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란에는 연속기획 <우리 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란 제목으로 의사소통교육센터의 <세계고전강좌>와 공개강좌 <글로벌인문학>, <지역학(익산학)> 강연 원고를 번갈아 싣는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넓혀 가길 바란다. /편집자
 
 
  '쉬운 언어'는 왜 생겼나? 
▲ 독일 정부 홈페이지
 인간 사회에서는 소통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소통을 위한 도구는 바로 언어이다. 독일에서는 현재 사용되고 있는 언어가 사회의 일부 구성원들(학습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과 독일어에 능숙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그 결과 '쉬운 언어 Leichte Sprache'라는 하나의 새로운 형태의 언어, 즉 짧고 단순하고 이해하기 쉽게 재구성된 '쉬운 언어'를 개발하였다. 2006년에 '쉬운 언어 네트워크(Netzwerk Leichte Sprache)'를 설립하여 이른바 '쉬운 언어 Leichte Sprache'라고 하는 하나의 간편화된 독일어 사용법을 도입했다. 현재는 독일연방공화국 중앙정부부처인 노동사회부가 이와 관련된 업무를 주관하고 있다.
 학습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것은 언어이다. 그런데 이 언어가 그들을 사회로부터 소외시키기도 한다. 그것은 편지, 강연, 서류, 대화일 수도 있고, 버스시간표나 음식차림표 등과 같은 일상텍스트일 수도 있다. 보통의 경우에 학습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 복잡한 단어들과 문장구조들이 사용되곤 한다. 이러한 사항들은 그들이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증가시키고 있으며, 그들의 자신감, 삶의 질, 사회 참여에서 근본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쉬운 독일어는 예를 들어 학습장애자,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 독일어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 잘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쉬운 독일어는 독일어가 외국어인 이주민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청각 장애인들과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쉬운 독일어를 선호한다.
  
  '쉬운 언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학습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과 학습장애를 겪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쉬운 언어'의 언어적 특징과 규칙을 만들어 가면서 쉬운 독일어로 쓴 텍스트의 이해정도를 함께 검증한다. 그 결과를 토대로 각 규칙들을 보완해간다. 2014년에는 '쉬운 언어' 지침서를 발간하기도 하였다.
 
  '쉬운 언어' 어떤 특징 가지고 있는가?
 쉬운 언어는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인데, 특히 학습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나 독일어를 잘 못하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재구성된 언어이다. 쉬운 언어의 규칙은 학습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과 학습장애를 겪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만든 것이다. 몇 가지 규칙을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단순한 어휘를 사용하라. ▲약자를 쓰지 마라. ▲관용표현을 피하라. ▲높은 숫자를 피하라. ▲문장을 짧게 써라 ▲함께 속하는 것은 모두 함께 써라. ▲줄 간격은 충분히 유지하라. ▲단락과 제목을 많이 사용하라. ▲사진과 그림을 사용하라. ▲외래어나 전문어를 피하라.
 쉬운 언어에서는 단어, 숫자, 문장, 텍스트, 형태와 사진, 검증과 같은 부분이 특별히 강조되고 있으며, 각각에 대한 규칙을 상세하게 정하고 있다
 Netzwerk Leichte Sprache(2013)에 따르면 쉬운 독일어는 문어적 구어적 소통을 위한 하나의 언어형태이다. 특이한 점은 학습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쉬운 독일어 개발과정에 직접 참여한다는 점이다. 쉬운 독일어의 규칙은 무엇보다도 이해하기 쉽게 구성되어야 하는데,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면 글씨체는 명료해야 하고, 글씨크기는 적어도 14포인트는 되어야 한다. 줄 간격은 충분히 넓어야하고, 사진이나 그림은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 또한 외래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쉬운 언어' 텍스트의 난이도는 항상 검증되어야 하는데, 학습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이 직접 검증한다. 그들만이 어떤 텍스트가 쉬운지 어려운지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학습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전문가가 된다. 이들 없이는 '쉬운 언어'도 없다. 이들이 검토 텍스트를 잘 이해할 수 있을 때 그 텍스트는 좋은 것이다. 이들이 뭔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텍스트는 좋지 않은 것이며 다시 바꿔 써야 한다. 검증을 통해 이들이 다음과 같이 언급해야 한다. "이 텍스트를 나는 잘 이해할 수 있다."
 
