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객들에게 나가사키는 짬뽕과 카스테라의 도시입니다. 한국 중국집에서 파는 빨간 짬뽕과는 달리 하얀 국물의 나가사키 짬뽕은 19세기 말 중국 유학생들이 즐겨먹던 음식이었습니다. 또 카스테라는 16세기 포르투갈 상인들이 전파한 남만과자(南菓子)에서 기원했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나가사키는 아시아에서 일상적으로 먹는 서양 요리인 '양식(洋式)'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이곳의 명물인 토루코라이스는 그릇 하나에 나폴리탄 스파게티, 돈까스, 볶음밥, 카레 등이 함께 담겨 나옵니다. 게다가 이름에는 왠지 '터키'를 의미하는 '토루코'가 붙어 있습니다.
 이처럼 이국적인 음식들이 이곳의 '향토음식'이 된 것은 나가사키가 전근대 시기부터 여러 문화가 공존하는 국제도시였기 때문입니다. 에도시대 일본이 쇄국정책을 펴고 있을 때에도 나가사키에는 외국인들의 입항이 허용된 인공섬 데지마(出島)를 통해 네덜란드 상인들이 오가고 있었습니다. 같은 시기 중국인들도 도진야시키(唐人屋敷)라는 집단 거주구에 모여 살았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나가사키 차이나타운의 기원입니다.
 저와 같은 종교연구자에게 이 도시는 음식만큼이나 이국적이고 다양한 종교유적들이 가득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서양식 정원인 구라바엔 근처에 있는 오우라천주당(大浦天主堂)은 16세기 말 나가사키에서 순교한 26명의 성인을 기념하기 위해 1865년에 세워졌습니다. 그러자 오랜 기간 탄압을 피해 신앙을 숨기고 살아가던 '카쿠레키리시탄(숨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일본 첫 가톨릭 성당으로 찾아왔다고 합니다. 이것을 '신자발견'이라고 합니다.
 나가사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던 도시이기도 합니다. 폭격이 이루어진 8월 9일은 일요일로, 투하 지점에서 불과 700미터 떨어진 곳에는 당시 동양 최대 규모의 성당이었던 우라카미천주당(浦上天主堂)이 있었습니다. 성당은 잿더미가 되었고 신자 약 8,500명이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오늘날 재건된 이 성당에는 폐허 속에서 수습된 성인상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 중에는 '피폭 성모상'이라고 불리는 머리만 남은 마리아상도 있습니다.
 나가사키에는 절도 많습니다. 그 가운데에도 이색적인 절이 이른바 '나가사키 삼복사(長崎三福寺)'라 불리는 숭복사(崇福寺)와 흥복사(興福寺), 그리고 복제사(福寺)입니다(잘 보면 이름에 모두 '복[福]'자가 들어갑니다.) 이들은 나가사키에 무역을 하러 왔던 중국인들이 세운 절입니다. 주로 푸젠성(福建省) 출신 신자들이 찾았던 숭복사는 중국 분위기가 가득한 붉은 색 절입니다. 흥복사 안에는 불교 시설만이 아니라 공자의 사당인 나카시마성당(中島聖堂)의 유적도 있습니다. 또 마치 한국 사찰에 민속종교의 산신(山神)을 위한 건물이 있듯, 이들 절에는 바다의 여신 마조祖)를 모시는 사당이 있습니다. 시내에 있는 복제사는 원자폭탄 투하 당시에 불타버렸지만, 재건된 지금은 '만국영묘 나가사키 관음(万廟長崎音)'이라는 거대한 불상으로 유명합니다. 높이가 무려 18미터로, 지상으로부터는 34미터나 됩니다.
 나가사키에 있는 중국종교의 유적은 이들만이 아닙니다. 옛 중국인 거리에는 토신당(土神堂) 관음당音堂), 천후당(天后堂)과 같은 중국 사당들이 남아 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중국역사박물관을 겸하고 있는 나가사키공자묘(長崎孔子廟)입니다. 궁궐과 같은 이 거대한 사당에는 황제의 면류관을 쓰고 있는 공자상과 돌로 만들어진 72제자의 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논어』 구절이 새겨진 부채나 티셔츠와 같은 이색적인 '공자 굿즈'도 살 수 있습니다.
 해외로의 발길이 묶인 이 시기에 전근대부터 세계인들이 드나들었던 나가사키를 떠올리니 묘한 기분입니다. 언젠가 나라 밖 왕래가 자유로워지면 한번쯤 이 매력적인 도시에 방문하시길 권합니다. 카스테라, 짬뽕, 그리고 신들의 도시에.

한승훈 교수(원광대 HK+ 동북아다이멘션연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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