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방송사 러시아(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롭스크) 연수가 지난해 12월 16일부터 19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진행됐다. 원대신문에서는 이번 연수기를 2회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러시아에 방문한 우리대학 신문방송사 연수단이 프레오브라젠스키 성당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 설원 위 철길을 가로지르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탄 신문방송사 연수단은 꼬박 하룻밤 달려, 다음날 이른 아침 러시아 극동부 지방의 행정중심도시인 하바롭스크에 도착했다. 잠이 덜 깬 채로 하바롭스크역에 내린 연수단은 여전한 추위를 느끼는 것도 잠시, 새로 방문한 여행지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안고 러시아 연수 세 번째 날이 시작됐다.
 새로운 가이드와 함께 연수단을 처음으로 맞이해 준 것은 하바롭스크 기차역 바로 앞에 위치한 '하바로프 동상'이었다. 러시아의 위대한 탐험가로 불리는 '예로페이 파블로비치 하바로프'는 하바롭스크라는 지명을 낳게 한 장본인이라고 한다. 왼손에는 두루마리 문서를 쥐고, 오른손으로는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겨울외투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하바로프 동상은 절벽위에서 고개를 들고 아무르강 먼 곳을 바라보는 구도로 조각됐다. 그 모습이 마치 하바롭스크 역을 드나드는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배웅해주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우리를 처음 맞이해준 것이 하바롭스크 동상이었던 것처럼.

하바롭스크 레닌 광장에 자리 잡고 있는 레닌 동상
하바롭스크 레닌 광장에 자리 잡고 있는 레닌 동상

 