 
  '쉬운 언어'는 사회적으로 어떠한 기능을 하고 있는가?
 쉬운 독일어는 각종 관공서의 홍보자료에 활용하고 있으며, 공무원들은 쉬운 독일어 쓰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정치정당 홍보, 각종 선거홍보 전단, 정부기관 정책홍보(인터넷), 주요 국가정책 홍보(인터넷) 등 정부나 정당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독일정부는 홈페이지에 쉬운 독일어로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주요 정당의 정책에 대한 홍보에도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독일정부와 기관 등에서는 시대 사회적 이슈에 대한 주요 논점들을 해당 홈페이지에 '쉬운 언어'로 제공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시대의 흐름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쉬운 독일어'는 어렵게 쓰여진 독일어 때문에 의사소통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회구성원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마련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바로 이 점이 '쉬운 독일어의 사회적 기능'이다.
 
  '쉬운 언어'는 자기결정권 행사에 도움을 준다
 독일은 하나의 간편화된 독일어 사용법을 만들어 특히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사용해오고 있으며, 국가의 주요 의제에 관한 논의과정에서 주요 내용을 온오프라인을 통해 '쉬운 언어'로 일반대중에게 공개함으로써 국가정책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고 있다. '어려운 언어'의 표현(특히 외래어, 전문어, 긴 문장, 복잡한 문장 등)은 특히 학습에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이나 다문화 가정의 구성원들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어려움은 일상생활에 적지 않은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한다. 자신의 의지대로 어떤 사안(정치·경제적인 문제 등)을 결정하려고 할 때 '어려운 언어'가 방해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어려운 언어' 보다는 '쉬운 언어'로 표현하게 되면 언어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스스로 결정하려고 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독일에서는 국가정책에 대한 주요 논점들을 해당 홈페이지에 '쉬운 언어'로 제시함으로써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시대의 거대한 흐름에 동참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쉬운 언어'는 언어인가?
 
 어느 언어학자는 '쉬운 독일어'를 "언어가 아닌 언어"라고 자조 섞인 표현을 하기도 한다. 독일에서 제시하고 있는 '쉬운 독일어'의 규칙체계를 살펴보면, 언어학적인 관점에서 어느 정도까지 '쉬운 독일어'의 활용 규칙을 용인해야하고 제한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자연스럽게 찾아든다. 하지만 '쉬운 독일어'에서 이해하기 쉬운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어휘나 문법의 지나친 단순화로 이어져 독일어의 어법 체계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학습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이나 독일어에 능숙하지 못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의사소통의 관점에서 독일사회 일부 구성원들의 입장을 유연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쉬운 한국어' 가능한가?
 독일의 '쉬운 언어' 정책을 살펴보면서 우리에게도 필요한 소통정책이라고 느낀다. 우리나라에서도 약간 다른 관점에서 '쉬운 한국어' 사업을 시도한 바가 있다. 2014년에 국립국어원에서 소통의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차원에서 '쉬운 공공언어 쓰기'라는 안내서를 발간했다. 쉬운 공공언어의 요건으로 '소통성'과 '정확성'을 제시하고 있다. 공공언어가 갖추어야 할 첫 번째 요건인 '소통성'은 글의 '용이성, 정보성, 공공성'으로 확보할 수 있는데, 읽는 사람이 핵심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고 한다. 이를 위해 쉽고 친숙한 용어를 사용하여 글을 작성하여야 하고, 알맞은 문서 형식에 맞춰 글을 쓰고 적절한 양의 정보를 보는 이가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배열하고 구성해야 한다. 공공언어가 갖추어야 할 두 번째 요건으로 '정확성'을 제시하고 있는데, 정확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문규범(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을 준수하고, 어휘·문장·단락 차원에서 표현의 정확성을 높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쉬운 공공언어 쓰기'에서 제시하는 사항들이 언어규칙 관점에서 볼 때 독일의 '쉬운 독일어'처럼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지 않아서, 우리 사회의 일부 구성원들(학습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과 한국어에 능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한국어를 이해하는데 어느 정도 기여하는지에 의문이 든다. 
 쉬운 독일어는 어렵게 쓰여진 독일어 때문에 의사소통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소통 가능성을 제공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에서 '쉬운 독일어' 사용이 점점 확산되어 가고 있다. '쉬운 언어'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지만, 세부규칙을 좀 더 보완해서 그 활용범위를 점차 확대해간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사회 구성원들간의 소통에 일정한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남유선 교수(유럽문화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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