습니다.
 
 다시 대학시절이 온다면 어떤 생활을 하고 싶나요?
 제 대학시절은 모범적이지 않았습니다. 동아리 등 과외 활동으로 수업을 빼먹기 일쑤였죠. 물론 현역 때 일입니다. 하루는 지도 교수님이 저를 부르더군요. 
 지금 같이 생활할 거면 군에 입대하라고 말했습니다. 자리를 모면하기 위해 "열심히 하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결국 F학점을 줄줄이 받았습니다.
 친구들끼리 농담으로 '선동열 방어율'이라고 했을 정도였죠. 군 제대 후에 학점 메우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학창시절 많은 경험을 했으니, 다시 대학에 간다면 공부를 좀 하고 싶습니다.
 
 언론인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앞서 다양한 경험을 쌓으라는 말과 배치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언론계는 준비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언론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경험을 미리 쌓고, 예비 언론인끼리 정보를 교환하며 포트폴리오를 확대합니다. 
 '언론 고시'라는 말이 여전히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턴이나 신입기자 면접에 참석해 보면 포트폴리오가 상당합니다. 이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미리부터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후배들에게 이 부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최근 벌어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뉴노멀(New Normal)'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기존 규칙이나 질서가 더 이상 통용되지 않은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일찍부터 자신의 진로를 정해 차근차근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다양한 경험을 통해 안목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언론인의 자부심을 잃지 않고, 청년층의 취업난이 심화되는 요즘 후배들이 이 어려움을 극복해 훌륭한 원광인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고 싶습니다. 그리고 향후에도 '원광언론인'이란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언론인이 되겠습니다.
 

▲ 서민호 국민일보 시사 만화가(한국화과 1997년 졸업)
 제11회 원광언론인상을 수상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자기소개 및 소감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한국화과(90학번)를 졸업한 서민호라고 합니다. 주변에 굉장히 훌륭하신 선배님들, 후배님들이 만이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게 귀한 상까지 주시니까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원광언론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언제, 어떠한 계기로 언론인을 꿈꾸게 됐는지, 언론인을 준비하기 위해 대학 시절에 겪은 특별한 활동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미술학도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언론인으로 진로를 정할 것이란 생각을 못했습니다. 특히, 전공이 한국화이다 보니까 대부분의 그림 자체가 정적인 그림이 대부분이었죠. 하지만 저는 재밌는 그림을 항상 머릿속에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저는 사람들이 보고 웃고, 재밌어하고 약간 만화스러운 한국화와 만화의 만남을 많이 시도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수업 시간 때, 교수님한테 혼이 나기도 했지요. 그러다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 전에 취업을 하게 됐는데 그게 인천에 있는 한 지역 신문사였습니다.
 처음엔 삽화를 그리기 시작했었죠. 삽화를 한 1년 하다가 만평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때가 29살 즈음이었습니다. 이어 인터넷 기호일보, 전라일보, 새전북신문사를 거쳐 지금의 국민일보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꿈을 가지고 "나는 언론인이 될 테야" 이랬던 게 아니라 언론사의 일원으로서 독자들하고 소통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그림을 그려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출발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 대학 축제 때, 우연히 캐리커처를 그리게 됐는데 지금과 달리 그 당시에는 캐리커처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그 캐리커처가 도움이 많이 됐었던 것 같아요. 
 
 언론인으로서의 고충은 무엇인가요?
 남자들은 군대 갔다 오면 대부분 다시 군대 가는 꿈을 꾼다고 합니다. 사실 그게 제일 무서운 꿈이거든요. 저도 그 꿈을 한 10년 꾼 것 같습니다. 그 후에는 마감 못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 꿈을 20여 년 넘게 꾸다보니까 요즘엔 좀 없어지긴 했는데, 그 공포감이 군대 다시 갔다 오는 꿈을 꾸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던 것 같아요.
 그리고 회사와 제 만평의 논조가 다를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논설위원들하고 사이가 껄끄럽게 됩니다. 이럴 때 힘이 듭니다.
 흔히 우리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세월이라고 부르는 박근혜, 이명박 정부 때 많이 힘들었었죠. 제가 언론계에서 유일하게 미술 분야의 블랙리스트에 들어갔었어요. 한겨레에도 있고, 더 심한 경향도 있었는데 말이죠.
 
 앞으로 다루고 싶은 기사의 주제가 있다면?
 시사 만평을 주로 다루다보니 주제를 정하기가 힘들어요. 취재기사는 사건을 찾는 게 중요하지만 저는 찾아낸 사건을 분석하거나 뒤집어 봐야 합니다. 때문에 앞으로 뭘 한다고 하기 보다는 항상 초심을 잃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합니다. 그리는 방식이라든지 기법, 테크닉 등 창의적인 그림을 그리려고 합니다.
 
 다시 대학시절이 온다면 어떤 생활을 하고 싶나요?
 대학 다닐 때, 우연히 학보사 편집국장이라는 분과 술자리를 하게 된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학보사 만평을 한 번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연락이 없더라고요.
 때문에 다시 한 번 대학에 들어간다면 학보사 만평을 해보고 싶어요. 만평을 했다면 지금보다 더 잘 그리지 않았겠냐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웃음)
 
 언론인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종합일간지처럼 큰 회사 입사를 꿈꾸며 열심히 공부합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방법도 있다고 알려주고 싶어요. 제가 아는 후배들 중에는 KBS나 MBC와 같이 지상파 방송국 시험을 통해 바로 입사한 후배도 있지만, 지역신문사 기자부터 시작해 올라간 기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만루 홈런을 칠 생각을 하다보면 자신도 힘들어지고, 주위 사람들도 힘들게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네요.

 앞으로의 계획은.
 제 나이가 50이라 10년 뒤면 정년퇴직입니다.(하하) 현직에 남아 있는 시간 이 많지 않기 때문에 계속 좋은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해야겠죠.
 우리 자녀들이 사는 세상은 조금 더 아름다웠으면 좋겠어요. 우리 때는 아니어도 우리 자녀들, 또 그 자녀들의 자녀들이 사는 세상은 좀 더 행복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활동을 계속 이어가려고 합니다.
  

  서민주 기자 fpdls0719@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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