 하바로프 동상을 뒤로하자 우리 연수단의 두 번째 방문지도 러시아 영웅으로 추앙받는 아무르스크 동상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소복이 쌓인 눈 위로 한발 한발 내딛으며 언덕을 오르다 보면, 홀로 우뚝 서 있는 아무르스크 동상을 볼 수 있었다. 아무르스크는 제정 러시아(제국)의 군인으로 38세의 젊은 나이에 니콜라이 1세로부터 러시아 동시베리아 총독으로 임명된 이래, 아무르강 하구에 니콜라예프스크라는 도시를 건설하며 아무르 강 탐사를 실시했다고 한다. 또한 중국 청나라 황제 청조를 위협해 아이훈 조약을 맺음으로써 하바롭스크를 포함한 아무르강 유역 영토를 인정받고, 한반도 크기의 3배에 달하는 농경지를 확보하면서 러시아의 영웅으로 불리게 된 인물이다.
 여담이지만 하바롭스크는 북한 김정일이 태어난 출생지로, 아무르스크 동상 맞은편에는 김정일 방문 표지판을 볼 수 있었다. 옆으로는 무라비요프 아무르스크 공원의 아무르강 전망대에 오르자 아무르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무르강은 최상류부의 실카강과 오논강을 포함하면 길이 4,350km(세계 8위). 면적은 205만 2000㎢(세계 10위). 유역은 러시아 ·중국 ·몽골 3개국에 걸쳐 흐르는 큰 강이다. 하지만 전망대에서 본 아무르강은 얼어붙은 채로 하얀 눈이 덮어져 있었다. 그 때문인지 햇빛에 비친 아무르강은 참 눈부셨다.
 아무르강 관광을 마친 연수단은 곧바로 언덕 아래에 위치한 하바롭스크 '향토박물관' 내부를 관람했다. 향토박물관은 지난 1894년에 지어진 연해주 일대 가장 큰 박물관이다. 그 첫 번째 지부장인 N. I. 그로데코프를 기리기 위해 그로데코프 향토박물관(Grodekov Museum of Regional Studies)이라 불린다고 한다. 자연, 민속, 고고학, 역사 등에 관계된 전시물 14만 4천여 종이 전시돼있고, 극동 지역 전체의 역사, 유물, 생활 모습 등이 비교적 잘 전시돼 있어 러시아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연수단은 그로데코프 향토박물관을 통해 러시아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1층에서는 아무르 호랑이 박제와 매머드 상아 전시부터 여러 동물의 박제를 통해 하바롭스크 지방의 자연환경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2층 특별전시실은 시대별로 러시아인들이 직접 만든 아기자기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하바롭스크의 역사를 엿볼 수 있었다. 그 가운데 하바롭스크의 위치와 지형을 보여주는 입체모형지도에 우리나라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되어 있어 매우 안타까웠다. 이것은 향후 우리 정부에서 러시아 정부에게 강력히 대응을 해서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라는점에서 우리 연수단 일행은 공감했다. 이외에도 2층 전시실에서는 석기시대의 유물과 고대의 예술 작품, 하바롭스크 지역 주민들의 주거지를 복원한 모형이나 일상용품 등을 접할 수 있었다. 
 3층 전시실에는 전쟁 장면의 그림들이 전시돼 있었다. 사실 러시아는 과거 1917년부터 1922년까지 내전을 치렀다. 백군과 적군이 나눠 싸운 이 전쟁을 가르켜 이를 '적백내전'이라고 부른다. 백군은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었으나, 적군은 평범한 시민들이나 농사꾼들로 이뤄져 있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전쟁을 치러야 했다. 결국, 적군의 승리로 사회주의 혁명의 기틀을 마련했지만 수많은 희생을 통한 승리였다. 그런 적군의 희생을 추모하며 기리기 위해 깜소몰 광장에는 혁명내전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전시된 그림은 1922년 마지막 내전인 '볼로차에프스키 전투' 장면으로, 그림 전체가 360도로 공간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파노라마 형식이어서인지 실제 전투 현장 한가운데에 있는 느낌을 받았다. 재밌는 점은 총으로 적군을 겨냥하고 있는 군인(백군) 한명이 그려져 있는데 그 사람을 어느 곳에서 봐도 관광객에게 저격하는 듯 착시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그 광경이 신기해 모두가 번갈아 가며 경험을 해본 뒤, 연수단은 박물관 관람을 마무리했다.
 신기한 점은 박물관처럼 실내를 관람할 경우 러시아만의 특별한 문화를 볼 수 있었는데, 바로 관광객의 외투를 보관해주는 서비스였다. 각자 번호 키를 받고 번호가 달린 옷걸이들에 맞춰 외투를 보관해주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러시아는 이렇게 외투보관소가 있는 것이 보통이며, 예의 바른 행동으로 여긴다고 한다.
 다음 여행지는 '레닌 광장'이었다. 레닌 광장은 러시아 여러 도시마다 자리 잡고 있어서 유명한 명소라고 한다. 그중 하바롭스크에 있는 레닌 광장은 '하바롭스크의 중심'이라고 불리며, 실제로 도시의 번화가 중심에 위치해 있다. 레닌 광장의 '레닌'은 '니꼴라이 레닌' 즉, 러시아 볼셰비키(공산주의) 당의 지도자의 이름에서 따온 명칭이다. 그는 적백내전 당시 백군과 달리 지원 없이 평범한 시민과 농부들과 싸워 전쟁에서 승리했으며, 현재까지도 러시아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레닌의 시체는 화장하지 않고 약품으로 처리해 모스크바 크렘린궁에 보관돼 있다고 한다. 
 붉은 벽돌을 배경 삼아 서 있던 청동으로 만들어진 레닌 동상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것보다 더 젊은 모습이었다. 레닌이 러시아 전역을 도보로 횡단하면서 각 도시에 방문했던 그 모습을 본떠 동상을 세웠기 때문에 도시마다 레닌의 모습이 다른 것이 특징이었다. 레닌 동상이 세워져 있는 광장에는 러시아의 추운 날씨를 실감하게 해주려는 듯 얼음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조각상들이 펼쳐져 있었다. 매년 열리는 얼음축제와 다가올 새해를 준비하는 미완성된 조형물이었지만 우리 연수단 일행에게는 그 나름 신기하고 색다른 경험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하바롭스키 색다른 경험을 하면서 추위에 곤란해 있을 무렵, 추위를 잊게 해주는 선물 같은 시간이 찾아왔다. 바로 '반야체험'이었다. 반야체험은 러시아 전통 사우나의 명칭이다. 자작나무로 지은 집 안에 돌이나 바위를 뜨겁게 달구어 위에 물을 뿌린 후 생성되는 증기를 이용해 몸의 피로를 푸는 방법을 사용했다. 또한 자작나무의 말린 잎을 모아 물에 적셔 몸을 두들기는 것이 특징이다. 신나게 샤워를 하고 뜨겁게 데워진 곳에 들어가 앉으니, 온몸의 경직돼있던 근육이 풀어졌다. 그동안 추위에 떨며 걸어 다녀 생긴 피로가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반야체험으로 생기를 되찾은 연수단은 하바롭스키 신문사 가운데 하나인 'PRESENT'를 방문했다. 'PRESENT'는 지역의 소식과 광고 등을 게재하는 소규모 신문사였다. 기자는 그 곳에서 익숙하지 않은 러시아어로 빼곡히 러시아로 발행된 신문 보면서 색다르고 신기함이 느껴졌다. 'PRESENT' 관계자들은 갑자기 방문한 우리 연수단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주면서 러시아 신문에 대한 역사, 특징, 발행 과정 등을 설명해주었다. 또한 대화 도중 러시아의 종이신문 구독율이 우리나라 보다 높다는 점도 알게 됐다. 이것은 느긋한 러시아 사람들 성향 탓이기도 하지만 종이신문 제작하는 원대신문 기자들 입장에서는 매우 부러운 대목으로 우리나라도 종이 신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PRESENT'신문사 관계자들과 원대신문사 직원들
'PRESENT'신문사 관계자들과 원대신문사 직원들

 이어 우리 연수단의 다음 일정은 하바롭스크에 '명예광장' 방문이었다. 하바롭스크에 명예광장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봤던 광장보다 훨씬 크고 웅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985년 하바롭스크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세워진 하바롭스크 명예광장 중심에는 블라디보스토크와 마찬가지로 영원의 불꽃이 꺼지지 않고 타올랐으며, 불꽃 주위를 감싸고 우뚝 선 검은 오벨리스크(obelisk)에는 한국인 6명을 포함한 러시아인 약 4만 명의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또한 1941-1945라고 새겨져 있는 조각을 볼 수 있었데, 이는 러시아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시기가 1941년임을 의미한다. 영원의 불꽃 맞은편에는 1929년부터의 전쟁들과 1978-1989년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명단이 새겨진 기념비도 볼 수 있었다.
 러시아는 '동상'과 '광장'의 나라답게 어디를 가나 동상과 광장을 쉽게 만날 수 있었고, 그 속에는 러시아 사람들의 애국심을 엿볼 수 있었다. 조금만 관심을 멀리했다면, 너무나 쉽게 잊혀버릴 수 있는 역사를 고이 모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울렸다. 
 연수단은 곧이어 명예광장의 뒤편에는 황금빛 돔을 자랑하는 '프레오브라젠스키 성당'을 찾아갔다. 프레오브라젠스키성당은 러시아에서 세 번째로 크며, 극동지방에서는 가장 큰 성당이라고 한다. 성당에 들어서자 예수의 탄생 그림을 시작으로 천장 돔 정 가운데에는 예수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해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띄었던 성당은 정말 아름다웠다. 성당 마당 앞 약 30m 높이의 '전쟁영웅기념탑에'는 훈장을 받은 하바롭스크 시민들의 명단을, 하바롭스크 라디오 방송국과 연결된 낮은 벽면에는 큼직한 훈장을 새겨 전쟁에 공을 세운 군인을 기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연수단은 이번 연수를 통해 러시아에서 겪은 우리 선조들의 아픈 역사를 새롭게 알게 됐던 시간이었다. 나라잃은 선조들은 이 척박한 땅에서 독립운동을 펼쳤고 삶의 터전을 일궈 왔던 것이다. 사실 러시아를 떠올리면 그냥 '땅이 넓고 추운 나라'라고만 생각만 했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고려인과 조선족이 아직도 거주하고 있었다. 그들이 타국에서 한국인의 핏줄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역사는 기억하기 나름이다. 아주 미세하고 작은 관심의 시작이 나라와 수많은 사람을 기억하는 힘이 될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잊지 않고 꼭 기억하기를 스스로 다짐해 보는 시간이었다.

박인화 기자 aksmfl2@wku.ac.kr
임채린 기자 dlacofls1014@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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